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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장

[어젯밤은 고마웠어요. 이 하트 목걸이는 답례로 드리는 거예요. 남은 인생 행복만 가득하길 바랄게요. 만약 내가 책임지기를 원한다면 목걸이를 가지고 찾아오고, 이미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젯밤 일은 모두 잊어주세요.] 그는 쪽지를 단번에 구겼고, 어이가 없어서 되레 웃음이 터졌다. 간덩이가 부었나? 감히 그를 우습게 보다니? “대표님, 여기 하트 목걸이도 있네요.” 싸늘해진 남자의 얼굴을 보자 양지민이 조심스레 말했다. 정지헌은 잽싸게 낚아채더니 밖에 던지려고 팔을 번쩍 들었다. 그러나 목걸이의 모양을 확인하는 순간 잘생긴 눈썹이 꿈틀거렸다. 온전한 하트를 이루기 위해서는 2개가 필요했고, 현재는 반쪽짜리 하트인지라 아마도 짝이 따로 있는 듯싶었다. 왠지 모르게 눈에 익은 느낌에 머뭇거렸지만 언제 어디서 봤는지 당최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러다 곁눈질로 시트의 검붉은 핏자국을 발견하는 순간 생각이 바뀌었다. 곧이어 하트 목걸이를 손에 쥐고 양지민을 향해 말했다. “어젯밤 이 방에 들어온 여자를 찾아내.” 그는 남에게 주도권이 빼앗기는 상황을 극도로 싫어했다. 둘째 숙모가 자기 딸과 억지로 엮어주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심지어 함정까지 파놓은 이상 완전히 단념시킬 수밖에 없다. 즉, 어젯밤 여자와 결혼할 작정이다. ‘고작 반쪽짜리 하트 목걸이로 퉁치려고 하다니? 웃기고 있네.’ 정지헌은 손에 든 목걸이를 내려다보며 냉소를 지었다. 이를 본 양지민은 왠지 모르게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상사를 찾아온 이유가 문득 생각이 나서 입을 열었다. “대표님, 할머님께서 집에 들르라고 했어요. 액땜으로 정준우 씨에게 신붓감을 찾아줬다고 하네요.” 정지헌은 소매를 정리하며 싸늘한 얼굴로 말했다. “뭐 하는 사람인데? 무슨 꿍꿍이라도 있는 거 아니야? 삼촌이 지금 무슨 상황인지 알잖아.” “할머님이 말씀하시길 김광호 씨 딸이라고 했어요. 그... 예전에 공사장에서 사고를 낸 소장이요.” 정지헌의 눈빛이 날카롭게 번뜩이더니 온몸으로 살기를 뿜어냈다. “무슨 낯짝으로 딸을 시집보내려고 하지? 우리 집에서 가만둘 거로 생각하나?” “할머님은 속죄의 의미로 정준우 씨를 보살피게 하려는 생각인 듯싶어요.” “삼촌을 제외하고도 일곱 명의 목숨이 달렸는데 과연 다 갚을 수 있을까?” 얼음장처럼 차가운 남자의 표정에 양지민은 말을 잇지 못했다. ... 짝! “어제 아버지의 원한을 어떻게든 풀어준다고 호언장담했잖아. 그런데 꼴이 이게 뭐니? 몸이라도 판 거야? 파렴치한 년 같으니라고!” 김소정은 성격이 무덤덤한 편이라 뺨을 맞아도 묵묵부답했다. “그나마 내가 찾은 사윗감이 식물인간이라서 다행이지. 이 꼬락서니로 일반인이 가당키나 하겠어?” “엄마...” 이내 깜짝 놀란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방금 뭐라고 하셨죠?” 고집이 워낙 센 아이라는 걸 알고 있는지라 주여정은 눈치를 살피더니 한결 누그러진 말투로 대답했다. “너 대신 혼사를 정했다고 마침 얘기하려고 했어. 비록 거동은 좀 불편하지만 재벌 집 출신인 건 분명해.” “싫어요.” 주여정의 안색이 돌변했다. “거절하면 그만인 줄 알아? 네 아빠가 지은 죄는 어떻게든 갚아야지. 그것도 직무 태만으로 공사장에 큰 사고가 일어나는 바람에 사망자 7명과 부상자 1명이 생겼는데! 당시 다쳐서 식물인간이 된 사람이 바로 네 약혼 상대야. 피해자 집안에서 액땜 겸 딸을 시집보내라고 못을 박은 이상 엄마도 어쩔 수 없었어.” “아빠는 누명을 쓴 거예요.” 김소정이 이를 악물고 말했다. “네가 백날 얘기해봤자 아무도 안 믿거든? 어쨌든 이미 정해진 일이야. 상대방과 계약서까지 체결했어.” 부루퉁한 얼굴로 입을 꾹 닫고 있는 김소정을 보자 주여정은 동정심 유발 작전을 시전하며 훌쩍이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 귀한 딸을 병신한테 흔쾌히 시집 보내는 엄마가 어디 있겠어? 그렇다고 아직 학교 다니는 여동생을 결혼시킬 수는 없잖아. 그리고 네 남동생은 아빠 때문에 친구들의 비난을 한 몸에 받다가 결국 성질을 못 참고 주먹다짐해서 구치소에 들어갔어. 피해자 집안에서 감옥에 집어넣겠다고 아우성치며 손해배상까지 청구하는 중이야. 엄마도 오죽하면 이러겠니? 신씨 일가의 가정부로 일해서 번 돈은 생활비만 겨우 충당할 정도라서 보석금도 내줄 형편이 안 되고, 배상은 또 무슨 수로 하겠어? 만약 이 결혼이 성사된다면 혼수로 2억을 주겠다고 약속했으니까 네 동생은 살릴 수 있을 거야.” 올해 가을은 유난히 춥고 가랑비가 많이 내렸다. 김소정은 우중충한 하늘을 바라보며 마치 큰 돌이 가슴을 짓누르는 듯 숨이 턱턱 막혔다. 정씨 저택. 가을비가 남자의 어깨를 적셨고, 안 그래도 싸늘한 얼굴이 냉기로 가득했다. 정지헌은 집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장수미가 장아진을 데리고 활짝 웃는 얼굴로 맞이했다. “조카님, 왜 이제 집에 와? 어젯밤은 어땠어? 우리 아진이가 맥을 못 추던데...” 의미심장한 말에 장아진은 수줍은 얼굴로 화답했다. 정지헌은 불쾌한 얼굴로 두 여자를 흘겨보더니 무미건조하게 말했다.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죠?” “지헌아, 이제 와서 발뺌하면 어떡해?” 정지헌이 코웃음을 쳤다. “내가 어젯밤에 같이 있었던 여자를 못 알아볼 정도로 취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숙모가 건네준 술은... 설마 여기서 까밝히길 원하는 건 아니겠죠? 그러니까 입 닥치고 있어요.” “이...! 넌 어른도 안중에 없니?” “어른이면 어른답게 행동해야지.” 이때, 이선화가 아래층으로 내려왔고 세월이 흔적이 느껴지는 목소리에 위엄이 묻어났다. “지헌이랑 단둘이 할 말이 있으니까 다들 자리를 비켜줘.” “어머님...” “나가라니까?” 장수미는 씩씩거리며 장아진을 끌고 나갔다. 이선화는 정지헌의 손을 붙잡고 소파에 앉혔다. 반반한 얼굴과 달리 365일 찬바람만 쌩쌩 일으키는 모습을 보자 속으로 몰래 한숨을 쉬었다. 대체 어떤 여자가 이런 남자를 좋아하겠는가? “지헌아, 내일 준우가 결혼할 건데 약혼자는...” “안 됩니다.” “왜?” “삼촌이 이렇게 된 것도 다 그 여자 아버지 탓인데 제가 언젠간 죽여버릴지도 몰라요.” “그런 끔찍한 소리는 하지 마.” 이선화는 손자의 등을 찰싹 때렸다. “얼마나 착한 아이인데, 부모가 저지른 잘못은 자식과 아무런 상관이 없어.” “그럼 액땜까지 운운하며 삼촌과 결혼시키려는 자체가 모순이 아닌가요?” 이선화는 말문이 턱 막혔다. 이내 사진 한 장을 건네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여자야. 내일 준우 대신 구청에 다녀와. 참, 사진과 신분증 챙기는 거 잊지 말고.”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2층으로 향했고 계단을 오르면서 신신당부했다. “내일 아침 9시까지 늦지 않게 가.” 2층으로 올라오는 순간 이선화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과연 먹힐까요?” “이렇게라도 해야지, 아니면 평생 혼자 살지 몰라.” “나중에 도련님께서 진실을 알게 될까 봐 걱정입니다.” “괜찮아. 나보다 녀석을 잘 아는 사람은 없어. 아무리 성질이 더러워도 여자에게 손찌검하는 놈은 아니니까. 게다가 그 아이 덕분에 내가 목숨을 구했는데 품행이 바르고 교양도 있어 보였어. 이대로 놓치면 지헌만 손해야.” “하하하, 어쩐지 어르신께서 사진을 보자마자 마음을 바꿨다 했어요.” 사실 그녀는 액땜 삼아 김광호의 딸을 정준우에게 시집 보내려고 했었다. 하지만 사진을 확인하는 순간 생각이 바뀌어 정지헌의 신붓감으로 점찍어 두었다. 정지헌은 싸늘한 얼굴로 사진을 흘깃 쳐다보다가 휴지통에 버렸다. 다음 날 9시, 구청. 김소정은 어머니의 닦달질에 못 이겨 8시에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었다. 상대방의 얼굴을 모른다고 했더니 그녀의 사진을 이미 보내 줬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결국 무거운 마음으로 입구에서 잠자코 기다렸다. 커플들이 옆을 스쳐 지나갈 때마다 가을바람을 맞으며 외로이 서 있는 모습이 더욱 애처롭게 느껴졌다. 9시 정각,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앞에 멈췄다. 차에서 내리는 남자를 발견하는 순간 김소정은 흠칫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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