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소리까지
이튿날 아침.
나는 차를 타고 감정 센터로 향햇다.
엄마가 먼저 이야기를 해놓은 탓에 감정을 책임지고 있던 직원이 나에게 말했다.
“보통 보름 정도면 결과가 나오는데… 이렇게 하죠, 일주일 뒤에 결과 가지러 오세요.”
“네, 감사합니다.”
돌아가는 길에 나는 성영준에게 연락을 하려고 했지만 일하는 데 방해가 될까 봐 전화는 하지 못하고 서러운 목소리로 음성메시지만 남겼다.
“삼촌, 일주일만 기다려요. 꼭 제대로 해명할게요.”
하지만 이미 차단당해서 보낼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음만 지루하게 이어졌다.
보아하니 감정 결과가 나오지 않는 한 나를 차단 목록에서 꺼낼 생각이 없는 듯했다.
주말인 틈을 타서 나는 과일을 들고 체육관으로 향했다.
아직 고 선생님을 만나기도 전에 체육관 왼쪽 복도 구석에서 익숙한 사람을 발견했다.
정확히는 체구가 건장한 체육 생과 임유민이 키스를 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쯧쯧, 꽤 집중한 건지 소리까지 들릴 정도였다.
지난 생에 그 광경을 본 나는 곧바로 사진부터 찍은 뒤 성지태에게 보내 임유민의 진면목을 보여주려고 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성지태의 욕설뿐이었다. 심지어는 내가 임유민의 사진을 합성해 모함을 한다고 변호사를 고용해 나를 고소까지 했었다.
‘하.’
바로 앞에서 천천히 다가오는 검은색 승용차를 본 나는 입꼬리를 올렸다.
이번에 나는 사진을 찍지 않을 뿐만 아니라 숨겨주기까지 할 생각이었다.
“성지태, 잠깐만. 너한테 볼 일이 있어.”
나는 빠른 걸음으로 길 입구로 달려가 차 앞을 가로막고는 절대로 성지태가 내릴 수 없게 했다.
이대로 임유민이 바람 피는 걸 보게 된다면 얼마나 재미가 없단 말인가. 난 두 사람이 사랑의 결실을 맺는 것이 보고 싶었다.
“소지안, 좀 적당히 해.”
나를 본 성지태는 짜증 가득한 얼굴이 됐다.
하지만 난 기분이 아주 좋았다.
내가 시간을 길게 끌면 끌수록, 성지태가 그렇게 아끼는 임유민은 그 체육 생과 더 오래 입을 맞추었다.
그렇게 입을 맞추다 맞추다 배까지 부르는 게 제일 좋았다.
그때가 되면 호구인 성지태는 좋다고 아빠 노릇을 할 게 분명했다. 말하고 보니 이런 게 성지태와 꽤 잘 어울렸다.
생각하면 할수록 웃음이 나 나는 순간 참지 못하고 소리 내 웃었다. 성지태는 작게 욕지거리를 했다. 막 운전해 가려는데 체육관 입구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햇살 아래, 검은색 나시 원피스를 입고 있는 임유민이었다.
확실히 예쁜 차림이었다. 시선을 돌리면 가슴 아니면 맨다리밖에 안 보였고 허리도 아주 가늘었다.
임유민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지태야, 소지안. 두 사람 왜 같이 와?”
임유민은 한껏 속상한 얼굴을 했다.
성지태를 바라보는 두 눈에는 속상함이 가득한 것이 마치 나와 성지태가 그녀 몰래 무슨 나쁜 짓이라도 한 것 같은 모양새였다.
“민아야, 오해하지 마. 나한테는 너뿐이야. 소지안이 뻔뻔하게 나한테 달라붙는 거야. 맨날 껌딱지처럼 날 미행한 거야. 나랑 같이 온 게 아니야….”
성지태 저 장님은 임유민 목에 있는 키스마크는 보지 못한 듯 나에 대해 아무런 마음도 없다고 하며 그런 적이 있다면 당장 나가 죽을 것이라고 맹세를 했다.
그 말을 듣는 나는 기분이 나빠졌다.
뭐가 나에게 마음이 있으면 당장 죽는단 말인가?
나는 손을 들어 그대로 임유민의 목을 탁하고 때렸다.
“어머, 모기가 있네!”
나는 깜짝 놀란 듯 소리를 내고는 곧바로 소리를 낮춰 임유민에게 경고했다.
“다음에 바람 필 땐, 키스마크 가리는 거 잊지 마.”
내 말에 임유민은 크게 흠칫했다. 나를 보는 눈빛에는 놀라움과 두려움, 그리고 당황이 가득했다.
“소지안!”
하지만 성지태는 마치 미친 사람처럼 나에게 달려들더니 팔을 들어 나를 때리려고 했다.
바로 그때, 임유민이 소리를 질렀다.
“지태야, 흥분하지 마.”
목을 긁은 임유민은 눈빛을 반짝이며 성지태의 앞에 다가오더니 애교스럽게 말했다.
“방금 전에 확실히 모기가 있었어. 봐, 여기 부었잖아.”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목을 긁었다. 흰 피부 위의 키스마크가 점점 더 선명해졌지만 성지태는 의심하지 않았다.
등을 돌린 그는 얼른 차에서 모기약을 꺼냈다.
“자기야, 얼른 발라. 넌 피부가 너무 약해. 맨날 그 망할 모기한테 물려서 빨갛고 파랗게 멍이 들잖아….”
어머나 세상에, 이런 핑계를 임유민은 한두 번 쓴 게 아닌 듯했다.
‘하하하, 성지태도 참 불쌍해라.’
멍청하게 진짜로 모기한테 물린 건 줄 알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