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소지안, 이리 와
“영준 오빠, 오빠는 제가 살이 오른 게 좋아요? 아니면 좀 마른 게 좋아요?”
19살의 나는 젊고, 건강했다. 165의 키에 딱 적당한 50킬로그램이었다.
몸매도 나쁘지 않았다.
난 칼 단발을 귀 뒤로 넘기면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계속해서 질문했다.
“아니면 붙임머리 할까요? 어느 정도 길이 좋아해요? 허리까지? 아니면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완전 긴거?”
“얘기 끝났어?”
성영준은 차갑게 굳은 얼굴을 했다.
“누가 오빠라고 부르래? 버릇없이. 넌 지태 친구니까 지태 따라서 삼촌이라고 불러야지.”
“….”
나는 못 들은 척 대답하지 않았다.
성영준은 웃어른의 태도로 말했다.
“대답해, 내 말 들었어?”
나는 입술을 삐죽이며 작게 중얼거렸다.
“삼촌이라고 하지 뭐. 왜 화를 내요. 좀 다정하게 대할 수는 없는 거예요? 첫키스 준지 얼마나 됐다고, 받아 갈 거 다 받아 가놓고 화까지 내요….”
사실 호칭은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얼른 그를 손에 넣는 것이었다.
어떻게 이틈에 고백을 할지 고민하고 있는데 성영준의 휴대폰이 울렸다.
누가 보낸 메시지인 건지 방금전까지만 해도 온화하던 성영준의 표정이 순식간에 돌변하더니 두 눈에 흘러나오는 냉기에 나는 겁을 먹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다 먹었어?”
나는 멈칫했다.
“다 먹었으면 바래다줄게.”
말을 마친 성영준은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그 뒤를 졸졸 따라갔다.
가는 길에 몇 번이나 그를 흘깃 보며 무슨 일이 생긴 건지 묻고 싶었지만 입을 뗄 수가 없었다.
지금의 나는 수능 점수도 모르는 상태였다.
그런데 그는 이미 직장에서 일을 하며 성한 그룹의 요직에 앉아 있었다. 내가 물어본다고 해도 도움이 될 리가 없으니 차라리 덜 귀찮게 얌전히라도 있는 게 나았다.
“도착했어.”
“삼촌….”
안녕이라고 손을 흔들기도 전에 그는 악셀을 밟고 떠났다.
빠르게 멀어지는 검은색 승용차를 본 나는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입을 삐죽이다 휴대폰을 꺼내 성영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등 뒤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지안, 이리 와!”
안 봐도 비디오였다. 어마마마께서 화가 난 듯했다.
엄마는 화가 단단히 났을 때에만 이렇게 내 풀네임을 불렀다.
나는 더 뭉그적댈 엄두가 안 나 얼른 달려갔다.
“엄마, 왜요?”
엄마는 나를 무시한 채 쾅 소리를 내며 문을 닫더니 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조용히 그 뒤를 따랐다.
엄마는 테이블 위에 놓인 택배 상자를 보며 따져 물었다.
“소지안, 제대로 설명해 봐, 이거 뭐야! 도대체 뭐 하려는 거야!”
슬리퍼를 채 갈아신지도 못한 나는 얼른 달려왔다.
택배 상자에는 성인 남녀만이 쓸만한 각종 물건들이 있었고 제일 위에는 호텔 방 키 외에도 편지 하나가 있었다.
그 위에는 “성지태만”이라는 네 글자가 적혀 있었다. 얼핏 보면 내 글씨체와 몹시 닮아있었다.
그 편지는 고백 편지였다.
편지에는 내가 성지태를 얼마나 사랑하고, 성지태가 여자가 있든 말든 상관없이 성지태의 여자만이 되고 싶다고 구구절절 적혀 있었다.
그리고 상자 안의 물건들에 대해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사랑하는 지태야, 이걸 전부 나에게 써줬으면 해. 깨끗하게 씻고 방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너의 지안이.’
‘미친 누가 날 모함하는 거야? 내가 언제 성지태한테 이런 걸 보냈다고.’
어쩐지 성영준의 얼굴이 돌변한다 싶었다.
“엄마, 저 맹세할 수 있어요. 이것들 제가 준비한 거라면 저 진짜 천벌 받을 게요….”
하늘에 대고 맹세하건대 예전에는 확실히 성지태를 좋아하긴 했었다. 하지만 그건 그저 짝사랑에 불과했다.
첫키스도 얼마 전에 성영준에게 주었고 나와 성지태는 애초에 이런 사이로 발전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선을 넘는 짓을 할 리가 없었다.
다행히 엄마는 나를 믿어주었기에 침착하게 분석했다.
“네가 준비한 게 아니라면 누구인 것 같니?”
내 머릿속에 임유민의 모습이 떠올랐다.
“엄마, 엄마 동창 중에 법적 감정하는 사람 있지 않아요? 그 사람한테 연락해 주면 안 돼요? 저 필적 감정 의뢰하고 싶어요!”
이 모함은 그냥 넘길만한 게 아니었다. 만약 제대로 된 증거를 내놓지 못한다면 성영준에게 어떻게 해명을 해야 할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