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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장

성시후는 실소를 터트렸다. “나만 알면 돼.” 강리나는 방금 자신이 내뱉은 말이 너무 한심하고 우습게 들렸는데 지금 막상 성시후의 대답을 듣고 있자니 심장을 후벼 파듯 괴롭고 아팠다. 어떻게 ‘나만 알면 돼’라고 마무리를 지을 수 있을까? 대체 어떻게? 그는 두 사람의 관계를 아예 대중들 앞에 공개할 생각이 없었다. 물론 요 이틀 강리나에게 제법 인내심 있게 잘해주지만 그에게 있어 강리나는 여전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침대에 기어오르는 부끄러운 존재, 그의 법적 아내였다. 모두가 알다시피 하은지는 성시후의 전 여친이다. 또한 모두가 알다시피 성시후는 하은지가 홧김에 은산을 떠나버리자 깊은 타락에 빠진 채 제멋대로 여자를 놀다 버리는 경지에 이르렀다. 2년 동안 그는 옷 갈아입듯이 여자를 바꿔왔다. 하지만 그런 성시후에게 2년 동안 속을 켜켜이 묵으며 갖은 굴욕을 당한 아내가 있다는 사실은 아는 사람이 극히 드물다. 강리나는 더는 말을 잇지 않고 묵묵히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성시후는 갑자기 침묵한 그녀가 이상했다. “왜 그래 갑자기? 누구한테서 온 문자냐고 묻는데도 왜 대답이 없어? 아님 그냥 휴대폰 줘봐. 내가 직접 볼게.” “아니에요.” 어차피 전 여친들의 말은 틀린 것 하나 없으니까. 그녀도 조만간 버림받게 될 것이다. 단지 버림받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남들은 이별이지만 강리나는 이혼을 겪어야 한다. 강리나는 아침을 먹을수록 식욕이 떨어져서 우유 한 컵도 채 마시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리빙룸에 들어간 그녀는 TV를 켜더니 아무 드라마나 틀어놓고 넋 놓은 채 화면을 쳐다봤다. 성시후는 키친룸에서 수십 미터 떨어진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는 수많은 여자를 만나왔기에 강리나가 기분이 언짢은 걸 바로 알아챘다. 곧이어 자리에서 일어난 성시후가 소파 옆으로 다가와 그녀가 탁자 위에 놓은 휴대폰을 쓱 가져갔다. 강리나는 그런 그를 지켜보더니 미간을 확 찌푸렸다. “뭐 하는 거예요?” 그녀는 선뜻 휴대폰을 뺏지 않았다. 비밀번호를 설정해서 성시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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