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성시후가 침실 문을 여는 순간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혹시 아까 마신 물에 문제가 있었나?’
하지만 생각해보니 나이 드신 할아버지가 자신에게 약을 먹일 리는 없었다.
침실에 들어서서 문을 닫자마자 성시후는 1인용 소파 위를 힐끗 보았는데 뜻밖에도 한 여자가 누워 있다.
‘강리나!’
분노가 일순간 마음속에서 타오른 그는 성큼성큼 걸어가서 편안히 잠든 그녀의 어수룩한 모습을 노려보다가 오늘 카페에서 그녀의 쓸쓸한 모습이 갑자기 떠올랐다.
‘헐, 정말 대조적이네.’
순간, 강시후는 주저 없이 그녀가 걸치고 있던 코트를 내던졌다.
“누가 너보고 내 소파에서 자라고 했어? 당장 꺼져!”
강리나는 뒤척이다가 눈살을 찌푸린 채 깨어나지 않았다.
이때 그녀가 입고 있는 헐렁한 스웨터가 아래로 당겨졌다.
가슴 부분의 동글동글한 부드러움이 성시후의 두 눈에 들어와 안 그래도 불편한 몸을 더욱 팽팽하게 만들었다.
그는 눈을 감고 마른 침을 삼키며 정말 죽을 맛이라 생각했다.
성시후는 지금 거의 확신했다.
틀림없이 할아버지께서 그에게 약을 먹였는데 이렇게 해서 이 여자랑 잘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꿈도 꾸지 마!’
성시후는 잠든 여자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욕실로 달려가 찬물로 샤워를 했다.
20분 후, 몸에 남아 있던 욕망이 마침내 좀 누그러졌다.
나와서 머리를 닦으면서 소파에 있던 여자를 기분 나쁘게 훑어보던 그는 다시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는 달려들어 건조한 손바닥으로 강리나의 손목을 잡고 소파에서 당겼다.
이 움직임은 너무 크고 거칠었는데, 고통을 느낀 강리나는 마침내 천천히 눈을 떴다. 눈앞에 있는 변비에 걸린 것 같은 얼굴을 보았을 때 그녀는 어리둥절했다.
“왜 이제야 왔어요? 한참 기다렸는데.”
“기다려? 내가 와서 자 주기를 기다리는 거야?”
성시후의 경멸하는 듯한 목소리가 싸늘하게 들려왔다.
그녀는 정신을 차리고 그의 잠옷 입은 모습을 주시하다가 문득 경각심을 갖게 되었다.
“시후 씨... 왜 이 시간에 샤워해요? 본가에서 식사한 거예요?”
‘식사? 허허, 밥 먹을 생각까지 하고 있네!’
성시후는 그녀의 손목을 앞으로 잡아당겼다. 무방비로 있다가 그의 가슴에 이마가 부딪친 강리나는 몸이 굳어졌다.
그녀는 순간적으로 성시후를 밀치고는 뜨거운 체온을 무시하려다가 그의 시선을 마주쳤다.
“저기... 시후 씨 도대체 왜 그래요? 방금 아래층에서 기다렸는데 어찌 된 일인지 너무 졸려서 전화했더니 안 받았잖아요. 진섭 아저씨가 이 방이 시후 씨 방이라고 해서 찾아왔어요.”
말하면서 그녀는 자신의 손목을 잡아당겼지만 성시후는 그녀를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포기할 생각이 없었다.
강리나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말했다.
“다음부터는 시후 씨 방에 함부로 들어오지 않을 테니 놔줄래요?”
“나 약 먹은 것 같아.”
“네?”
2년이 지난 지금 그는 드물게 노기 띠지 않은 얼굴로 그녀에게 말했다.
“흥을 돋우는 약인 것 같아. 할아버지가 증손주를 보고 싶나 봐.”
강리나는 조금 어리둥절했다.
“그럼... 어떡해요?”
성시후의 눈빛이 그녀의 얼굴을 스치더니 그녀의 가슴으로 흘러내려 갔는데 스웨터가 이미 몸 앞의 풍경을 가리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마음속으로 이유 없이 아쉬움이 생겨났다.
그는 다시 그녀의 시선을 맞추며 한 걸음 앞으로 걸어갔다.
“어떻게 할까?”
압박감이 순간적으로 밀려와 평소 차분하던 그녀는 갑자기 두려움을 느끼며 말을 더듬었다.
“그럼... 우리 식사하지 말고 나가서 병원 가봐요. 어쨌든... 웁.”
남자는 재잘거리고 있는 그녀의 입술을 보며 그녀가 먼저 그에게 구애하고 있다고만 생각했다.
그는 더는 자제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을 덮쳤고, 강리나는 이렇게 키스를 당했다.
그녀는 믿을 수 없어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