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5장

“주아린, 굳이 사람을 이렇게 궁지로 몰아야겠어?”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고 있는 허진우는 고개를 돌려 그녀한테 시선을 고정했고 그녀 또한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며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었다. 그는 굳어진 얼굴로 답했다. “네가 화가 났다는 거 알아. 하지만 이럴 것까지는 없어.” 뭐가 이럴 것까지는 없다니?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는데? 우리가 이혼하지 않은 척, 남서희에 관련된 일들이 벌어지지 않은 척, 당신이 날 속인 적이 없는 척 연기라도 할까? 당신하고 우애적이게 행동하라는 거야?” 이혼할 때 못했던 말들을 그녀는 한꺼번에 내뱉고 있었다. 지금은 그한테 뭘 책임지라고 이 말들을 꺼내는 것이 아니라 다만 자꾸만 자신의 옆을 알짱거리는 그한테 화가 난 것이었다. 허진우는 안색이 흐려졌다. “다 지나간 일이잖아. 어차피 너한테는 그 일들이 그리 중요하지도 않을 거고. 주아린, 지금은 네가 임신 중이야. 내가 그 아기의 아빠인데 어떻게 널 그냥 내버려둘 수가 있어.” “그래. 아기의 아빠가 맞기는 하지. 하지만 당신은 이 아기를 원하지 않았었잖아. 실수로 생긴 이 아기를 당신들한테 책임지라고 한 적 없어.” 며칠 동안 꾹꾹 참아왔던 감정을 주체할 수 없는 주아린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당신들의 눈에 안 띄려고 A시로 와서 정착했으면 됐지 왜 자꾸 날 괴롭히지 못해서 안달인 건데!” 그녀는 평소에도 잘 우는 성격이 아니었다. 일반적으로는 감정의 극도로 솟구쳐야만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곤 한다. 손으로 치맛자락을 꽉 잡고 눈물이 자신의 마음과 달리 뚝뚝 흘러내리고 있는 그녀는 감정을 더는 억누를 수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그녀는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고 한 번 흘러내린 눈물은 멈출 줄을 모르고 있었다. 차 안에서는 그녀의 울먹거리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그러나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는 허진우는 그녀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가슴이 날카로운 칼에 베인 듯 찌릿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소매를 걷어 올리고 담배를 피우고 싶었으나 주아린의 몸을 생각하고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