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이정호가 의사와 바람을 피워 온서우가 자살 시도를 했다는 내용의 실검이었다.
[정말 놀랍네요. 의사가 바람을 피우다니.]
[얼굴을 보니 정말 헤퍼 보이네요.]
[흥, 흰 가운을 입고 있을 때는 의사지만 벗으면 한없이 가벼운 여자죠.]
[정말 어이가 없네요. 온서우와 비교할 가치도 없어요.]
[온서우가 이런 여자 때문에 자살 시도를 하려고 했다니.]
[아마도 이정호가 저 여자한테 홀렸다가 이제야 정신을 차려서 돈을 주고 떼어내려고 했는데 저 여자가 엄청난 금액을 요구했나 봐요. 정말 뻔뻔하네요.]
[저 저 여자 알아요. 운성 병원의 의사예요. 송씨였던 것 같은데.]
[운성 병원이면 이성 그룹 산하의 병원 아닌가요? 설마 이정호를 유혹해서 의사가 된 건 아니겠죠?]
[저런 사람이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런 인간 말종은 운성 병원 측에서 잘랐으면 좋겠네요.]
영상 아래 악플이 엄청나게 달렸다.
그들은 대부분 온서우의 팬들이었다. 그들은 진실을 알지 못하면서 섣불리 송연아를 외도 상대로 단정 지으며 그녀를 욕했다.
송연아는 댓글 몇 개를 읽은 뒤 뒤로가기를 눌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실검 13위였는데 잠깐 사이에 1위가 되었다.
“온서우 씨 회사에서 손을 썼나 보네요. 갑자기 실검 1위가 되다니 이상하잖아요.”
조슬기가 분석했다.
송연아는 이해할 수 없었다.
“자랑스러운 일도 아닌데 왜 그런 짓을 할까요?”
조슬기는 혀를 차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동안 제가 덕질 경험에 의하면 온서우 씨 소속사에서는 이 영상으로 온서우 씨와 현민수 씨의 스캔들을 덮을 생각일 거예요. 점심에 제가 그랬잖아요. 온서우 씨가 자살 시도를 했다는 사실을 언론에서 보도했다고요. 네티즌들은 온서우 씨 배 속의 아이가 현민수 씨의 아이일 것이고 현민수 씨가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아서 자살하려 했다고 추측하고 있었거든요.”
송연아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 말은 지금 절 방패막이로 이용했다는 건가요?”
“그렇죠. 효과가 엄청나네요. 여론 방향이 완전히 바뀌었잖아요. 다들 온서우 씨를 상간녀라고 욕했었는데 이젠 다들 선생님을 욕하고 있잖아요.”
“하지만 전 연예인이 아니잖아요.”
“연예인이 아니니까 선생님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고, 그래서 사람들이 거침없이 욕하는 거예요. 게다가 온서우 씨나 이정호 씨가 나서서 해명하지 않는다면 선생님은 그냥 외도녀가 되는 거예요. 게다가 네티즌들이 신상까지 털고 있잖아요. 사태가 더 심각해지면 선생님의 일상생활과 일에도 지장이 있을 거예요.”
송연아는 한숨을 쉬었다. 낯선 사람들에게 욕을 듣는 것은 크게 상관없었다.
그러나 온서우에게 이용당했다는 점이 너무 역겨웠다.
그녀는 VIP 병실 구역인 위층에 도착해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가 마침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이정호와 마주쳤다. 엘리베이터 안에 다른 사람은 없었다.
“인터넷에 떠도는 헛소문 봤지? 너랑 온서우 씨가 빨리 해명해 줬으면 좋겠는데.”
송연아는 직설적으로 말했다.
이정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꾸했다.
“인터넷 안 보면 되잖아.”
“둘 다 왜 이렇게 뻔뻔하지? 내가 왜 온서우 씨를 대신해서 욕을 먹어야 하는데?”
송연아는 화가 나서 말했다.
이정호는 미간을 찌푸렸다.
“왜 모르는 척해? 외도녀는 내가 아니라 온서우 씨잖아.”
“외도녀라니? 서우 모욕하지 마. 서우는 외도녀가 아니야!”
이정호는 엘리베이터 문을 걷어차더니 송연아를 노려보았다.
“서우는 그냥 인간 말종을 사랑하게 된 것뿐이야. 서우는 피해자라고!”
피해자?
송연아가 살면서 들었던 모든 말 중에 가장 우스운 얘기였다.
“그러면 나는? 나는 뭘 잘못했길래 사람들에게 욕을 먹어야 하는데?”
이정호는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
“우리 이미 헤어졌잖아.”
“이정호!”
이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그가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왔다.
“네가 욕을 먹든 말든 나랑 무슨 상관이야?”
위층에서 내려와 사무실로 가던 송연아는 자신을 지나치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고개를 돌려 자신을 힐끔대는 걸 발견했다. 심지어 어떤 환자들은 그 일로 그녀의 뒷담화를 하고 있었다.
“그 예쁘게 생긴 송 선생님이? 세상에, 전혀 그런 사람처럼 보이지 않던데. 정말 충격이야.”
“역시 사람은 얼굴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된다니까. 그런데 솔직히 나도 송 선생님만큼 예뻤으면 잘생긴 남자를 만났을 거야.”
“그래도 의사잖아. 그런 짓을 하면 다른 의사들 얼굴에 먹칠을 하는 거잖아.”
사무실로 돌아온 송연아는 공인중개사의 연락을 받았다.
“연아 씨, 제가 몇 번이나 연락해서 겨우 그 집주인과 연락이 닿았거든요? 그런데...”
송연아는 순간 긴장됐다.
“집주인이 뭐라고 하던가요?”
“20억이면 판대요.”
“얼마라고요?”
“휴, 제 생각엔 팔 생각이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가격을 부른 거겠죠. 연아 씨, 전 연아 씨 부모님과 아는 사이라서 최대한 연아 씨를 돕고 싶었는데 그래도 20억은 너무한 것 같아요. 그냥 포기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송연아는 휴대전화를 꽉 쥔 채로 한참을 침묵했다.
“지윤 씨, 혹시 집주인 번호를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직접 물어보고 싶어요.”
“그래요. 지금 보내줄게요.”
홍지윤은 그녀에게 번호를 보내주었고 퇴근 준비를 하느라 바빴던 송연아는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
지하철에 앉은 송연아는 그제야 문자를 확인했다. 번호를 본 순간 송연아는 당황했다.
그녀가 기억하는 번호는 단 두 개뿐이었다. 하나는 자신의 번호였고 다른 하나는 이정호의 번호였다.
그 번호는 이정호의 것이었다.
송연아는 그 번호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이정호가 그 집의 집주인이라니. 그건 그가 일찌감치 송연아 부모님의 집을 샀으면서 줄곧 송연아에게 얘기하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심지어 그는 송연아와 함께 그곳에 가본 적도 있었다.
그때 문이 잠겨 있어서 송연아는 잠겨 있는 문 너머로 집을 바라봐야만 했다.
당시 송연아는 이정호에게 자신이 어릴 때 겪었던 재밌는 얘기를 해주면서 안에 들어가 보고 싶다고 했었다.
그러나 그는 별 볼 일 없는 집인데 왜 그렇게 미련을 버리지 못하냐고 했었다.
“난 이 집을 다시 사고 싶어.”
“그래, 그러면 노력해. 오늘 밤 날 만족시켜 준다면 내가 도와줄 수도 있어.”
지하철에서 나오면 술집이 하나 있었고 송연아는 가끔 그곳에서 술을 한 잔 마셨다.
그러나 오늘 그녀는 한 잔이 아니라 술 한 병을 시켰다.
이정호와 만난 지난 8년, 그동안 있었던 일들이 마치 한편의 코믹 드라마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녀는 그 코믹 드라마의 광대였다.
그녀는 얼마나 멍청했던 걸까? 그녀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는 남자를 사랑하면서, 그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걸 달갑게 여기다니. 정작 이정호는 그녀를 그저 장난감처럼 취급했는데 말이다.
송연아는 술을 계속 마셨다. 취하면 멍청했던 지난 8년을 지울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술을 반병쯤 마시니 머리가 어지러웠다.
이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확인해 보니 서강호가 사진 한 장을 보낸 게 보였다.
가로등 아래서 찍은 사진 같았다. 날이 밝기 직전인 새벽쯤에 찍은 것인지 먼 곳에서 빛 한 줄기가 보였다.
모든 것이 고요한 거리였지만 아마도 바람이 불었을 것이다. 사진 속 그림자의 머리카락이 휘날렸기 때문이다.
그제야 송연아는 문득 자신이 서강호의 모습을 알지 못한다는 걸 떠올렸다.
외숙모는 송연아에게 그가 아주 아름답다고, TV에 나오는 연예인들보다도 더 아름답다고 했었다.
당시 송연아는 웃음을 터뜨렸다. 남자라면 멋있다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남자 연예인보다 더 멋있다고 해야 맞지 않은가?
그러나 외숙모는 아주 아름답다고, 그러나 여성스러운 건 아니라고 했다.
그의 그림자가 외숙모의 말을 증명했다.
비록 그림자일 뿐이지만 아주 아름다웠다.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다. 그림자만으로도 아름다운지 추한지를 판단할 수 있다니, 놀라웠다.
서강호가 말했다.
[어젯밤에 밤새 고객들 상대하느라 술을 많이 마셨어요.]
송연아는 웃었다. 그녀는 거의 비워진 술병을 찍어서 보냈다.
[저는 지금 마시고 있어요.]
[혼자 마셔요?]
그가 물었다.
[네.]
[돌아가면 저랑 같이 마셔요.]
송연아는 그 문자를 보고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는 여자 혼자서 술을 마시면 안 된다는 말도, 밤에 혼자 있으면 위험하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돌아가면 같이 술을 마셔주겠다고 했다.
[술 마시는 거 안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네. 마시면 위가 아프거든요. 못 마시는 건 아니에요.]
[지금도 위가 아파요?]
[조금요.]
[저 해장국 끓일 줄 아는데.]
[가르쳐주면 제가 끓여줄게요.]
송연아는 계속 웃다가 별안간 눈물이 나왔다.
지난 8년 동안 취해본 적도, 숙취 때문에 괴로운 적도 많았다. 그러나 이정호는 단 한 번도 그녀를 위해 해장국을 끓여주겠다고 한 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