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장
“이도준 씨, 어머님 병원비가 너무 오래 연체되었습니다. 오늘까지 납부되지 않으면 어머님을 퇴원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나는 난감한 표정으로 전화를 끊었다. 금방 1억 원의 수술비를 납부하고 나니, 남은 돈으로 치료비를 감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김아진은 내 어려움을 눈치챘는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려운 일 있으면 말해줘. 우리 이제 협력 파트너잖아. 서로 도와주는 건 당연해.”
나는 이를 악물었다. 김아진이 내 자존심을 지켜주려고 일부러 돌려서 말한다는 걸 알았다. 나는 김아진을 끌어들이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다른 길은 없었다. 눈앞에서 유일한 가족인 어머니가 죽어가는 걸 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아진아, 나 돈 좀 빌려줄 수 있을까?”
김아진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어머님 일 때문이지? 지금 바로 병원에 가자. 내가 빌려줄게.”
내 마음속에는 복잡한 감정이 일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우리는 함께 병원의 수납 창구로 향했다. 내가 이름을 말하자, 서류를 확인하고 난 간호사가 머리를 흔들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이 병원에서 결제 권한이 없는 것으로 나옵니다.”
나는 순간 당황하여 목소리에 조바심이 묻어났다.
“방금 전화를 걸어서 납부하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갑자기 결제 권한이 없다고 하는 거죠?”
창구의 간호사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말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금방 물어보고 올게요.”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나는 어머니가 걱정되어서 마음을 가라앉힐 수 없었다.
김아진은 내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도준아, 너무 걱정하지 마. 아마 병원 측의 실수일 거야. 곧 해결되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눈은 계속 창구를 주시하고 있었다.
잠시 후, 하얀 가운을 입은 의사가 옆문으로 나와 나를 향해 다가왔다. 그는 나를 위아래로 살펴보더니 물었다.
“당신이 이도준 씨인가요?”
“네.”
“그래요?”
의사는 나를 비웃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우리 병원은 살인자의 가족을 받아줄 수 없어요.”
나는 병상에 누워 있는 어머니의 허약한 모습을 떠올리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제 어머니는 아무 잘못도 없어요. 왜 환자한테 치료를 안 해주는 거죠?”
의사는 나의 반응이 불만인 듯 차갑게 말했다.
“남 탓하지 말고 자신을 탓해요. 살인자의 어머니라면 살인자랑 뭐가 다르겠어요?”
그는 귀찮다는 듯 손짓하며 말을 이었다.
“어서 나가요. 여기서 시간 낭비하지 말고요. 아직 환자 많아요. 당신 같은 사람한테 쓸 시간은 없다고요.”
김아진은 이 상황에 격분하여 말했다.
“이게 뭐 하는 짓이죠? 한 사람의 목숨이 걸려있는 일이에요! 환자를 이런 식으로 내치겠다는 거예요?”
의사는 한숨을 쉬며 다소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당신들은 건드리지 말아야 할 사람을 건드렸어요. 우리는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빨리 다른 병원 알아봐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누가 이런 일을 벌였는지 나는 알고 있었다.
박시아와 강시후. 해도 해도 너무했다. 그들은 나의 어머니도 내버려두지 않을 생각인 것 같았다. 자꾸만 절벽 끝으로 내모는 걸 봐서 말이다.
나는 맹세했다. 반드시 그들이 한 일에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
김아진은 잠시 후에야 진정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중요한 건 어머님을 다른 병원에 옮기는 거야. 내 친구가 병원 원장인데, 지금이라도 연락해 볼게.”
나는 고맙다는 말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내가 얼마나 무력한지 다시금 느꼈다. 지켜야 할 사람조차 지키지 못하고, 남의 도움에 의존해야 하는 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나는 결심했다. 더 빨리 게임을 개발하고 출시해서 돈을 벌어야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스로 강해져서 다시는 이런 상황에 처하지 않도록 해야겠다.
전원 과정은 순조로웠다. 우리는 무사히 다른 병원에 도착했다.
어머니는 내가 미는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김아진도 옆에서 나를 도왔다.
이때 박시아가 어디선가 나타나 비웃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생각보다 꽤 능력 있네? 벌써 병원을 구할 줄은 몰랐는데. 근데 몸 팔아서 번 돈 이런 식으로 쓰는 거 역겹지 않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