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주지안도 마침 그 광경을 목격했다. 그가 있는 방향에서는 박해일과 고아람은 아주 가까워 보였다.
그 광경에 그는 미간을 찌푸렸다. 덩달아 입맛도 사라졌다.
고아람이 팔을 빼내자 허공에 덩그러니 있는 손을 박해일은 조용히 거뒀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니 1층은 자리가 없었고 그녀와 박해일은 2층 창가 자리에 앉았다.
“못 드시는 거 있으세요?”
그녀의 질문에 박해일이 대답했다.
“없어요.”
“조금 짠 거 좋아해요? 아니면 매운 거나 단 거….”
“담백한 거요.”
박해일은 간결하고도 조금은 냉담하다 싶은 방식으로 대답했다.
“….”
이렇게 차가운데 아내나 여자 친구가 감당 가능할까?
저런 사람과 함께 산다는 건 분명 심심할 게 분명했다.
고아람은 자신이 먹어봤던 것들 중 상대적으로 담담한 음식들을 주문했다. 이 가게는 탕수육이 괜찮았지만 조금 단 탓에 하나만 주문했다.
그리고 해산물 수프도 하나 주문했다.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두 사람은 아무런 대화도 없어 분위기는 조금 어색했다.
고아람은 일부러 이야깃거리를 찾았다.
“그, 신 교수님이랑 친하세요?”
박해일의 대답은 빨랐다.
“네.”
그 말에 고아람이 되레 놀랐다.
그녀는 단 한 번도 신 교수의 입에서 그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다.
“결혼하셨죠?”
질문을 하자마자 고아람은 후회했다.
너무 프라이버시란 질문이었다.
분위기를 풀려다 되레 더 어색해지기만 해 그녀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왜 제가 결혼을 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하지만 박해일은 화를 내기보다는 흥미를 보이며 물었다.
고아람이 조심스럽게 그를 쳐다봤다.
“… 결혼 적령기 같아 보여서요.”
박해일은 눈꺼풀이 풀쩍 뛰었다.
“제가 그렇게 나이 들어 보입니까?”
“아니요, 아니요.”
고아람이 손을 내저으며 해명했다.
“박 변은 아직 젊죠. 그냥 남자가 그 정도 나이면 대부분 결혼을 하니까 저도 모르게 그렇게 생각한 거예요. 절대로 나이 들어 보인다는 얘기는 아니었어요.”
박해일은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진지하게 대답했다.
“아직 결혼 안 했습니다.”
그는 잠시 멈칫했다.
“한 교수님이 자신의 제자를 저에게 결혼 상대로 소개해 주려고 했는데 그 제자가 다른 사람과 결혼을 했거든요. 그 뒤로는 적당한 사람을 못 만났습니다.”
고아람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세상에, 박해일이 이렇게 말을 많이 하는 건 또 처음이었다.
그녀의 모든 포인트는 박해일이 이렇게 많은 말을 했다는 것에 있느라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전혀 못 들었다.
종업원이 음식을 내오면서 두 사람의 대화는 잠시 끊겼다.
“이 몇 개는 다 제가 먹어봤던 건데 맛있어요, 드셔보세요.”
고아람이 열정적으로 말하자 박해일은 그런 그녀를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네.”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함께 로펌으로 향했다.
주지안이 두 사람의 뒤를 따라갔다.
박해일은 그것을 빠르게 눈치챘다.
로펌에 도착한 뒤 박해일이 말했다.
“퇴근할 때 조심하세요.”
“아, 네.”
고아람은 일 얘기로 뭐 할 얘기가 있는 줄 알고 더 묻지는 않았다.
그래서 퇴근을 한 뒤에도 가지 않고 내내 박해일을 기다렸다.
10시가 다 되어서야 박해일은 사무실에서 나왔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합니다.”
“괜찮아요, 저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어요.”
그녀는 테이블에 놓인 사건 파일을 가리켰다.
“다 읽으셨습니까?”
박해일의 물음에 고아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거의 다 봤습니다. 내일이면 발견한 문제점을 보고로 작성해서 드릴 수 있어요.”
“그렇게 귀찮을 거 없습니다. 그냥 말해주세요.”
박해일이 걸음을 옮겼다.
“가시죠.”
“….”
고아람은 서둘러 그 뒤를 따라갔다.
“어디 살아요?”
박해일의 질문에 고아람은 사실대로 대답했다.
“로얄 스테이요.”
고개를 돌린 박해일의 얼굴에는 의문이 가득해 보여 고아람은 한 마디 해명했다.
“적당한 데를 못 찾아서요. 잠깐 머무는 거예요.”
그녀와 서지훈의 이혼은 빠르고 갑작스러워 미리 살 곳을 찾지 못한 탓에 당분간은 호텔에서 지내고 있었다.
박해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차에 탄 박해일이 시동을 걸었다.
“설명하세요.”
“….”
고아람은 할 말을 잃었다.
그녀는 잠시 고민하며 말을 정리한 뒤 이틀간 본 사건 케이스에 결론을 냈다.
총 열 몇 건의 사건이었고 케이스로 봤을 때 3개의 문제만 발견했다.
그녀는 자신이 발견한 문제들을 일일이 말했다.
박해일이 물었다.
“고아람 씨라면 어떻게 할 겁니까?”
그녀는 잠시 고민하다 자신의 해결 방안을 이야기했다.
박해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군요.”
칭찬인 건지 아닌 건지, 고아람은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이 시간대의 도로는 러시아워 없이 나름 뚫려 있어 호텔에 빠르게 도착했다.
고아람이 차에서 내리려는데 박해일이 그녀를 불렀다.
“혼자 이곳에서 머무는 건 좋지 않아요. 사람이 많아요.”
멈칫한 고아람이 속으로, 박해일같이 냉담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걱정하기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오늘 그녀는 박해일에 대한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고마워요. 살 곳은 지금 찾고 있어요.”
“네, 오늘 고아람 씨를 로펌에 남겨두고 늦은 시간에 배웅을 해준 건 점심에 식당에서 식사를 끝내고 로펌으로 돌아왔을 때 누군가가 미행을 하고 있는 걸 발견했기 때문이에요. 제가 보기엔 타깃은 고아람 씨고요.”
박해일이 아닌 이유는, 그럴 간덩이를 가진 사람이 없기 때문이었다.
고아람도 잠시 멍해졌다.
그녀는 잠시 고민했지만 자신이 누군가의 미움을 산 일도 없었다.
하지만 박해일은 아는 것이 많은 데다 섬세한 사람이니 허튼소리를 할 리가 없었다.
그래도 조심을 하는 게 좋을 듯했다.
“조심할게요.”
고아람이 말했다.
“바래다줘서 고마워요.”
고아람은 차 문 앞에 서서 박해일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가는 길에 조심해서 가요.”
박해일은 그런 그녀를 흘깃 보다 차를 몰고 떠났다.
고아람은 차가 떠나는 것을 지켜보다 등을 돌려 호텔로 들어갔다.
웅웅….
별안간 휴대폰이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