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나야.”
“지안아?”
고아람은 주지안이 자신에게 연락했다는 것에 조금 놀랐다.
“무슨 일이야?”
주지안은 길가에 서서 고아람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내일 나 생일인데, 올 거야?”
지금 이 순간, 고아람이 고개만 돌린다면 서지훈을 발견할 수 있었다.
고아람은 잠시 침묵했다. 생일 파티에 간다면 서지훈과 마주칠 게 분명했다.
가지 않기에는 주지안과의 사이가 꽤나 좋은 편이었다.
그녀와 서지훈 그리고 주지안은 같은 동기였다.
따지고 보면 그녀는 주지안과는 서지훈보다 더 먼저 알게 된 사이였다.
“알았어.”
그녀의 대답에 주지안이 말했다.
“그래, 늘 가던 거기야.”
“응.”
퇴근한 뒤 고아람은 선물을 고르고 정성 들여 포장까지 했다.
그런 뒤 차를 타고 생일이면 무조건 가던 향진각으로 향했다.
룸 입구에 도착해 막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데 안쪽에서 여자의 웃음소리와 신이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 여아름과 처음 했을 때가 작년에 형수님이랑 3주년 결혼기념일 때 아니야? 그날 형수님 취하니까 형이랑 여아름, 지하주차장에서….”
“하하, 나도 깅거 나. 여아름 돌아왔을 땐 제대로 걷지도 못했잖아. 형수님만 취해서 그걸 몰랐지. 그래서, 여아름 그때가 처음이었어?”
임한성이 궁금하다는 듯 묻는 소리에 고아람은 손을 꾹 말아쥐었다.
서지훈이 바람을 피운 건 알고 있었지만 직접 들으니 속에서 구역질이 올라왔다.
역겹기 그지없었다.
그녀는 서지훈이 이러게 자신의 눈앞에서 그런 역겨운 짓을 할 줄은 몰랐다.
고아람은 서지훈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반박하지 않는 것을 보니 묵인인 셈이었다.
7년, 이 순간 7년의 감정이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7년의 사랑과 희생을 지나가던 개한테 주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를 7년을 키워도 주인이 누군지 알고 주인에게만 꼬리를 흔드는데, 서지훈은?
가슴이 아파왔다. 아직도 서지훈이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라 안목이 없었던 자신 때문에 가슴이 아팠다.
크게 심호흡을 한 그녀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방문이 열린 순간, 그녀의 얼굴에는 옅은 미소가 걸려있었다.
마치 아무것도 듣지 못한 듯한 기색이었다.
자리에 있던 모두가 순식간에 입을 다물었다.
커다란 테이블에는 남자 넷이 앉아 있었다.
그 뒤로는 아가씨들이 얇은 옷차림에 섹시한 춤을 추고 있었다.
“왔어?”
주지안이 자리에서 일어나 반기자 임한성도 얼른 서지훈 옆에 있는 의자를 당겼다.
“형수님, 여기 앉으세요.”
고아람이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그녀는 주지안의 옆으로 가 의자를 당겨 앉았다.
“서지훈과는 이미 이혼을 했으니까 앞으로는 이름으로 불러줘요.”
분위기는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서지훈은 굳은 얼굴로 고아람을 쳐다봤다.
자리에 있는 모두가 잘못 걸리기라도 할까 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계속 놀아요. 제가 있다고 불편한 거 아니죠?”
고아람의 시선이 뒤에 있던 아가씨들을 훑어봤다.
“아니요, 아니요. 그냥 장난이었어요.”
임한성이 그 여자들을 전부 내보냈다.
고아람은 임한성과 신이한은 놀기를 좋아하고 지저분하게 논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서지훈과 만나기 시작한 뒤에야 두 사람을 알게 되었다.
두 사람은 서지훈의 죽마고우로 사이가 아주 좋았다.
고아람이 주지안의 옆에 앉기로 한 것도 그것 때문이었다.
이제 서지훈과는 이혼을 했으니 그들과의 관계도 끊을 때가 되었다.
오늘이 만약 임한성이나 신이한의 생일이었다면 절대로 오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 선물.”
고아람은 흉흉한 눈빛의 서지훈은 보지 못한 듯 주지안에게 선물을 건네주었다.
주지안은 서지훈을 흘깃 보다 선물을 받았다.
“고마워, 아람아.”
“뭘 또.”
고아람은 여전히 호탕하고 적절하게 미소를 유지하고 있었다.
“먹어.”
주지안은 고아람에게 국을 떠주었다.
“반쪽이 됐네.”
“고마워….”
“주지안, 언제부터 내 여자한테 그렇게 친절하게 굴기 시작했어? 왜, 좋아해?”
서지훈은 끝내 고아람의 무시를 견딜 수가 없었다.
가까워진 고아람과 주지안의 사이에 분노는 더욱더 커졌다.
활활 타오르는 분노에 그는 컵을 터트릴 듯 꽉 쥐고 있었다.
그는 주지안을 단단히 노려봤다.
“왜, 친구 여자도 뺏게?”
주지안은 그와 시선을 마주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바라만 볼 뿐이었다.
“고아람, 이쪽으로 와.”
서지훈은 이를 악물며 명령하듯 말했다.
고아람은 이 자리에 계속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분위기 망치는 건 그만할게요.”
“생일 축하해.”
그녀는 주지안에게 생일 축하 인사를 건넸다.
“오늘은 이만 가볼게.”
주지안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이 좀 남아서 멀리 안 나갈게. 가는 길 조심해서 가.”
“응.”
고아람은 짧게 대답한 뒤 의자에서 가방을 들고는 서지훈을 쳐다보더니 차갑고 거리감 있게 말했다.
“나한테 명령하듯이 말하지 마. 그리고, 난 이미 당신과 이혼했어.”
그는 자리에 있던 모두를 훑어봤다.
“마침 다들 모이셨으니 정식으로 말씀드리죠. 저와 서지훈은 이미 이혼했어요. 재산분할도 했고 이혼 도장도 받았고, 앞으로 저랑 서지훈은 각자 제 갈 길 갈 겁니다.”
말을 마친 그녀가 걸음을 옮기자 서지훈은 마치 타오르는 분노를 전부 의자에 화풀이를 하듯 패대기쳤다.
그는 고아람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의 분노는 마치 들판에서 번지는 들불 같아 옆에 있는 사람도 그 뜨거운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룸 안의 분위기는 더욱더 가라앉았다.
“고아람, 적당히 해. 내 친구들 앞에서 내 체면 이 정도로 깎았으면 좀 그만할 때 됐잖아.”
서지훈은 고아람의 손목을 잡았다.
“그만하고, 앉아서 밥 먹어.”
고아람은 있는 힘껏 그의 손을 뿌리쳤다.
“서지훈, 결혼이 애들 장난이니? 너랑 결혼하기로 했을 땐 심사숙고하고 결정했고, 이혼할 때도 진지하게 고민하고 내린 결론이야. 난 단 한 번도 너랑 장난하거나 오기를 부린 적 없어. 난 진지해.”
표정 관리에 능하던 서지훈의 얼굴이 이 순간 와장창 무너졌다.
다가온 주지안이 서지훈의 팔을 잡고는 고아람에게 말했다.
“먼저 가.”
고아람이 그를 지나쳐 밖으로 나갔다.
“고아람!”
서지훈의 두 눈에 열기가 타올랐다.
“그 문 나서면, 우리 진짜 끝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