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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고아람은 할 말을 잃었다. “….” ‘너무 많은 걸 알아버린 듯한데….’ 늦은 시간까지 케이스를 살핀 고아람은 테이블에 엎드려 잠이 든 탓에 아침에 일어났을 땐 삭신이 다 쑤셨다. 술에서 깬 신미연은 웃으며 고아람 앞에 카드를 흔들어 보였다. “고마워.” 고아람은 그런 신미연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 신미연이 떠난 뒤 그녀는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출근했다. 사무실에 도착하자마자 박해일에게 사무실로 불러와 갔고 박해일은 그녀에게 의뢰인을 만나러 가자고 말했다. 고아람은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뭘 준비할까요?” “듣기만 해요.” 박해일은 겉옷을 걸친 뒤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네.” 고아람은 뛰듯이 걷고서야 그를 따라갈 수 있었다. 다리가 너무 길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고 박해일이 운전했다. 고아람은 뒷좌석 차 문을 열고 앉았다. 차량은 오랜 시간 이동하더니 외진 곳의 한 지역으로 향했다. 두 사람은 작은 식당에서 의뢰인을 만났다. 처음에 고아람은 박해일 같은 변호사가 왜 이렇게 외진 곳으로 온 건지 조금 의아해졌다. “고아람 씨가 맡아요.” 그러나 저 말을 듣고 나서야 고아람은 박해일이 지금 자신에게 기회를 주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박해일을 바라보는 그녀의 두 눈이 흔들렷다. 눈앞의 남자는 차가워 보이지만 사실 그녀에게 아주 잘해주고 있었다. 보아하니 신 교수님의 체면은 꽤 큰 듯 보였다. 고아람은 가방에서 녹음 펜을 꺼냈다. 이건 그녀가 처음으로 듣는 의뢰인의 사건 진술이라 고아람은 몹시 진지하게 임했다. 의뢰인은 젊은 남성으로, 자신이 겪은 일에 대해 설명했다. 대략적으로는 집이 곧 철거되는데 배상금은 거주 인원수대로 정해지기 때문에 돈을 더 받기 위해 여자 한 명을 고용해 가짜 결혼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배상금을 주는 곳에서는 그를 사기죄로 기소를 했고 그와 가짜 결혼을 한 여자는 이미 잡혀가서 그는 당황스럽다는 것이었다. “지금 사건은 어디까지 진행된 거죠?” 고아람의 물음에 남자가 대답했다. “그 여자가 절 공범으로 자백했으니 저더러 잘못을 인정하고 벌을 받으래요.” “혼인신고는 하셨나요?” 고아람이 다시 묻자 남자가 다시 대답했다. “했어요.” “어디서 했나요?” “당연히 동사무소죠.” “국가가 기정한 동사무소에서 절차에 따라 합법적으로 진행한 혼인신고인가요?” 남자가 대답했다. “네.” “이거 무죄를 주장할 수 있습니다.” 고아람은 확실하고도 빠르게 건의를 했다. 남자는 도무지 믿기지 않아 다시 물었다. “그 사람들은 이미 죄가 증명이 됐으니 사기죄로 5년에서 10년 형을 받을 거라고 했어요.” “이득을 취한 금액이 얼마죠?” “1억 8천이요.” “무죄 주장 가능합니다. 사기죄라는 것은 기망 행위가 있어야 하는데 그 여자와 결혼을 했고, 혼인신고도 합법적으로 국가가 인정하는 기관에서 진행했잖아요. 그게 어떻게 가짜 결혼이겠어요?” 고아람의 아주 빠르게, 남자와의 대화에서 중요한 포인트를 캐치했고 그것을 이용했다. “변호사를 찾아서 그 여자를 만나세요.” “하지만 그쪽에서는 함께 생활한 흔적이 없다고 했어요.” 고아람은 미소를 지었다. “싸워서 각방을 쓴 것일 수도 있잖아요. 누가 가짜 결혼이래요? 당신은 법적으로 인정을 받는 혼인 신고를 했어요. 그러니 본인도 그 점을 알고 있어야 해요. 자신이 한 것이 가짜 결혼이라고 하지 마세요. 이건 평범한 결혼입니다.” 남자의 두 눈에 생기가 가득 찼다. “그럼 당신을 제 변호사론 선정할 수 있을까요?” 그는 고개를 돌려 박해일을 바라봤다. 아직은 정식 변호사가 아니라 스스로 사건을 받을 수가 없었다. 박해일이 조용히 대답했다. “한번 해 봐요.” 이렇게 바로 받으라고 하다니? 그녀는 입술을 깨물다 감사 인사를 하려고 했지만, 감사하다는 말로는 감격에 찬 마음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사건, 제가 맡겠습니다.” 남자는 감격에 겨워 그녀의 손을 맞잡았고 고아람도 예의 있게 남자와 악숙했다. 이제 해야 할 건 더욱더 깊게 사건에 파고들어 실제 상황에 따라 구체적인 변론 계획을 짜는 것이었다. 이 사건은 박해일에게 있어 정말 보잘것없었다. 그가 고아람을 데려온 이유는 작은 것에서부터 접촉하게 하려는 마음이었고 그녀의 능력이 어떤지 알아볼 생각이었다. 그리고 고아람의 반응속도에 그는 꽤 마음에 들었다. 고아람은 의뢰인과 서로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돌아가는 길에 고아람은 운전석에서 운전을 하는 남자를 보며 한참을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저, 감사합니다.” 박해일은 대꾸도 없이 묵묵히 운전만 했고, 고아람은 두 손을 마주 잡았다. “저 아까 너무 충동적이었을까요? 그렇게 확신을 가지고 무죄를 주장할 수 있다고 했잖아요. 만약 제가 실패한다면….” “그러니까 너무 충동적이었습니다.” 박해일의 담담한 말에 고아람은 입술을 깨물었다. “다음부터 조심할게요.” “언제가 됐든, 무슨 일이 있든 반드시 침착함을 유지하는 것, 그것은 뛰어난 변호사라면 반드시 할 줄 알아야 하는 능력입니다.” 박해일의 말투는 여전히 아무런 감정의 기복도 없이 담담했다. 고아람은 그 말을 가슴 깊이 새겨들었다. “네.” “차 있어요?” 박해일의 물음에 고아람은 곧바로 대답했다. “네.” “이번 사건을 맡았으니 앞으로 오려면 직접 운전해야 할 텐데 할 수 있겠습니까?” 박해일은 백미러를 통해 그녀를 쳐다봤다. 그녀의 두 눈은 반짝이고 있었다. 작은 얼굴을 보던 박해일의 눈빛이 조금 가라앉았다. 고아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할 수 있어요.” 그녀는 확신에 차 대답했다. 차가 시내로 돌아왔을 땐 이미 점심시간이라 고아람이 먼저 말을 건넸다. “제가 밥 살게요.” 아무리 평범한 로펌이라도 입사하자마자 사건을 맡는 일은 불가능했다. 게다가 레드 서클 내의 로펌에서 그녀 같은 신입 변호사는 1년의 수습 기간까지 있었다. 기본적으로 1년은 지나야 단독으로 사건을 맡을 수 있었다. 비록 이번 사건은 크지 않았지만 그녀에게 있어서는 성장할 수 있는 기회였다. 박해일이 아무런 말이 없어 고아람은 묵인이라고 생각했다. “제가 괜찮은 식당을 알고….” 하지만 반쯤 말하던 그녀는 그것이 자신과 서지훈이 갔었던 곳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서지훈을 떠올리자마자 기분이 안 좋아졌다. “주소요.” 별안간 박해일의 목소리가 울렸다. 이미 엎지른 물이라 고아람은 하는 수 없이 주소를 이야기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식당에 도착했다. 꽤나 좋은 분위기의 중식당이었다. 주차된 차량에서 내리던 고아람은 실수로 발을 삐끗했고, 넘어지려던 찰나 박해일이 빠르게 그녀의 팔을 잡아주었다. “괜찮아요?” “괜, 괜찮아요.” 식당 안쪽, 창가 자리에서 한 남자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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