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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화

안희연이 더 이상 몸부림치지 않는 것을 본 고현준은 입을 가리고 있던 손을 내려놓고 마치 다정한 연인처럼 턱에서부터 얼굴선을 따라 쓰다듬었다. “고현준, 뭐 하는 거야!” 안희연의 나지막한 목소리엔 분노가 담겨 있었다. 그 소리에 계단의 조명이 켜졌고 밝은 빛에 안희연은 눈을 찡그렸다. 고현준은 경매 때 입었던 정장을 그대로 입은 채 여전히 반듯하고 잘생긴 얼굴을 드러냈다. 얼굴에서 전혀 티가 안 나 몸에서 나는 진한 술 냄새만 아니면 술을 마셨다는 것도 몰랐을 거다. 고현준은 안희연을 올곧게 바라보았고 취기가 어린 눈빛이 사람을 태워버릴 듯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몽실아, 왜 이렇게 조심성이 없어.” 약간의 속임수로도 이렇게 쉽게 나오다니. 그의 몸 절반이 그녀에게 밀착해 있었고, 더운 여름이라 얇은 옷 사이로 서로의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안희연은 극도의 위험을 느끼며 상대를 밀어내려 했지만 상대가 이미 손을 포박하고 있었다. “내 상처를 건드리고 있잖아!” 고현준은 꿈에서 깬 듯 안희연을 놓아주며 잔뜩 긴장한 상태로 말했다. “어디 봐.” 술을 너무 많이 마신 탓에 평소보다 감정이 쉽게 밖으로 드러났다. 안희연은 곧바로 손을 숨기려 했지만 한 발짝 늦어 결국 고현준의 손에 잡혔다. 거즈로 덮여있는데 대체 뭘 본다는 건지. “미안해.” 남자는 고개를 숙이며 거즈에 부드럽게 입맞춤했다. 안희연은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홱 돌렸다. “고현준, 사과해도 소용없어. 나 뒤끝 심한 거 알잖아.” “그래.” 고현준이 중얼거렸다. “그렇게 평생 기억해.” 따뜻한 노란 조명 아래서 시선을 내린 남자의 눈동자에 드물게 쓸쓸한 기색이 담겨 있어 안희연은 당황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애매한 그의 말에 순간적으로 터무니없는 추측이 머릿속에서 떠올랐지만 이내 그녀 스스로 싹을 잘라버렸다. 고현준은 안희연에게 더 생각할 틈도 주지 않고 다시 손가락에 입을 맞추더니, 갑자기 시선을 들어 예리한 눈빛과 느긋하지만 위험한 어투로 물었다. “누구야?” “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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