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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강남 지역의 강해시에 도착해 기차역에서 나오니 마침 해가 질 녘이었다. 시장을 지날 때 방우혁은 닭 한 마리와 맥주 두 캔을 사서 천천히 집으로 향했다. 그의 집은 낡은 도심촌에 있었다. 작은 마당이 딸린 이층집으로 방우혁은 2층에 살았고 1층에는 한 모녀가 살고 있었다. 여기 월세는 매우 쌌다. 한 달에 고작 10만 원이었다. 집에 도착한 방우혁은 마당에 바베큐 그릴을 설치하고 닭을 굽기 시작했다. 방우혁이 닭에 소스를 바르던 중에 가방을 멘 소녀가 마당으로 뛰어 들어왔다. “냄새 좋다! 우혁 오빠, 아주 멀리서도 냄새가 났어.” 소녀는 그릴 앞으로 다가가 닭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기다려. 너도 줄게.” 방우혁이 말했다. “역시 우혁 오빠가 최고야.” 소녀는 기쁨에 겨워 집 안으로 들어갔다. 이 소녀는 1층에 사는 유슬기였다. 그녀는 고등학교 1학년생이었다. 잠시 후, 유슬기는 다시 나와 작은 의자를 가져다 방우혁 옆에 앉았다. “우혁 오빠, 요즘 어디 갔었어? 엄마가 고향에 가셔서 나 혼자 여기서 살았는데 너무 심심했어.” 유슬기는 턱을 괴고 말했다. “오랜 친구가 죽어서 가봤어.” 방우혁은 사실대로 대답했다. “미안해. 부디 마음 잘 추스르길 바랄게.” 유슬기는 마치 잘못한 것처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빠 친구는 분명 오빠와 비슷한 나이에 친한 친구였을 텐데 이렇게 젊은 나이에 죽다니 너무 안됐네.’ 하지만 유슬기는 방우혁의 얼굴에서 슬픔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그저 기름기가 흐르는 닭을 보고 침을 삼킬 뿐이었다. “됐다!” 몇 분 후, 방우혁은 구운 닭을 들어 올렸다. 뜨거움도 아랑곳하지 않고 손으로 바로 집어 들었다. 방우혁은 닭 다리 하나를 떼어 유슬기에게 주고 남은 닭을 통째로 먹기 시작했다. 맛있었다. 사실, 5천 년 가까이 수련한 사람이 아직도 곡식으로 배를 채워야 한다니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방우혁은 어쩔 수 없었다. 먹지 않아도 되지만 배는 고팠다. 예전에 그는 한동안 이 세상을 매우 싫어해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두 달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지만 여전히 멀쩡했다. 다만 신체 기능에는 문제가 없었지만 굶주림과 갈증을 느꼈다. 이런 느낌이 있는 한 방우혁은 먹고 마셔야 했고 그렇지 않으면 매우 괴로웠다. 밤이 되자 방우혁은 침대에 앉아 하수지가 20년 가까이 기록한 처방전을 하나씩 살펴보았다. 이 처방전들은 하수지의 일생의 연구 결과물이자 그의 심혈이었다. 아무리 봐도 이 처방전들은 하나같이 가치를 매길 수 없는 보물들이었다. 만약 유출된다면 의학계에 큰 파장을 일으킬 것이 분명했다. “이 녀석, 양기를 보하는 약까지 연구하다니 정말 제자가 스승을 뛰어넘었구나.” 방우혁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방우혁이 처방전을 보던 중, 아래층에서 격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유성태 이 개자식아, 나와! 우리한테 1000만 원 빚졌잖아! 숨으면 안 갚아도 되는 줄 알아?” 거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방우혁의 청력으로는 1층 집 안에서 유슬기의 울음소리도 들렸다. 유슬기가 말하길 그녀의 엄마는 고향에 가셨고 며칠 동안 혼자 집에 있다고 했다. “빨리 문 열어! 안 열면 부숴 버린다! 잡히기만 해봐, 다리를 부숴버릴 거야!” 다른 사람이 소리쳤다. 쿵! 말과 동시에 그들은 문을 부수기 시작했다. “유, 유성태는 이미 엄마와 이혼했어요. 우리랑은 상관없고 여기 없어요.” 유슬기는 울먹이며 말했다. “네가 없다고 하면 없을 줄 알고? 딸인데 당연히 숨겨주지!” 두 남자는 계속 문을 부수려 했다. “계속 그러면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 유슬기는 울부짖었다. “감히 신고해? 문 부수고 들어가면 먼저 너부터 처리해 버릴 거야!” 한 남자가 협박했다. 쿵, 쿵, 쾅! 문이 부서졌다. 빚을 독촉하러 온 두 사나이가 집 안으로 들어갔다. 유슬기는 두려움에 다리가 풀려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두 남자는 주위를 둘러보며 집 안에 다른 사람이 없는 걸 확인했다. “오호, 유성태가 이렇게 예쁜 딸을 두었네?” 한 남자가 바닥에 앉아 있는 유슬기를 탐욕스럽게 바라보았다. “그럼 다른 방법이 있지. 유성태를 못 찾으면 얘를 팔아서 빚을 갚는 거야.” 다른 남자가 말했다. “그전에 우리가 먼저...” 하지만 그의 손이 유슬기에 닿기도 전에 거대한 힘에 의해 공중으로 들어 올려졌다. “너 누구야!” 다른 남자가 소리치며 방우혁을 공격하려 했다. 쿵! 곧이어 그 남자의 비명이 들리며 방우혁에게 발길질을 당해 마당으로 날아갔다. 방우혁의 손에 들린 남자는 입도 뻥긋 못 해보고 몇 대의 따귀를 맞은 후 마당으로 내던져졌다. “누구에게 빚을 졌으면 그 사람에게 직접 가서 달라고 해. 3초 안에 여기서 사라져.” 방우혁은 담담하게 말했다. 두 남자는 몇 대만에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그들은 방우혁의 무서움을 깨닫고는 더 이상 머물 생각도 못 했다. 심지어 욕도 못 하고 허둥지둥 도망쳤다. 바닥에 떨며 울고 있는 유슬기를 바라보던 방우혁은 그녀 옆에 앉으며 말했다. “이젠 괜찮아. 이미 쫓아냈어.” 유슬기는 방우혁을 껴안으며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 그는 유슬기를 달래고 문을 고쳐준 다음에야 집으로 돌아왔다. 솔직히 거의 5천 년을 살아온 방우혁은 모든 것을 다 경험했다. 덕분에 성격도 매우 냉담해져 있었다. 한광식과 같은 불행한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냉담하게 지켜볼 뿐이었다. 그는 선택적으로 자신과 인연이 있거나 혹은 재미있어 보이는 사람들만 도와줄 뿐이었다. 밤이 깊었다. 방우혁은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막 잠들려는 참이었다. 음식을 먹지 않는 것처럼 방우혁은 잠을 자지 않아도 죽지는 않았지만 졸음은 느꼈다. 그래서 그는 잠을 자야 했다. 하지만 눈을 감은 지 2분도 채 되지 않아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열어보니 얇은 잠옷을 입은 유슬기가 서 있었다. “우혁 오빠, 나 혼자서는 무서워서 잠을 잘 수가 없어. 오빠네 집에서 잘 수 있을까?” 유슬기의 예쁜 눈이 빨개져 있었고 깜찍한 코도 빨갛게 되어 있었다. 엄마 말고 그녀가 가장 믿는 사람이 바로 방우혁이었다. 방우혁은 잠시 망설였다. 그의 집에는 침대가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유슬기가 여전히 몸을 떨고 있는 걸 본 방우혁은 거절하지 않기로 했다. “오늘 밤은 내 침대에서 자.” 방우혁이 말했다. “나는 바닥에서 잘게. 오빠는 침대에서 자.” “괜찮아. 기차에서 많이 잤더니 별로 안 졸려.” 유슬기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방우혁의 침대에 올라갔다. ‘이게 우혁 오빠의 침대구나. 아직 따뜻해. 방금까지 여기 누워있었을 거야.’ 침대에 누워 책상 앞에서 처방전을 보고 있는 방우혁을 바라보니 유슬기는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내가 정말 우혁 오빠 침대에서 자고 있다니. 우혁 오빠는 어떻게 그렇게 잘 싸우지? 아까 그 두 남자가 그렇게 무서웠는데 우혁 오빠는 간단히 내던져 버렸어. 너무 멋있잖아.’ 유슬기는 이것저것 생각하던 중 졸음이 몰려와 잠이 들었다. 다음 날, 방우혁은 강해고등학교에 도착했다. 사실 수천 년 동안 그는 여러 번 학교에 다녔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살아가려면 평범한 사람처럼 행동해야 했다. 수많은 직업을 전전한 방우혁은 여전히 학교가 가장 재미있고 편안하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3학년 2반 교실에 들어선 방우혁은 교실 구석의 자기 자리에 앉았다. 반에서 그는 그냥 내성적이고 조용한 학생이었다. 친구도 없고 눈에 띄지 않았다. 그는 반 학생 중 절반 이상이 자기 이름도 모를 거라고 확신했다. “옆 반에 여신이라고 불리는 한소유가 우리 반으로 온다면서?” “맞아. 반장이 교무실에서 한소유가 우리 담임과 이야기하는 걸 엿들었대. 우리 반으로 오려고 한다나 봐.” “뭐? 그 여신이? 왜 우리 반으로 오려는 거지? 우리 반에 마음에 드는 남학생이라도 있는 거야?” 이런 말들이 방우혁의 귀에도 들어왔지만 그는 그저 시끄럽다고 느낄 뿐이었다. “야, 방우혁. 한소유가 우리 반으로 전학 온다는데 너는 왜 하나도 신경 안 써?” 옆자리에 앉은 그의 짝꿍 유지석이 방우혁의 팔을 쿡 찔렀다. “나는 그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왜 신경을 써?” 방우혁은 되물었다. “아니, 한소유를 모른다고? 강남 한씨 가문의 딸이야. 집안 배경은 말할 것도 없고 얼굴이 천사 같아서 우리 학교의 진정한 미인이자 여신이야!” 유지석은 흥분하며 말했다. ‘강남 한씨 가문?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방우혁은 그저 짧게 대답한 후 책상에 엎드려 눈을 감았다. 하룻밤을 꼬박 새웠더니 졸렸다. 방우혁이 관심이 없는 걸 보자 유지석은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수업 시작종이 울리자 모두가 자리에 앉아 여신의 등장을 기다렸다. 역시나 담임 황해수가 한 소녀를 데리고 교실로 들어왔다. 이 소녀는 교복을 입고 있었고 포니테일을 했다. 화장은 안 했지만 피부는 여전히 눈처럼 히얗고 깨끗했다. 그녀의 이목구비는 매우 정교했다. 별처럼 반짝이는 눈동자, 예쁜 코, 붉은 입술. 똑같은 교복을 입었지만 소녀는 천상계의 선녀처럼 보였다. 이것이 바로 미인이자 여신이었다. 반 학생들은 모두 감탄사를 내뱉었다. “오늘부터 한소유 학생은 우리 2반으로 와서 함께 공부하게 됐어. 모두 박수로 환영해 줘.” 담임 황해수는 공손한 표정으로 말했다. 반 학생들은 박수를 쳤고 잠을 자던 방우혁은 고개를 들었다. 고개를 든 방우혁은 교단에 서 있는 한소유를 보았다. ‘어? 그 여자잖아?’ 방우혁은 곧바로 한소유가 왜 이 반으로 전학 왔는지 알 수 있었다. ‘젠장! 문제가 생겼네.’ 한소유 역시 교실에서 방우혁을 찾고 있었다. 구석의 방우혁을 발견하자 그녀의 눈이 반짝였다. ‘방우혁, 역시 여기 있었구나!’ “선생님, 저는 저 친구랑 짝꿍 하고 싶어요.” 한소유는 방우혁이 있는 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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