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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대하 서북부의 산악 지대는 마치 개척되지 않은 황야 같았다. 도로도 없고 차도 없으며 사람 그림자조차 보기 드물었다. 산들로 둘러싸인 외딴곳에 초가집 한 채가 외로이 서 있었다. 초가집 앞마당에는 다양한 약초가 심어져 있어 향기가 진하게 퍼졌다. 집 안은 넓지 않았다. 침대 하나와 책상이 전부였으며 책상 위에 가득 쌓인 책과 각종 메모지뿐이었다. 한편, 침대에는 백발이 성성한 한광식이 누워 있었다. 그는 눈을 감은 채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열여덟 살 정도로 보이는 소년이 침대 옆에 앉아 있었다. “수지야, 난 네가 참 부럽구나. 고작 81년을 살고 편안하게 이 세상을 떠나다니.” 방우혁은 방금 세상을 떠난 한광식을 바라보며 미소를 띤 채 중얼거렸다. “휴, 난 망했어. 앞으로 몇 년을 더 살아야 끝날지 모르겠네.” 방우혁은 한숨을 쉬었다. 그의 눈빛에는 고통이 서렸지만 그보다 더 강한 건 무력감이었다. 그가 수련의 길에 들어선 지 어언 5천 년이 다 되어 간다. 그 긴 세월 동안 방우혁은 죽지도 못했고 경지 또한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었다. 5천 년 가까이 수련했지만 여전히 연기 기간에 머물러 있었다. 그렇다. 연기 기간은 수련의 길에서 가장 기초적인 경지다. 엄격한 기준으로 보면 연기 기간은 경지라기보다는 단순히 몸을 단련하는 단계에 불과했다. 기초를 다진 뒤에야 비로소 진정한 수련의 길에 들어설 수 있었다. 하지만 방우혁은 계속 연기 기간에 머물렀다. 아무리 해도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었다. 수천 년 동안 주기단을 무려 수만 개나 삼켰지만 아무런 효과도 없었다. 처음 천 년 동안은 방우혁의 스승이 그를 위로했다. “너의 영근이 다른 사람보다 훨씬 강력하기 때문에 연기 기간에서 더 오래 머무는 거야.” 하지만 천 년이 지나도 방우혁은 여전히 기초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다. 그때쯤 되자 스승도 의심하기 시작했다. ‘혹시 방우혁은 영근이 전혀 없는 평범한 인간이 아닐까? 하지만 영근도 없는 평범한 인간이 어떻게 천 년을 살아도 늙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시간이 흘러 방우혁의 스승은 성공적으로 천계를 통과해 신선이 되어 지구를 떠났다. 그 후로 방우혁의 경지에 관심을 가진 이는 아무도 없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지구의 영기 자원은 점점 희박해졌다. 지금의 지구에서는 방우혁이 경지를 돌파한다 해도 결코 신선이 될 수 없었다. 하지만 방우혁은 애초에 신선이 되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그저 이 빌어먹을 연기 기간에서 벗어나고 싶을 뿐이었다. 이것은 그의 집념이었다. 지금까지 그는 연기 기간의 9천8백32층에 이르렀다. 일반적인 수련자는 12층만 쌓아도 기초 단계에 진입할 수 있었다. 수련에 관한 생각이 떠오르자 방우혁은 조금 우울해졌다. 그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책상 위에 덮인 온갖 처방전이 적힌 메모지들을 바라보았다. “약에 미친 놈이 될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의술을 가르치지 말 걸 그랬어.” 방우혁은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그는 하수지의 유언에 따라 이 처방전들을 정리해 가져가야 했다. 방우혁이 정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시끄러운 발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곧바로 고개를 들어 초가집 창문 너머 한 방향을 응시했다. ‘수지가 초가집을 이렇게 외진 곳에 지었는데도 사람들이 찾아낸다고?’ 방우혁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10분 후, 한 일행이 초가집 앞에 도착했다. 총 일곱 명이었다. 그중 두 명은 젊은 남녀, 한 명은 휠체어에 앉은 한광식, 그리고 나머지 네 명은 정장을 입고 건장한 체구의 남자들로 한눈에 보아도 경호원이었다. 휠체어에 앉아 죽음의 기운을 내뿜는 한광식을 보자 방우혁은 이들이 의술을 구하러 온 것임을 직감했다. “하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는 강남에서 온 한씨 가문의 한수혁입니다. 선생님께서 저희...” 잘생긴 청년이 앞으로 나와 큰 소리로 말했다. 방우혁은 문을 열며 그의 말을 끊었다. “늦었어요. 하수지 선생님은 조금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뭐라고?’ 모두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토록 애타게 찾던 약신 하수지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니?’ “어, 어떻게 그럴 수가...” 한수혁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방우혁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한씨 가문 한광식의 중병을 치료하기 위해 그들은 온 가족의 인력, 물적 자원을 총동원해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은둔한 약신 하수지의 행방을 찾아냈다. 온갖 고생을 다 하며 드디어 하수지의 거처를 찾았는데 돌아오는 소식이 그의 죽음일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어떻게 이런 우연이 있죠? 저희는 이제 막 찾았는데, 아니요, 하 선생님은 분명히 돌아가시지 않았을 거예요. 그저 저희를 만나주지 않는 거겠죠!” 예쁜 얼굴의 젊은 여자가 눈가를 붉히며 흥분해서 말했다. “맞아요! 하 선생님은 분명히 집 안에 계실 거예요!” 한수혁은 희망에 찬 눈빛으로 초가집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은 하수지를 발견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한광식은 이미 숨을 쉬지 않고 있었다. “어, 어떻게 이런 일이...” 한수혁은 희망이 무너지는 것을 느끼며 온몸에 힘이 빠졌다. “말했잖아요. 하수지 선생님은 이미 돌아가셨다고요. 이제 돌아가세요.” 방우혁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는 한수혁이 초가집에 무단 침입한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수혁은 문득 무언가가 떠오른 듯 방우혁을 바라보며 물었다. “당신은 하 선생님의 제자죠? 분명 의술을 전수하였을 테니 우리 할아버지를 치료해 주세요. 치료만 해 준다면 돈은 얼마든지 드릴게요.” 방우혁은 고개를 저었다. “저는 제자가 아니에요. 그저 오랜 친구일 뿐이죠.” 사실 엄밀히 말하면 방우혁은 하수지의 스승이었다. 15살의 하수지는 방우혁의 인도하에 의술의 길에 들어섰다. 물론 이런 말은 굳이 할 필요도 없었다. 설령 했다고 한들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오랜 친구라는 말도 어딘가 어색했다. 방우혁은 20살도 안 되어 보이는데 하수지는 이미 80살이 넘은 한광식이었다. 나이 차이가 이렇게 나는 데 오랜 친구라는 건 이상했다. 하지만 당장은 아무도 이 점을 신경 쓰지 않았다. 희망이 무너진 사람들은 절망에 빠져 있었다. 휠체어에 앉은 한광식은 하수지의 죽음을 듣고 완전히 생기를 잃었다. 눈빛이 흐려지며 체념한 듯했다. ‘이것이 하늘이 정한 운명이구나. 내 명은 여기까지인 것 같네. 더 이상 발버둥 치는 건 의미가 없겠어!’ 젊은 여자는 한광식의 모습을 보며 더욱 슬퍼져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방우혁은 눈살을 찌푸리며 한광식을 바라보고는 갑자기 입을 열었다. “이미 73년이나 살았는데 충분히 살지 않으셨어요? 왜 더 살고 싶으신 거죠?” 이 말을 듣자 모두가 얼굴을 찡그렸다. 방우혁이 어떻게 한광식의 나이를 알았는지 궁금했지만 그 뒤이어 나온 말에 표정이 일그러졌다. ‘충분히 살았다고? 그런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이게 무슨 뜻이지? 조롱하는 건가?’ “이 망할 자식,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한수혁은 얼굴이 새파래지며 방우혁의 가슴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 방우혁은 눈빛만 바뀌었을 뿐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펑! 한수혁의 주먹이 방우혁에게 닿기도 전에 그는 거대한 힘에 맞아 뒤로 날아가 땅에 쓰러졌다. 그들은 얼굴이 일그러지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분명 한수혁이 주먹을 휘둘렀는데 이 소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수혁이 날아갔다. “오빠!” 예쁜 여자가 비명을 질렀다. 네 명의 경호원은 곧바로 방우혁 앞으로 다가섰다. “손대지 마!” 휠체어에 앉은 한광식은 쉰 목소리로 명령했다. 경호원들은 바로 행동을 멈추었다. 한수혁은 가슴을 움켜쥔 채 바닥에서 일어나 놀라운 눈빛으로 방우혁을 바라보았다. “젊은이, 우리가 실례했네. 혹시 이름이 뭐지?” 한광식이 물었다. “방우혁입니다.” 한광식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아까 방우혁 군이 왜 더 살고 싶냐고 물었지. 대답해 주겠네. 나는 가족들과 더 함께하고 싶어. 손주들이 자라고 가정을 이루고 자식을 낳는 모습을 보고 싶더라고. 사람이란 다 그런 법 아니겠어? 대를 이어가며 서로를 지켜보는 거지.” 한광식은 미소를 지었다. “할아버지...” 한광식의 말을 듣고 있던 여자는 더욱 울음을 터뜨렸다. ‘가족이라...’ 방우혁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에게 가족은 이미 먼 옛날의 일이었지만 평범한 사람들에게 가족은 대를 이어가며 늘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들은 더 오래 살고 싶어 한다. “폐암 말기로 앞으로 3개월도 채 남지 않았군요. 남은 인생을 즐기세요.” 방우혁은 말을 마치고 초가집으로 돌아가 문을 닫았다. 한씨 가문 일행은 멍하니 서 있었다. ‘저 사람이 어떻게 폐암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아챘지? 게다가 의사들과 똑같이 3개월도 채 남지 않았다고 하네. 저 사람은 분명 약신의 제자야!’ 무언가 깨달은 한수혁은 다시 초가집 문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방 선생님, 당신은 분명 약신님의 제자이시죠? 제발 우리 할아버지를 치료해 주세요. 우리가...” “생사는 명에 달렸어요. 당장 이곳을 떠나세요. 그렇지 않으면 후회하게 될 거예요” 초가집 안에서 방우혁의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의술을 배운 자가 어떻게 사람의 목숨을 구하지 않으려 하는 거죠?” 한수혁은 분노에 가득 차서 말했다. “수혁아, 돌아와.” 한광식이 말했다. “할아버지!” 한수혁은 눈이 붉어져 한광식을 바라보았다. “방우혁 군의 말이 맞아. 생사는 명에 달렸어. 하늘이 나를 죽으라 한다면 어찌 죽지 않을 수가 있겠어? 가자.” 한광식이 말했다. “방우혁 군, 나는 하 선생을 무척 존경했네. 그런데 하 선생께서 이미 세상을 떠나셨다니. 오늘 우리의 방문이 하 선생의 영전에 폐를 끼쳤다면 진심으로 사과하겠네.” 한광식은 진심을 담아 말했다. 이후 일행은 돌아섰다. 한수혁은 마음이 편치 않았지만 한광식의 명령이라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섰다. 돌아가는 길에 모두가 말이 없었다. 분위기가 침울했다. 한수혁은 옆에서 무언가 생각에 잠긴 여동생을 발견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소유야,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한소유는 눈썹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왠지 저 방우혁라는 사람을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이 들어. 낯이 익어.” “말도 안 돼. 우리가 서북 지역에 온 건 이번이 처음인데 어떻게 그 사람을 본 적이 있겠어?” 한수혁이 말했다. “그렇긴 한데 정말 어디선가 본 것 같아.” 한소유는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말했다. 한수혁은 기분이 좋지 않아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여동생이 사람을 잘못 본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몇 걸음 더 가던 한소유가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나 기억났어! 학교에서 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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