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진우남을 경찰서에? 진우남이 처음에는 협박을 당했을지 몰라도 나중에는 자발적으로 그 여자를 도운 거라 물어도 답하지 않을 거야. 게다가 듣기로는 진우남의 입이 무거워서 스스로 원하지 않는 이상 아무도 그놈 입을 열 수 없을걸. 고문할 수도 없잖아.”
서지민은 경도준의 뜻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말하던 안 하던 상관 없어.”
이혜인이 자리를 떠나자 가면을 벗은 경도준은 평소의 차가움을 되찾았다.
“알았어. 지금 바로 움직일게.”
서지민은 그제서야 깨달았다.
30분이 지나고 진우남은 경찰서로 연행되었다.
진우남은 욕설을 내뱉고 싶은 심정이었다.
제기랄!
고하진은 대체 누굴 건드린 거야?
새벽 2시에 호텔 출구가 막힌 데가 호텔을 나서고 2분도 채 안 돼 추적을 당한 것도 모자라 이제는 경찰서야?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는 상황이네!
그러나 그가 경찰서로 연행된 걸로 보아 고하진은 잡히지 않은 모양이다.
이 시점에서 그가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된다.
“도련님, 한 가지 여쭤볼 게 있어서 이리로 모신 거예요. 협조 부탁드리죠.”
진우남을 심문하고 있는 육대장의 태도는 다소 정중했다.
“그래요. 제가 알고 있는 건 전부 솔직하게 얘기하도록 하죠.”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는 진우남의 표정에는 이상한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마치 그저 놀러 온 손님마냥 경관님이 입을 열기도 전에 그는 자리를 찾아 앉았다.
“30분 전에 도련님하고 호텔을 빠져나간 여자 누군지 아시나요?”
“몰라요.”
진우남은 명쾌한 답을 내놓았다.
그 순간 동기식 동영상으로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경도준은 눈빛이 차가웠다.
“진우남이 솔직하게 말할 리가 없다니까.”
서지민은 콧방귀를 뀌었다.
“진우남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필사적으로 도왔을 리가 없어.”
“하지만 도련님이 그 여자를 도와 호텔을 빠져나가게 했잖아요.”
육대장은 계속하여 질문을 이어갔다.
“빠져나가다니요?”
진우남은 웃음을 터뜨렸다.
“왜요? 사람이라도 죽였대요? 사람을 죽인 거면 체포 영장을 가지고 잡으러 가면 되는 거 아닌가요? 설마 저를 공범으로 의심하는 건가요?”
“그렇게 심각한 일은 아니고요.”
육대장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시군요. 그럼 됐어요. 잠깐만 태워달라고 하길래 선심을 써서 태워준 것뿐이에요. 호텔을 나오자마자 차에서 내렸고요. 다른 건 저도 몰라요.”
“정말 누군지 몰라요?”
“몰라요. 파티장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이었기도 하고 가면을 쓰고 있어서 누군지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진우남은 느릿느릿 답하고 있었다.
“그런데 제가 듣기로는 도련님이 그 여자한테 협박을 당하고 있어서 도와준 거라고 하던데요.”
“그래요? 뭐 좋을 대로 생각하세요. 더 묻고 싶은 거 있나요?”
진우남은 어깨를 들썩거리며 받아칠 수 없는 말을 건네고 있었다.
“진우남은 역시 여우야.”
서지민은 욕을 내뱉었다.
경도준은 그한테 시선을 주었다.
“형이 무슨 뜻인지 알아. 아무리 진우남이 여우라고 해도 형을 이기지는 못할 거니까.”
서지민은 즉시 얼굴에 흥분이 번뜩이더니 한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진우남이 입을 열던 안 열던 형이 상관없다고 했었으니...
기록실 안에서 육대장의 휴대폰이 울렸다.
육대장은 진우남을 힐끗 쳐다보고는 전화를 받았고 아무 말 없이 상대 쪽에서 하는 말만 귀담아듣고 있었다.
진우남은 전혀 개의치 않아 하는 표정이었다.
“고씨네 큰 아가씨인 고하진 씨요?”
진우남 반대편에 앉아 있는 육대장은 언성을 높였다.
경도준은 화명 속에서 진우남의 표정 변화를 관찰하고 있었다.
이건 경도준이 설계한 상황극이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진우남이 일만큼의 허점이라도 보이는 날에 절대로 경도준의 눈을 피해 갈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 진우남의 휴대폰이 울렸다.
진우남은 마치 꿈에서 깨어나기라도 한 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여보세요. 형.”
진우남은 전화를 받으며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갑작스레 걸려 온 전화가 아니었다면 방금 허점을 보였을 게 분명하다.
뒤에서 지켜보고 있는 그놈 대단한데!
어쩜 이런 식으로 나를 떠봐?
심문하던 사람이 갑작스레 전화를 받아 고하진을 입에 올릴 거라는 걸 미리 예상하고 왔다고 쳐도 평온함을 유지하기란 여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리고 지금 그의 표정을 관찰하고 있는 사람의 능력 또한 느껴본 바가 있는 터라 조금이라도 이상한 점을 보였다면 무조건 들키고도 남았을 테다.
“제기랄! 어쩜 이 관건적인 순간에 전화가 와?”
동영상을 지켜보던 서지민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우리 계획이 다 흩어졌잖아.”
경도진도 이 전화 한 통으로 계획이 무산됐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고하진에 대해서 샅샅이 조사해 봐.”
“알았어.”
서지민은 고하진일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여기고 있기는 하지만 형이 조사하라고 했으니 행동에 옮길 수밖에 없었다.
일 처리가 신속한 진구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전화를 걸어왔다.
“도련님, 주유소 쪽에서 조사를 해 봤는데 직원의 말로는 그 여자가 택시를 잡아달라고 했대요. 그 택시 기사를 찾았고요.”
“그래.”
경도준은 담담하게 응답하고 있었다.
“서장님, 저는 착실하게 돈을 벌고 있는 운전기사예요. 법을 어기는 일을 한 적이 없어요.”
택시 기사는 호텔 입구에 서 있는 경찰들 중에서 서지민을 알아보고 겁에 질린 건지 털썩 무릎을 꿇었다.
“법을 어긴 적이 없어? 30분 전에 맞은편 주유소에서 손님 하나 태웠었지?”
이번에는 서지민이 직접 나서서 심문을 하고 있었고 경도준은 옆에서 지켜보는 중이었다.
“네. 네. 택시 어플로 누군가가 택시를 잡고 있길래 마침 근처라 제가 간 거예요.”
운전기사는 긴장감이 살짝 풀린 듯했다.
“어떤 사람이었어?”
서지민은 계속하여 심문을 이어갔다.
“여자분이었는데 얼굴에는 여우 가면을 쓰고 있었고 과한 머리 장식에다 복장이 조금 이상했어요. 몸매는 좋아 보였고요. 주유소에서 그분을 싣자마자 그분이 도시 중심으로 가달라고 했어요. 가는 길 내내 아무런 대화도 하지 않았어요.”
그녀가 인상이 깊었던 운전 기사는 자세한 상황 설명을 해주었다.
서지민은 경도준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 여자 맞는 것 같은데.”
경도준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시간과 위치도 맞아떨어진 걸로 보아 그 여자가 맞겠네.
전에 파티장에서 흰옷을 입고 있었는데 나중에는 피가 묻은 흰옷을 이혜인한테 입혔었다.
서지민은 신속하고도 민첩하게 행동하며 큰형의 포위망을 벗어난 그 여자에 대해 또 다른 정보는 얻을 수 없을 거라 여기고 기대감 없이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그럼 얼굴도 봤어?”
“네. 봤어요.”
운전기사의 답은 실로 충격이었다.
“차를 내리면서 택시비를 낼 돈이 없다고 했어요. 나중에 보상하겠다고 했고요. 그래서 제가 가면을 벗으라고 하니까 쭈뼛쭈뼛하면서 벗더라고요. 그래서 얼굴을 보게 됐었어요.”
“제대로 봤어? 어떻게 생겼는데?”
주저앉아 있던 서지민은 자세가 꼿꼿해진 채 눈빛을 반짝거렸다.
이런 걸 막다른 곳에서 길이 열린다고 하는 건가?
그 여자의 생김새를 알고 나면 어떻게든 찾아낼 수 있잖아?
경도준이 불쑥 입을 열었다.
“고하진 사진 보여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