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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장

강다인은 강별이 자신을 쳐다보는 눈길을 느끼며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그 순간 그녀의 전화가 울렸다. 발신자는 강서준이었다. “다인아, 너 지금 경기장에 있지?” 강다인의 가슴에 불길한 예감이 밀려왔다. 부정하고 싶었지만 주변에서 들려오는 팬들의 환호성은 이미 답을 대신하고 있었다. “다인아, 하늘이랑 내가 회사에 갑작스러운 일이 생겨서 경기에 못 가게 됐어. 오늘 경기는 별이에게 정말 중요한 경기야. 네가 대신 팀에 들어가서 경기를 해줘. 너랑 별이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든 어려울 때는 가족끼리 뭉쳐야 하는 거 아니겠어?” 강서준의 말을 들은 순간 강다인은 주위가 고요해지는 것 같았다. 마치 모든 소리가 사라진 듯했다. 그녀는 대답 대신 전화를 끊어 버렸다.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았다. 오늘 그녀는 경기를 보러 온 것이지 경기하러 온 게 아니었다. 무대 위의 강별은 잠시 기다리다 강다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백스테이지로 향하지 않자 점점 짜증이 났다. 그는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쟤는 도대체 무슨 생각이야? 내가 직접 내려가서 데리고 오란 말이야?” 김지우의 눈가에 웃음이 스쳤다. “오빠, 내가 다인 언니한테 메시지 보낼게요. 근데 언니가 관객석에 앉아 있는 걸 보면 아직 화가 풀리지 않은 것 같아요. 원래 언니 성격이라면 오빠가 말하지 않아도 바로 뛰어왔을 텐데요.” 강별은 예전의 강다인을 떠올렸다. 확실히 그때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움직였고 늘 그의 필요를 채워주었다. 그는 그런 강다인의 헌신에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녀는 완전히 변해버린 것처럼 보였다. 강별은 멋쩍게 말했다. “네가 다인이에게 전화해 봐. 만약 다인이가 경기하러 온다면 예전 일은 따지지 않고 다시 동생으로 대해준다고 해.” 지난번 학교에서 있었던 일은 그가 너무 충동적으로 대응했던 탓이었다. 그래도 그녀가 고개를 숙이기만 하면 그도 문제 삼지 않고 모두가 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김지우는 표정이 잠시 굳었지만 억지로 미소를 유지하며 말했다. “알겠어요. 지금 바로 전화해 볼게요. 다인 언니도 오빠를 생각해서 분명 올 거예요.” 그제야 강별의 표정이 살짝 누그러졌다. 김지우는 옆으로 가서 전화를 걸며 관객석에 앉아 있는 강다인을 흘깃 쳐다봤다. 그녀의 눈빛은 어둡고 복잡했다. 강다인은 휴대폰 화면에 뜨는 김지우의 이름을 보고 고개를 들어 무대 위를 보았다. 굳이 전화를 받지 않아도 김지우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뻔히 알 수 있었다. 강다인은 전화를 끊어버린 뒤 무표정하게 무대 위를 쳐다보았다. 김지우는 전화를 끊은 강다인을 보고 놀란 듯하다가 이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잘됐네. 시간 낭비 안 해도 되겠어.’ 김지우는 사실 강다인이 경기장에 내려와 자신의 자리를 빼앗을까 봐 내심 걱정했다. 하지만 이제 강다인에게 경기장에 설 기회를 줄 필요가 없었다. 그녀는 강다인에게 자신과 강별이 이 경기에서 승리하는 모습을 직접 보여줄 생각이었다. 김지우는 강별에게 돌아가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오빠, 내가 말주변이 없어서 그런지 다인 언니가 나를 싫어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전화를 안 받은 것 같아요. 내가 직접 찾아가 볼까요?” 그러자 강별은 표정을 굳히며 단호하게 말했다. “그럴 필요 없어. 방금 서준 형도 다인이에게 전화했는데 끊었다고 하더라. 쟤는 처음부터 경기할 생각이 없었던 거야. 더 이상 신경 쓰지 마.” “오빠, 나는 다인 언니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믿어요. 언니가 우리를 비웃으러 온 건 아닐 거예요.” 강별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흥, 이번 경기는 우리가 반드시 이길 거야. 절대 강다인의 뜻대로 되게 놔두지 않을 거야.” 그는 이어폰을 꽂고 더 이상 관객석을 보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김지우는 만족스럽게 미소 지었다. ‘강다인, 이번에도 내가 이겼어.’ 곧 경기 시작을 알리는 안내가 흘러나왔다. 강인 크루와 네온 플레임의 대결이 막을 올렸다. 강다인은 대형 스크린에 비치는 해설 화면을 보며 경기를 주의 깊게 지켜보았다. 초반에 강별은 암살자로 팀을 이끌고 매복을 지시했다. 하지만 상대 팀은 이미 강별의 플레이 스타일을 연구해 둔 듯했다. 그들은 의도적으로 미끼를 던졌다. 전생에 강다인은 이 상황에서 상대가 너무 쉽게 잡히는 걸 보고 의심스러워 강별에게 경고했었다. 전부 돌격하지 말고 신중하게 움직여야 한다고. 하지만 당시 강별은 그녀의 경고를 무시하며 화를 냈다. 결국 그는 몇 명만 데리고 상황을 보러 갔다가 네온 플레임의 함정에 걸려들었다. 남은 팀원들을 데리고 적진으로 돌진해 상대의 기지를 점령했던 건 강다인의 활약이었다. 이번 생에서도 상황은 똑같았다. 강별은 또다시 모든 팀원을 데리고 함정 속으로 뛰어들었다. 강다인은 이 예상된 전개를 보고 냉소를 흘렸다. ‘역시 변함없네.’ 결국 강별은 함정에 빠졌고 팀의 전반적인 흐름이 무너졌다. 김지우는 당황해서 실수를 연발하며 팀원들에게까지 피해를 끼쳤다. 강별은 팀원들을 데리고 간신히 한 건물로 후퇴했다. 그는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욕설을 퍼부었다. “김지우, 네 머리는 장식이야? 다 같이 후퇴하라고 했잖아! 그런데 혼자서 나서서 뭐 하는 짓이야? 그렇게 잘난 척하고 싶어?” 김지우도 이미 멘탈이 흔들린 상태였다. 그녀는 억울한 듯 반박했다. “오빠, 그냥 체력 없는 애를 두고 볼 수 없어서 하나만 잡으려고 했던 거라고요.” 강별은 콧방귀를 뀌며 비꼬았다. “네가 뭘 잡아? 잡히지 않으면 다행이지. 네가 한 짓 때문에 잡기는커녕 오히려 우리 위치만 들켰잖아. 그렇게 실력에 자신 있다면 애초에 함정에 빠지지도 않았겠지.” 김지우는 모든 팀원 앞에서 쏟아진 강별의 비난에 얼굴이 빨개졌다. 그녀는 자존심이 상해 얼른 반박했다. “오빠가 함정에 빠져서 우리 다 같이 휘말렸잖아요. 그래서 일이 이렇게 된 거 아니에요?” 강별은 그 말을 듣고 화를 참지 못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네가 그런 말 할 자격이 있어? 네가 제일 못해서 우리 팀 전부를 발목 잡은 거야. 그동안 훈련한 게 대체 어디로 간 거야? 네가 우리 팀 시간을 다 낭비했어!” 김지우의 얼굴은 마치 팔레트처럼 울긋불긋하게 물들더니 끝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녀는 그대로 경기를 떠나버렸다. 순간 경기장 안은 웅성거림으로 가득 찼다. 팀원이 경기 도중 자리를 떠나는 건 흔치 않은 일이었고 이는 경기 흐름에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다. 대형 스크린에는 강인 크루의 분위기가 적나라하게 비쳤고 강별의 굳은 표정이 선명히 잡혔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심판에게 시간을 요청하며 경기를 잠시 멈춰야 했다. 모든 팀이 경기 중 한 번 사용할 수 있는 일시 정지 기회를 이렇게 허비하게 된 것이다. 상대 팀 팬들은 조롱 섞인 웃음을 터뜨리며 벌써 축하를 시작했다. 강별은 키보드를 세게 내려치며 분노를 참지 못했다. 김지우가 감히 이런 상황에서 태연히 자리를 뜨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만약 강다인이라면 그가 아무리 혼을 내도 절대 이런 식으로 팀을 버리고 가는 행동은 하지 않았을 터였다. 경기장 분위기가 어색하게 가라앉았다. 그 틈을 타 상대 팀 네온 플레임의 한 선수가 자리에서 일어나 비웃으며 말했다. “야, 강별. 그냥 여기서 깔끔하게 항복하는 게 어때? 괜히 더 비참해질 필요 없잖아.” 강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항복? 웃기지 마! 우리가 이길 테니까 너희 걱정이나 해!” 상대 팀원은 여유 있게 말을 이어갔다. “누가 봐도 너희가 질 게 뻔한데 무슨 소리야? 심지어 팀원도 나가버렸잖아. 이게 네가 자랑하던 그 가족 팀워크야?” 그러더니 비꼬는 말투로 덧붙였다. “아니, 근데 가족 팀이라더니,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 자랑하냐? 부모님 돌아가시고 남겨진 애들끼리 꾸린 팀 아니었어? 게임은 누가 애 많이 나았는지 자랑하는 게 아니거든.” 그 순간 강별의 표정이 완전히 일그러졌다. 그는 폭발할 듯이 소리쳤다. “입 다물어! 네가 뭔데 우리 가족 얘기를 해?” 상대 선수는 여전히 비아냥거리는 태도로 말했다. “뭐? 내가 틀린 말이라도 했어? 한 번 덤벼보시지. 부모도 없는 주제에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쓰레기 같은 게! 너희 부모님이 살아계셨다면 네 경기 보다가 어이없어서 다시 돌아가셨겠다!” 그 말을 들은 강다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녀의 표정은 얼음장처럼 차갑게 변했고 눈빛에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 ‘저 새끼들이 감히 부모님을 모욕해?’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강다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로 백스테이지로 향했다. 한편 강별은 격분하며 상대 선수에게 달려들려 했지만 팀원들에게 강제로 붙잡혀 자리에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만약 관객들 앞에서 싸움이라도 벌인다면 더 큰 망신만 당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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