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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장

강별은 경기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강서준이 강별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성적이 나오면 내가 다시 한번 잘 얘기해볼게. 어쨌거나 부활전보다 중요한 건 없으니까.” 강별은 불쾌한 표정으로 말했다. “애초에 강다인이 하도 부탁해서 게임하는 법을 가르쳐줬더니 이제 와서 나한테 위세를 부려?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계산적인 사람이 된 거지? 정 안 되면 동준 형을 찾아가는 게 어때? 아무리 건방져도 큰형의 체면은 살려주겠지.” 옆에서 듣고 있던 김지우는 화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어떻게 얻은 자리인데 절대로 강다인에게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 강다인이 학교에 도착했을 때 다들 이번 시험 결과에 대해 의논하고 있었다. 박지민은 강다인을 힐긋 쳐다보더니 일부러 목소리를 높였다. “요즘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가 있던데 몇 점이나 받았을지 모르겠네?” 강다인은 아무렇지 않은 척 교과서를 꺼내 복습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잔뜩 긴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유빈이 성적표를 들고 오자 교실은 떠들썩하기 시작했다. 나유빈은 교탁을 내리치며 말했다. “다들 조용! 이번에 전체적으로 성적이 썩 좋은 편은 아니야. 지금은 더 열심히 해야 할 때야. 특히 지우는 200등 밖으로 떨어졌어.” 김지우의 표정은 하얗게 질렸다. 요즘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시험 성적이 이 정도로 부진할 줄은 몰랐다. 나유빈은 강다인을 바라보더니 머뭇거리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다인이는 이번에 장족의 발전을 이뤘으니 앞으로도 계속 열심히 해.” 박지민이 냉큼 되물었다. “선생님, 강다인은 몇 등인데요?” “현재 전교 100등이야.” 말이 끝나기 무섭게 교실은 발칵 뒤집혔다. 강다인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진짜 해내다니! 그녀는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드디어 이석훈에게 성적을 알려줄 기회가 찾아왔다. 그동안의 노력이 결실을 보는 순간이었다. 앞으로도 지금처럼 열심히 한다면 운성대학교에 진학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 강다인의 성적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에요? 이렇게 짧은 시간 안에 100등을 한다는 게 의심스럽네요.” 누군가 의문을 제기하자 교실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강다인에게 쏠렸고 하나같이 두 눈에 의혹이 가득했다. 강다인의 순위를 확인하고 나서 나유빈도 속으로 의구심을 품었지만 그녀가 최근에 열심히 노력한 것도 사실이었다. 이때, 김지우가 조심스레 말을 보탰다. “선생님, 다인 언니는 본인을 증명하기 위해 좋은 성적을 받아야만 했어요. 왜냐하면 오빠들이랑 내기했기에 절대로 성적을 의심하지 말아 주세요. 이번 성적이 언니한테 정말 중요하거든요. 제발요.” 정말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내용이지 않은가? 강다인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보통 수단으로 여우짓은 엄두도 못 내겠는데?’ 전생에 김지우에게 눈 뜨고 코 베인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나유빈은 이 말을 듣자마자 강다인이 내기에서 이기려고 커닝까지 감수했다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박지민이 불난 집에 부채질했다. “선생님, 커닝하는 사람은 절대로 감싸주면 안 돼요. 요즘 지우와 강다인은 집안이 참가하는 경기 때문에 준비하느라 바쁜데 누구는 성적이 이렇게 많이 떨어지고, 누구는 갑자기 일취월장한다는 게 납득이 가세요?” 김지우의 또 다른 껌딱지 서예정도 말을 보탰다. “맞아요. 선생님! 공정성을 위해서라도 강다인의 성적을 취소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망설이는 나유빈의 모습을 보자 김지우는 담임 선생님이 자기 말을 철석같이 믿고 있다고 확신했다. 이번에도 그녀의 완승이었다. ‘감히 또다시 나를 짓밟으려고 해? 정녕 무슨 대가를 치르게 될지 모르는 거야?’ “강다인, 뭐라도 해명해야 하지 않겠어?” 나유빈의 의심 어린 시선을 느낀 강다인은 무심하게 말했다. “커닝한 적 없어요.” 단 한 마디로 왈가불가 말을 보태지도 않았다. 전생에 김지우 보다 시험을 잘 보기만 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태클을 거는 바람에 나중에는 차마 뛰어넘을 엄두도 못 냈다. 그런데 똑같은 수법을 또다시 시전하기 시작하다니! 김지우가 재빨리 끼어들었다. “선생님, 다인 언니는 커닝 안 한다고 했잖아요. 이제 그만 의심하세요. 만약 성적을 취소하면 모두에게 공평할지도 모르지만 다인 언니가 상처받을 수도 있어요.” 나유빈은 잠깐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일단 확실하게 조사하기 전까지 강다인의 순위는 무효로 할게. 만약 진짜 커닝했다면 상응한 처벌을 받게 될 거야.” 나유빈이 나간 후 교실은 금세 시끌벅적해졌다. 박지민의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쩐지 성적이 많이 올랐다고 했더니 커닝한 거였어?” 김지우는 뿌듯한 표정을 지으며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 강별에게 ‘좋은 소식’을 전했다. [별이 오빠, 어떡해요? 다인 언니가 글쎄 내기에서 이기기 위해 성적을 올리려고 시험 볼 때 커닝했지 뭐예요. 어쩌면 처분받을 지도 모르는데 언니가 너무 걱정돼요.] 강다인은 책을 펼쳐 복습하기 시작했다. 사실 순위가 취소되든 말든 전혀 관심이 없었다. 김지우가 아무리 훼방을 놓아도 기껏해야 나유빈만 의심할 뿐 성적까지 바꿀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물론 속상하지 않다면 거짓말이었다. 어쨌거나 100등 안에 들면 이석훈과 함께 게임을 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보건실에 안 간 지 꽤 되었고, 전에 보낸 문자도 아직 답장을 못 받았다. 강다인은 괜스레 기분이 울적했다. 어렵게 친구가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어디까지나 혼자만의 착각에 불과했다. 오전 수업이 끝날 무렵 교실 밖에서 여학생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강다인이 고개를 돌리자 다름 아닌 강별이었다. ‘여긴 왜 왔지?’ “지우야, 너희 오빠 너무 잘생겼잖아?” 김지우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강별이 건네준 컵케이크를 받으러 앞으로 나섰다. “별이 오빠, 다인 언니는 교실에 있어요. 언니랑 잘 좀 얘기해 봐요. 만약 허심탄회하게 사과하고 커닝했다고 인정하면 처벌 안 받을지도 모르니까.” 강별은 교실에 있는 강다인을 힐끗 쳐다보았다. 다만 고개를 푹 숙인 채 손에 든 교과서만 조용히 바라보고 있었다. 강다인은 강별이 왜 학교에 왔는지 굳이 짐작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김지우는 그녀가 망신당하는 꼴을 한시라도 빨리 보고 싶어 안달 난 듯싶었다. 성적이 취소되든 말든 커닝만큼은 인정할 생각이 없었다. 김지우는 교실 입구에 서서 능청스럽게 말했다. “다인 언니, 별이 오빠가 왔으니까 걱정 안 해도 돼.” 강다인은 못 들은 척했고 밖에 있는 강별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강별의 안색이 점점 어두워졌고 걱정하던 마음이 어느새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강다인을 신경 쓸 이유가 뭐 있겠는가? 이내 싸늘한 목소리로 말해다. “일단 교무실에 가서 담임 선생님 만나고 올게.” 그리고 뒤돌아서 저벅저벅 걸어갔다. 김지우는 케이크를 들고 강다인에게 다가갔다. “다인 언니, 별이 오빠가 케이크를 하나만 가져와서 날 줘버렸네? 아마 실수로 깜빡한 것 같은데 이따가 나눠 줄게.” 강다인은 김지우가 자랑하려는 걸 모를 리 없었다. 전생에는 오빠들이 학교에 찾아올 때마다 김지우에게 작은 선물을 챙겨주는 것에 이미 적응이 되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의 몫은 없었다. 나중에 울면서 하소연한 적이 있지만, 강서준은 말을 듣지 않아 선물을 못 준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은 선물을 가져다준다고 해도 전혀 부럽지 않았다. 이때 벨 소리가 울렸고 다름 아닌 이석훈한테서 걸려 온 전화였다. 이내 휴대폰을 들고 복도로 나가 심호흡하고 나서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선생님?” “성적은 어때요?” 강다인은 마음이 울컥했다. “원래 100등인데 성적이 취소될 것 같아요.” 이 말을 듣자 여유만만하던 이석훈의 표정이 진지하게 변했다. “무슨 일인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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