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시카고의 매니저는 CCTV 앞에 서서 말이 없는 남자를 보며 조심스럽게 해명했다.
“CCTV 사각지대에 놓여있어서 뒷모습만 찍혔습니다…”
그는 남자의 표정을 살폈다. 남자의 신분상 아무 말이나 해도 자신이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두려워서 온몸을 부덜부덜 떨었다.
“경보는 안 울렸어?”
시카고는 최고급의 유흥업소로 주차장에는 항상 고급차로 가득 차 있어서,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 모든 주차 공간에 경보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CCTV 화면 속에서 몸매가 호리호리한 여자가 불쑥 경보기 앞으로 다가오더니 고개를 숙이고 뭔가를 하고 있었다. 그러자 빨간 불빛이 깜빡이던 기계가 순식간에 멈추었다.
“이 여자가 껌으로 붙어놨어요…”
매니저의 말투가 굳어졌다. 여자는 일어서서 CCTV 를 등지고 도발적으로 가운데 손가락을 세웠다. 그러고 나서 당당하게 구석에 있던 망치를 끌어와 벤틀리 앞유리를 힘껏 내리쳤다!
“모든 것이 저희의 업무상 과실입니다. 경호원이 때마침 밖에서 난동사건을 처리하고 있어서, 이렇게 큰 사고가 발생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고객님께 끼친 모든 손실은 저의 시카고에서 전부 부담하겠습니다!”
박서준은 전혀 개의치 않고, 매의 눈으로 화면 속 그림자를 주시하다가, 갑자기 고개를 들어 모니터 속 다른 쪽의 페라리를 가리켰다.
“3일 안으로 저 차의 차주를 찾아내!”
그는 외투를 걸치고 뒤돌아서 안전실을 떠났다. 차가운 목소리는 달밤에 한 층더 서늘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보기에는 시카고는 더 이상 운영할 가치가 없을 것 같에.”
새로 이사한 오피스텔이 본가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백아린은 점심 시간에 늦어질까 봐 일부러 일찍 택시를 잡고 갔다.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박서준의 어머니인 손희진이 권은비의 손을 끌어잡고 박서준의 사촌 누나인 박나정과 박씨 집안의 여자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 웃음과 활기찬 분위기는 백아린이 박씨 집안에서 느끼지 못했던 따뜻함이었다.
그녀는 더 이상 예전처럼 사람들 사이에 끼어들어서 그들의 화제에 참여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그저 대충 소파 한 자리를 골라 앉아서 제멋대로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렸다.
“집에 들어 와서 사람을 보면 인사할 줄 모르고 그저 앉아서 핸드폰이나 놀고 있다니. 요즘의 젊은이는 정말 버릇이 없어!”
그녀가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은 오히려 그녀를 가만둘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박서준의 큰 어머니는 눈썰미가 있어 백아린이 들어오는 것을 보자마자 날카로운 목소리로 비꼬지 않을 수 없었다.
백아린은 애니팡을 놀면서 내키는 대로 답했다.
“곧 이혼하는 마당에 굳이 화목한 척 할 필요가 없는 거 아닌가요?”
그녀의 인정사정 없는 말에 순간 큰 어머니의 말문을 막히게 하였다.
온 박씨 집안에서 박씨 가문의 미래 주인인 박서준의 와이프는 성격이 좋아서, 다른 사람이 아무리 조롱하고 비웃어도 아무 소리 하지 않는 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왠지 무슨 약을 잘못 먹은 것 같은 느낌이 들지?
박서준의 셋째 숙모는 눈동자를 구르더니 마치 놀란 듯이 물었다.
“이혼? 왜 이혼하는 거야, 언제 쩍 일인데, 서준이 하고는 얘기한 거야? 어째서 갑자기 이렇게 큰일이 우리는 아무도…”
“셋째 숙모님 연기좀 잘 하시지요. 당신들 벌써 미래 박씨 집안의 며느리를 끌고 거기서 수다 떨고 있는데, 무슨 뻔한 말씀을 하세요?”
백아린은 눈을 희번덕거렸다.
“우리가 이혼했기에 우리더러 본가로 내려와서 밥 먹으라고 한 거 아니에요? 당신들도 구경하러 온 거잖아요. 예전 할아버지 생신 때에는 여러분들께서 이렇게 한 자리에 모이지 않더니!”
셋째 숙모가 곤경에 빠지더니 말문이 막혀서 안색이 별로 좋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손아랫사람한테 말문이 막히자, 셋째 숙모는 화가 치밀어 견디다 못해 호통쳤다.
“좋은 마음으로 물어본 건데, 너 이 태도는 뭐야. 윗사람한테 무슨 말버릇이야?”
“그리고 아버님의 생신도 당사자가 아무 말이 없었는데, 너란 외부인은 무슨 말참견이야?”
백아린의 애니팡이 또 한번의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더니 되는대로 말했다.
“네네네, 제가 외부인이죠. 당신께서 이 외부인이 이혼했는지 안 했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져서 뭐 하세요, 철수의 할아버지가 어떻게 아흔까지 살았는지 아세요?”
“너!”
셋째 숙모가 막상 백아린과 말다툼을 벌이려고 하자, 손희진은 마치 중재자인 것처럼 손으로 셋째 숙모를 끌어당기면서 위로했다.
“됐어요, 걔랑 같은 척 하지 마세요. 자네의 품위를 낮추는 거예요. 얘가 이 집에 들어올 때부터 버릇이 없는 아래 것들이라는 것을 알고 계셨잖아요. 어차피 곧 이혼하는 마당에 앞으로 안 보면 돼요!”
맞은 켠에 있던 박나정도 맞장구를 쳤다.
“둘째 숙모가 하는 말이 맞아요. 어떤 계층의 사람에게는 그 수준에 맞는 말을 하는 거예요. 굳이 아래 것들과 따지려고 하면, 우리가 똑같은 사람으로 되는 거예요.”
말하면서 백아린을 향해 곁눈질하며 눈빛에는 경멸이 가득 찼다.
백아린은 드디어 애니팡 게임에서 고개를 들어 박나정을 향해 한참 보더니, 돌연 냉소했다.
“말다툼에서 졌으면 졌다고 인정이나 해. 뻔뻔하게 잘난 척하기는!”
박나정은 그녀의 말에 핀잔을 받자 돌연 안색이 나빠지더니, 어떻게 말을 꺼낼지를 몰라 망설이던 중에 갑자기 눈빛이 변하더니 권은비를 향해 영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 동생이 이런 막돼먹은 여자를 데려오는 것에 믿어지지가 않아. 얘랑 말할 때마다 그 촌스러운 느낌에 내가 미칠 지경이야!”
권은비는 그 뜻을 이해하고 따라서 영어로 비꼬았다.
“맞아요. 걔는 항상 나를 외국의 빈곤마을에 있는 아줌마를 생각나게 해요. 쓰레기통을 뒤져서 나온 헌 치마를 놓고 한 무리의 사람들이 머리채를 잡고 욕설을 퍼붓는 것이 정말로 촌스러워요!”
두 사람은 합이 잘 맞은 듯 하하하고 웃으면서, 우러나오는 우월감으로 인해 그녀들은 백아린을 바라보는 눈빛이 한층 거만해졌다.
“당신이 해외에서 굳이 호주 억양으로 순수한 런던 억양을 흉내 낼 때, 정말로 캥거루가 쫓아와서 당신 뺨을 때리지 않나요?”
백아린은 휴대전화를 아무렇게나 옆에다 휙 던져버리고, 두 팔을 가슴 위에 감싸며 두 사람을 마치 광대 보듯 쳐다보았다.
그녀는 먼저 영어로 박나정을 갈구었다.
“당신이 매번 똑똑한 체하며 영어로 내 험담을 할 때, 정말로 스타게이지 파이를 잘못 먹어서 뇌가 어떻게 된 것 같에!”
박나정의 안색은 순식간에 마치 팔레트처럼 바꿔어 지더니 보기가 매우 흉했다.
그녀는 멍한 채 백아린이 갑자기 알아들을 수 없는 구절을 내뱉는 것을 듣고 있다가, 몇 마디 흩어진 단어 속에서 이 말이 좋은 말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백아린을 휴대전화를 챙기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고 하는 것을 보자, 그녀는 앞으로 다가가 백아린의 팔을 확 잡고 일그러진 표정으로 큰소리로 외쳤다.
“너 대체 뒤에서 내 무슨 말을 한 거야, 제대로 말하지 않으면 나갈 생각 하지 마!”
백아린은 멈칫하더니 위아래로 그녀를 한참 동안 훑어보고는 갑자기 옅은 웃음을 지었다.
“아무것도 없어요. 그저 전 세계의 공용언어로 당신이 멍청이라는 사실을 말해줬을 뿐이야.”
박나정의 안색은 더욱 안 좋아졌고 이를 악물며 몇 마디를 되갚으려고 했지만, 오히려 한참 동안 무슨 말을 할지를 몰랐다. 백아린은 더 이상 그녀랑 시간 낭비하는 것이 귀찮아서 곧바로 그녀의 손을 뿌리치고는 나가려고 했다.
“썅년, 너…”
“도련님께서 오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