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박서준이 수시로 깨어날까 봐 걱정이 된 백아린은 살금살금 침대에서 내려와 옷을 갈아입으려고 했는데, 자기의 스커트가 이미 형편없이 찢어진 것을 발견하고는 이를 악물고 박서준의 셔츠를 껴입고, 자기의 옷을 껴안고 도둑처럼 방문을 빠져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하도 빨리 걸어서, 방금 전 엘리베이터에 들어서자마자 한 몸매가 화끈한 여자가 다른 방에서 전화 대고 욕설을 퍼부으면서 자기가 조금 전에 나온 방으로 걸어가는 것을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알았어, 알았어, 은주 언니. 영화의 일은 제가 어떻게든 방법을 알아볼게. 나 지금 박서준한테 있거든, 내가 그를 기분좋게 해 주면 우리가 가지고 싶은 거 다 얻을 수 있어!”
권은비는 다급하게 전화를 끊고 방문 앞으로 작은 걸음으로 달려가서, 직원을 매수해서 방 키를 얻으려고 고민하던 중에 문득 방문이 열려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멍해지더니 조심스럽게 문을 열자,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짙은 냄새가 풍겨 나왔다.
“어떻게 된 거야?!”
소파 위에 옷차림이 단정하지 못한 남자가 어렴풋이 깨어나려고 하는 것을 본 권은비는 더 이상 지체하지 않고, 재빠르게 문을 닫고 옷을 벗어던지고는 남자의 품 안으로 파고 들어갔다. 모든 동작이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었다.
남자가 서서히 눈을 떴을 때, 나른한 체하며 아양을 떨며 소리를 냈다.
“서준 씨…”
잠시 동안 망연자실하더니 박서준은 순간 정신을 차리고 벌떡 일어나서 눈살을 찌푸리고 권은비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권은비는 마음이 조마조마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순순히 달라붙어서 박서준의 팔짱을 끼려고 했다.
“괜찮아, 나 절대로 이 일로 당신을 협박하지 않아. 그저 당신 곁에 머물 수 있는 것 만으로도 만족해...”
퍽!
박서준을 닿기도 전에, 그는 권은비의 손을 쳐버렸다.
박서준의 한 쌍의 칠흑 같은 눈동자는 마치 사람의 마음을 꿰뚫기라도 하는 능력을 가진 것처럼 보였다.
“네가 약 탄 거 맞지?”
권은비는 동공이 흔들리더니, 무의식적으로 일어나서 박서준이 주의깊게 살피는 시선을 회피하고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그럴 리가. 당신 눈에 내가 그런 사람으로 보여?”
“난 나의 주량에 대해 잘 알고 있어.”
박서준은 차갑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와인 세 잔뿐이었어.”
박서준의 탐색적이고 심사적인 눈빛을 바라보며, 권은비는 억지로 박서준이 술김에 한 짓이라고 강경하게 주장했다.
그녀의 얼굴에 불안해 하고 혼란한 표정을 띠는 것을 보고, 박서준은 눈썹을 치켜올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입으려고 하자, 자기의 셔츠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미간을 찡그리고 말을 꺼내려 하던 찰나, 바지 주머니 옆에서 순간 스쳐 지나가는 빛을 발견했다.
바지를 입는 동작을 빌어, 박서준은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그 악세사리를 주워다가 바지 주머니에 넣고 나서야 비로소 뒤돌아서 벌거벗은 권은비를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
“나가, 일 끝나고 나서 얘기하자.”
권은비는 감히 말할 용기조차도 없어서 서둘러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잠깐!”
박서준은 불쑥 입을 열어 권은비를 불러 세웠고, 그녀는 당황해 하며 고개를 돌리더니 귀에는 커다란 진주 귀걸이가 걸려져 있는 것을 보았다.
“내일 회사에 회의가 있어서 너 혼자 본가로 가.”
권은비가 문을 닫고 나가 후에야 박서준은 비로소 천천히 손에 움켜쥐고 있던 귀걸이를 꺼냈다. 작은 다이아몬드들로 만든 나비 모양의 긴 귀걸이였다.
카레이서의 VIP 휴게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나온 백아린은 박서준의 셔츠를 걸래 삼아 그녀의 찢어진 미니 스커트와 망가진 하이힐을 감싸고 몽땅 주차장의 쓰레기통에 버렸다.
서하영은 급한 일이 생겨 자리를 떠나면서 차 키를 그녀에게 남겼다. 백아린은 주차 공간으로 걸어가면서도 오늘 밤의 일을 생각하며 눈썹을 찡그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박서준이 배후의 회장님인 줄은 상상도 못했다. 이번 리조트 건은 입찰부터 기획까지는 그녀가 일년 반이나 투자해서 애써서 만든 결과물이다. 지금에 와서 그만두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백아린은 짜증을 내면서 헝클어진 잔머리를 귀뒤로 넘기다가 텅 빈 귓볼을 닿은 순간 멈칫했다—
자기의 나비 귀걸이는?
그건 그녀의 외할아버지께서 자기가 열어덟 번째 생일 때 주신 성년을 기념하는 선물이었다!
순간 한가지 불길한 예감이 문득 떠올랐다…
“박서준 이 개자식, 내가 재수가 오지게 없어서 너 같은 원수를 만나게 되었어!”
이제와서 다시 돌아가 찾는 건 분명 비현실적이다. 백아린은 남은 하나를 조심스럽게 가방 안쪽에 넣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풀이 죽은 채 스포츠카의 키 버튼을 눌러서, 맨 오른쪽 구석에서 반짝이는 불빛 속에서 마침내 서하영이 그녀에게 남긴 페라리 스포츠카를 발견했다.
까다롭고 기이한 각도로 원래는 한 대의 차만 주차할 수 있는 공간에 슈퍼카를 억지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다른 한 대의 차는 백아린이 아주 익숙한 박서준이 자주 이용하는 벤틀리였다.
지금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담당자한테 전화해서, 벨틀리의 차주더러 우선 차를 빼게 하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강제로 슈퍼카를 빼게 되면 긁힐 수 밖에 없다.
백아린은 손에 든 차 키를 위로 던지면서, 방금 정비를 받아 번쩍이는 검은색 벤틀리를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갑자기 묘한 웃음을 지었다.
시카고 3층 객실에서, 박서준은 회사 회의 통화를 마치자마자 권은비는 기다렸다는 듯이 방 안으로 들어오면서, 얼굴에는 애써 부끄러움과 긴장함을 나타냈지만, 그 속에는 기쁨과 으쓱함을 감출 수 없었다.
박서준은 무심코 휴대전화를 옆에다 내던지고는 무의식적으로 와인 한 잔을 따르려고 하자, 문득 무언가 생각난 듯 짜증스럽게 술병은 옆으로 밀치고 나서 두 다리를 꼬고 소파에 기대면서 차갑게 말했다.
“말해봐, 뭘 원하는 거야?”
권은비는 깜짝 놀라더니 서둘러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서준 아, 당신이 나에 대해 오해하고 있어. 난 정말로 이 일로 당신을 협박할 생각은 없어. 난 그저…”
박서준은 귀찮다는 듯이 스위스 군용 칼을 만지작거리면서 그냥 한 마디 던졌다.
“돈, 지위, 아니면 자원?”
권은비가 입을 열려고 하는 순간, 손을 내밀면서 그녀의 연설을 중단시켰다.
“시간이 급하니, 내 앞에서 네 막장 드라마 같은 대사를 늘어놓지 마.”
권은비의 안색이 조금 부자연스러웠고, 한참 동안 박서준의 표정을 관찰하고 나서 끝내 용기를 내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소문 듣기로 나태준 감독님이 요 며칠 사이에 귀국해서 해외합자한 영화를 한 편 제작하려고 한다고 하던데, 내가…”
“알았어.”
박서준의 대답이 깔끔했다.
“그 다음은, 한 번에 얘기해. 나 할부하는 습관 없어.”
그의 냉혹하고 무자비한 태도에 상처를 입은 듯, 권은비의 눈시울이 약간 붉어졌고, 다시 말을 꺼낼 때는 울먹이는 목소리가 섞여 있었다.
“당신 눈에는 내가 그런 사람으로 보여? 만약 그렇다면, 나 아무것도 필요 없어. 난 그저 영원히 당신 곁을 지켜주고 싶을 뿐이야!”
“너 욕심이 너무 과한 거 아니야.”
박서준은 고개를 숙이고 종이 위에 재빠르게 한 줄의 숫자를 적어서 권은비에게 건네주었다.
“이 번호로 전화해서, 내 이름을 대. 무슨 요구가 있으면 이 사람한테 얘기해. 앞으로 그들의 작업실은 너 한 사람만 위해서 움직일거야.”
권은비는 눈썹을 찡그리며 숫자들 사이에서 익숙한 이름을 어렴풋이 알아보고는 갑자기 눈을 번쩍 떴다.
“이건 전 세계에서도 최고에 속하는 매니지먼트 회사 아니야? 어머나, 서준아, 당신 정말 너무…”
갑작스러게 전화 벨소리가 울리더니 박서준은 손짓을 하며 권은비의 흥분된 목소리를 끊으면서, 눈살을 찌푸리며 전화를 받았다.
“내가 말하지 않았나, 3시 이전에는 방해하지 말라고… 뭐라고? 차가 부서졌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