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모든 준비를 마치자 백아린은 다시 운전석에 앉았다.
코드라이버인 서하영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는 긴장하며 말했다.
“어때, 3년이 지난 지금 아직도 전에 네가 세운 기록을 넘을 자신 있어?”
백아린은 안전벨트를 매고, 한 손으로 기어를 넣고 클러치를 밟은 뒤 갑자기 고개를 돌려 서하영을 향해 활짝 웃었다.
“나야 OK이지, 근데…”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팔 소리가 울리더니 백아린은 가속 페달을 힘껏 밟자, 레이싱카는 쏜살같이 그대로 질주해 나갔다!
“… 네가 버틸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
붉은색 레이싱카는 월등히 앞서가며, 헤드라이트를 켠 지하 레이스트랙에서 비인간적인 속도로 잔영을 남기면서, 그녀의 속도는 모든 경주 차량을 휩쓸며 상공에서 보면 마치 붉은 띠처럼 그려졌다.
“와씨! 나찰은 역시 나찰이야. 3년 동안의 공백기가 있어도 이런 카레이서들을 상대하는 데 그저 식은 죽 먹기네! 보아하니 블랙 크라운은 이미 그녀의 손아귀에 있네!”
권호성은 흥분하여 뒤돌아보자, 박서준은 긴 눈썹을 찌푸리고 차가운 표정으로 붉은 그림자를 응시하고 있었고, 사람을 찾았다는 기쁨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불쑥 입을 열었다.
“왠지, 이 나찰이라는 사람, 내가 알고 있는 사람과 닮은 것 같에…”
권호성은 미간을 찌푸리고 의문해 하며 물었다.
“설마, 3년 전에 나찰이 마지막으로 블랙 크라운을 차지고 나서 완전히 레이싱계에서 은퇴했고, 그 뒤로 시장 어디에서도 독보적인 천재 레이서에 대한 소식을 들은 적이 없었는데, 형이 어떻게 알 수 있겠어요?”
박서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너무 닮았어…”
똑똑똒—
갑작스러운 노크 소리에 두 사람의 대화가 끊겼다.
권호성은 박서준의 어두운 표정을 살피다가 잠시 망설였지만, 그래도 다가가서 방의 문잠금을 열었다.
방문이 좁게 열리더니 권은비의 아리따운 얼굴이 드러났다.
“서준 씨, 어머님께서 나한테 왜 당신의 전화가 안 되냐고 물어보셨어?”
박서준은 아무렇지 않게 옆에 놓은 휴대전화를 보더니, 이미 무음모드를 켠 상태로 설정되어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조용했다.
“무슨 일 있어?”
박서준이 자기를 쫓아낼 뜻이 없는 것을 본 권은비는 제멋대로 방 안으로 들어가고 나서는 박서준의 옆에서 유난히 얌전하게 서 있었다.
“내일 본가에서 가족모임이 있어서, 어머님께서 당신 언제 돌아가냐고 물어보셨어. 그리고 당신더러…”
그녀는 수줍은 듯 눈을 내려다보았다.
“… 당신더러 나를 데리고 같이 가라고 하셨어.”
박서준은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처음부터 끝까지 시선을 경기장 위의 붉은 그림자에 고정한 채, 권은비에게는 전혀 눈길을 주지 않았다.
“알았어.”
박서준의 동의 없이 권은비는 마음대로 앉을 수가 없었고, 그렇다고 해서 떠날 의사도 없이 그저 선 채로 소리 없이 버티고 있었다.
권호성은 이유 모를 어색함을 느끼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는데, 갑자기 총소리가 울리더니 승리의 환호가 경기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나찰 씨 축하드립니다. 다시 한 번 블랙 크라운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권호성은 순간 눈이 번쩍이더니, 뒤돌아서 밖으로 향했다.
“제가 가서 사람을 연락해서 데리고 오겠습니다!”
박서준은 천천히 소파에서 일어나 창문 쪽으로 다가가, 그 익숙한 사람이 시상대에 올라서서 사람들의 환호 속에 훈장을 받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눈은 점점 더 깊어졌다.
나찰, 당신 도대체 누구야?
그의 주의력은 전부 시상대에 집중되어 있어서, 뒤에 있는 권은비가 재빠르게 자기의 술잔 입구에 손을 뻗어서, 하얀색 알약을 붉은색 와인에 넣은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백아린은 모든 인터뷰를 사양하고 곧바로 개인 휴게실로 돌아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서하영은 손에 방 키를 들고 백아린에게 건넸다.
“3층의 VIP 룸, 회장님께서 기다리고 있어.”
백아린은 등 뒤 지퍼를 올렸다.
“면회실로 가면 안 돼? 굳이 룸에서 얘기해야 해?”
서하영도 약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쪽에서 회장님의 신분이 특별해서 함부로 드러낼 수 없다고 해서…”
“왜, 그 사람은 판다야, 그렇게 귀중해?”
그녀는 한 손으로 방 키를 가지고는 밖으로 걸어나가면서, 참다못해 작은 소리로 불평을 했다.
“박서준이랑 똑 같에, 술수를 부려서 사람을 현혹하는 것은 알아가지고!”
딩동하고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백아린은 푹신한 양털 카펫에 발을 디뎠다.
3층 전체가 쥐 죽은 듯이 조용했고 오가는 직원들조차 없는 것으로 보면, 분명 통째로 대절한 것 같았다.
그녀는 방 키를 두 손가락 사이에 끼고, 한 칸씩 문패를 지나치며, 마침내 마지막 객실 앞에 멈추고는, 손을 내밀어 문 앞에 키를 대었다.
띠하는 소라가 나더니, 방문이 열리자마자 짙은 담배와 술 냄새가 풍겨 나왔다.
백아린은 미간을 찌푸리고 무의식적으로 물러서려고 했지만, 결국은 그 입찰 프로젝트를 기억하고는 참고 또 참으면서 억지로 방문을 밀어냈다.
“안녕하세요, 혹시 청아 리조트 개발안의 회장님이신가요…”
갑자기 들이닥치는 열기가 순간 백아린을 감싸안았다. 도수가 강한 와인과 혼합되 최음제는 백아린의 머리를 혼미에 빠뜨리게 하였고, 의식이 흐릿해지기 직전 머릿속에 비상 신호가 울렸다.
백아린은 돌아서서 도망치려고 했는데, 아직 발걸음을 내딛기도 전에 힘찬 팔이 그녀의 허리를 감쌌고, 다음 순간 그녀를 강하게 끌어당겨 아늑한 방 안으로 들어갔다!
차가운 얇은 입술이 그녀의 뜨거운 귓불에 닿자마자, 백아린은 몸은 힘없이 풀렸고, 온몸의 힘이 그 팔 하나에 매달린 채 주체할 수 없이 아래로 축 늘어졌다.
그녀가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려고 할 때, 남자의 차가운 목소리에는 눈에 띄는 혐오감이 담겨 있었다.
“다시는 이런 비열한 수작을 부리지 마…”
백아린은 온몸이 흠칫하더니, 남은 의식이 그녀를 순간 깨우면서,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으면서 남자가 계속해서 자기의 몸에 키스하는 것을 거부했다.
“박서준, 내가 누군지 똑똑히 봐. 발정난 수컷처럼 굴지 마!”
하지만 최음제의 향기가 그녀의 온몸의 힘을 점점 빠지게 했다. 남녀 간의 엄청난 체력 차이 때문에 그녀는 박서준에게 단단히 안기게 되었고, 마치 아무나에게 마음대로 좌우지할 수 있는 인형과도 같았다.
쓰윽!
옷감이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백아린은 절망적으로 자기의 스커트가 두 동강 난 것을 깨달았다.
남자의 잔인한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당신이 누구든 간에, 제 발로 찾아온 거 아니야?!”
마치 처형 직전 최후통첩과도 같이 뜨거운 숨결이 그녀의 온몸을 거침없이 감쌌다.
그녀의 가늘고 하얀 손가락은 남자의 우람한 어깨에 걸머지고는 무모하게 필사적으로 발버둥을 쳤지만, 남자의 적나라한 힘에 의해 산산조각이 났다.
“제발, 그러지 마…”
긴 목덜미는 갑작스러운 통증 속에 우아한 백조처럼 길게 뺐고, 붉게 물든 눈시울에는 눈물이 맺혀 그녀의 떨리는 속눈썹에 걸려 있었다.
의식이 잃기 직전의 마지막 장면은 백아린이 침대보다 더 넓은 소파 위에 내던져지는 것이었고, 그녀는 고개를 젖혀 화려한 조명 속에서 자기가 방금 내려온 시상대를 엿볼 수 있었다.
다음 순간 그녀의 눈앞의 세계는 냉혹하고 잘생긴 남자로 완전히 뒤덮였고, 그는 그녀를 완전히 낯선 세계로 이끌었다...
백아린이 다시 깨어났을 때는 온몸이 시큰거리며 아팠고, 몸에 있는 멍자국은 마치 무슨 고문을 당한 것 같았다.
한편 옆에 있는 남자는 달콤하게 잠들어 있었고, 심지어 입가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까지 띄고 있었다. 백아린은 팔을 번쩍 들어 그를 때리려 했지만, 막상 때리려는 순간 박서준이 깨어나서 일이 더 수습하기가 어려워질까 봐 두려웠다.
결국에는 그의 얼굴을 가볍게 몇 대 때리고는 이를 갈며 협박했다.
“기다려, 내가 너 이 자식을 후려칠 기회가 언젠가 올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