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백아린은 캐리어를 끌고 별장 대문까지 가더니 긴 숨을 내쉬었다.
마침내 그녀는 완전히 자유로워졌다!
띵동!
휴대전화의 알림톡이 울리더니, 서하영의 메시지가 마치 경보처럼 그녀의 화면을 차지했다.
[그동안 따내고 싶었던 입찰이 드디어 진전이 보이게 되었어! 배후의 회장님이 말을 했는데, 누가 시카고의 블랙 챔피언을 따내면 그에게 조건을 제시할 기회가 주어진다고 하더라.]
시카고는 A 시의 최고급 유흥업소이었다. 게다가 지하3층에서는 VIP 회원에게만 참여할 자격이 있는 레이싱, 승마, 복싱 경기가 있었다.
오직 승패만 가리고 생사를 불문했다.
블랙 크라운은 레이스 경기의 최고의 표창으로, 그것은 단순히 빠르게 달려서 경기에 참가한 모든 차량을 이기는 것뿐만 아니라, 이전의 카레이서가 남긴 기록을 뛰어넘어야 했다.
지금까지 3년 동안 아무도 블랙 크라운을 따낸 사람은 없었다.
[하아, 그래도 네가 나가지 않으면 소용없어. 그때 네가 남긴 기록을 누가 깰 수 있겠어?]
백아린은 입꼬리를 올리며 웃더니 빠르게 문자를 남겼다.
[이혼했어. 20분 뒤 시카고에서 만나자.]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집어넣은 백아린은 주머니 속에서 미친 듯이 진동대는 것을 아랑곳하지 않고, 곧바로 택시를 잡아서 시카고로 향했다.
전화를 끊은 박서준은 아무 말 없이 그저 담담하게 앞에 서 있는 권은비를 바라보았다.
권은비는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얼굴은 애써 침착한 척하며 일부러 물었다.
“방금, 전화에서 당신 와이프의 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그녀는 돌연 긴장한 표정을 하더니 매우 죄책감이 느끼는 것처럼 보였다.
“설마 당신들한테 오해를 불러일으킨 건 아니겠죠?”
“미안해, 내가 직접 백아린 씨한테 설명…”
“이건 네가 바라던 결과 아닌가?”
박서준은 휴대전화를 테이블 위에 던지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도리어 권은비를 놀라게 해서 순간 얼굴의 핏기가 사라지게 되었다.
“서준 씨, 나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 당신이 오해한 거야. 내가 어떻게 당신의 결혼생활을 파괴하고 싶겠어?”
“상관없어.”
박서준은 또다시 서류를 훑어보면서 말투에는 짜증이 배어 있었다.
“정리가 다 됐으면 빨리 가.”
권은비는 한사코 목욕타월의 한 쪽을 꽉 움켜쥐고, 가슴과 다리를 적당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거울을 보며 한참 동안 자세를 잡았고, 심지어 약간 젖은 머리와 애처로운 모습까지 모두 집에서 수없이 연습한 결과였다.
그러나 박서준은 그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녀는 어금니를 악물고 옷을 하나씩 껴입고는, 자기를 등지고 있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박서준, 너 조만간에 내 것이 될 거야!
방문이 닫히자 박서준의 휴대전화에서는 새로운 메시지가 올라왔다.
권호성.
[형님, 시카고에서 오늘 밤에 진짜 거물이 나타났어요!!!]
박서준은 힐끗 쳐다보더니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권호성은 마치 그와 맞서기라도 하듯, 계속해서 메시지를 보냈다. 짜증 난 박서준은 휴대전화를 집어 들고 무음으로 설정하려다, 맨 위에 있는 메시지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나찰이에요!! 사라진 지 3년 된 그 천재 카레이서 나찰이에요!]
박서준은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일어나서 소파 위에 놓인 옷을 들고 곧바로 방문을 나섰다.
어둠 속에 숨어 있는 그 빛나는 눈동자에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시카고에서.
프런트 데스크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며 정보를 입력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상냥한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체크인 부탁드려요.”
고개를 들어 보더니, 여자는 그저 심플한 흰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에 긴 머리는 단순하게 뒤로 묶여 있었으며, 긴 앞머리 아래에는 두꺼운 프레임 안경을 하고 있어서 화려하게 장식된 클럽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프런트 데스크 직원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계속해서 고개를 숙여 키보드를 치고 있었다.
“고객님 죄송합니다. 저희는 멤버십 시스템으로 운영하고 문턱이 매우 높아서 최고급 재벌들만을 접대합니다. 일반적인 가격대의 호텔 체크인 서비스는 제공하지 않습니다.”
말하면서 몹시 귀찮다는 듯 검은 펜으로 데스크를 두드리더니 문밖을 가리켰다.
“나가서 오른쪽으로 5km 가면 게스트하우스가 있는데 그곳이 당신에게 더 어울립니다.”
백아린은 프런트 데스크 직원의 말에 불쾌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녀는 차분하게 한 장의 블랙카드를 데스크에 올려놓고 프런트 직원의 앞으로 밀었다.
“이 카드면 가능해요?”
“카드의 한도를 다 긁었다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말했잖아요, 멤버십으로… 와씨, 한정판 블랙카드!”
프런트 데스크 직원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입을 가리고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백아린을 바라보며 말을 더듬었다.
“너너너… 어 어떻게…”
시카고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단 10장의 블랙카드만 판매하였다. 소유할 수 있는 사람들도 모두 피라미드의 최 상위에 있는 재벌가들이었다.
백아린은 고래를 갸우뚱했다.
“체크인 가능한가요?”
시카코의 지하2층 VIP룸에서.
남자는 한 손으로 와인잔을 든 채로 아래쪽에서 서로 추격하는 레이싱 카를 내려다보며 불쾌하듯 미간을 찡그렸다.
“사람은, 나를 불러온 것이 설마 이런 애송이들이 서로 추격하는 장면을 보라는 것은 아니겠지?”
권호성은 또다시 그에게 와인을 따라주면서 달랬다.
“조급해하지 마세요. 형이 블랙 크라운만 따내면 조건을 제시할 수 있다는 규칙을 정한 것도, 오로지 나찰을 낚아채기 위해서가 아닌가요. 3년이나 기다렸는데, 이만한 시간도 더 못 기다리시는 건가요?”
“내가 마음에 둔 것은 나찰이 아니라는 것도, 너 잘알고 있잖아.”
박서준은 술잔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양다리를 꼬며 소파에 등을 기댄 채로 앉으면서 냉엄한 표정을 지었다.
“나야 알고 있지요. 형은 나찰을 통해서 더 미스터리한 그분인 귀수명의를 접하려고 하는 것을요. 하지만 이런 상황일수록 조급해 하면 안 돼요. 5년 전 그 사고 이후로 시중에서도 더는 귀수가 의술을 행했다는 소식이 없습니다. 그녀가 아직도 예전처럼 죽는 사람도 살릴 수 있는 수준이 남았을지는 전부 미지수입니다…”
“할아버지께서 더는 기다릴 수 없게 되었어.”
박서준은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의사가 말하는데 길어야 1년 이래.”
권호성은 눈살을 찌푸렸다.
“10년 전에도 의사가 그렇게 말했는데, 진철할아버지께서 지금껏 잘 살아 계신 거 아니에요? 형 와이프가 준 무슨 인삼환을 드시고 나서 정신이 번쩍 돌아왔다고 하지 않았어…”
“와이프 아니야.”
박서준은 시정했다.
“두 시간 전에 이미 정식으로 전 와이프가 됐어.”
그는 약간 짜증스러운 듯 회중시계를 만지작거렸다.
“게다가 그 무슨 인삼환도 보약이나 별 다름없어. 할아버지만이 그 아이를 믿고 매일 먹으려고 하니…”
우르릉!
레이스 카의 굉음은 천둥처럼 경기장을 뒤흔들기 시작했고 마치 도깨비처럼 모든 차량의 모든 차량 사이를 스쳐 지나가면서, 엄청난 먼지를 일으켜 축구장 몇 배나 되는 경기장에 오래도록 퍼져나갔다.
펑펑펑!
지면 위 몇 개의 커다란 서치라이트가 하나씩 켜지면서, 눈부신 불빛은 한 구석의 새빨간 차에 집중되어 있었다.
세상 물정에 밝은 사회자도 이 순간 만큼은 떨리는 목소리를 억누르지 못하고 크게 외쳤다.
“오늘의 마지막 도전자인 나찰을 큰 박수로 맞이하겠습니다!”
귀가 터질 듯한 함성 소리는 VIP 룸의 유리창마저 미세하게 흔들리게 하였다. 권호성은 순식간에 몸을 창문에 바짝 붙이며, 흥분된 눈빛으로 먼지가 흩어진 뒤 차문이 열리면서 늘씬한 실루엣이 천천히 차에서 내리는 것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여성은 레이싱복으로 중무장하고 있었고, 커다란 헬멧은 그녀의 얼굴을 꽁꽁 가린 채 흩날리는 긴 머리카락만이 틈새로 새여나와 있었다.
“대박, 대박. 정말로 왔어! 세상에, 나찰이 여자라니?”
경악하는 목소리는 이미 박서준의 귀에 완전히 차단되었다. 그는 단안경을 들고 빨강과 검정색으로 뒤섞인 카레이서가 차문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스태프가 마지막 점검을 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서서히 눈썹을 찡그렸다.
어째서인지 그는 나찰에게서 낯익은 모습을 본 것처럼 느껴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