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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장

백아린은 피식하고 웃으며 보기 좋은 눈매를 들어서 권은비를 훑어보았다. “자기를 속이면 그만이지, 다른 사람을 속이지 마.” “그 집은 가공 음식을 많이 쓰는데, 많이 먹으면 건강에 안 좋아요. 진심으로 다른 곳에서 주문했으면 해서요.” 권은비는 백아린이 자기 예상대로 멘붕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오히려 백아린의 담담한 말투에 자기가 먼저 멘탈이 붕괴되었다! “난…” 권은비는 서둘러 고개를 돌려 박서준에게 해명했다. “서준 씨, 이건 정말로 내가 직접 만든 요리야…” 하지만 박서준은 애초부터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고, 도리어 백아린을 향해 말했다. “이따가 일 끝나면 내가 근처로 데려가서 같이 맛있는 거 먹자.” 권은비의 일그러질 정도로 화난 표정을 본 백아린은 웃는 표정으로 박서준에게 말했다. “좋아, 먼저 일부터 시작하자.” “서준 씨…” 박서준의 차가운 눈빛으로 권은비를 힐끗 쳐다보았다. “너 밥 먹으로 가려고 한 거 아니야.” 자기는 너랑 같이 먹으려고 한 거야! 권은비는 하마터면 손가락이 부어오를 정도로 꽉 움켜쥐고는 억지로 얼굴의 웃음을 유지했다. “아까 내가 말했잖아. 일이 끝나면 같이 밥 먹으러 가자고. 서준 씨도 방금 그렇게 하자고 동의했잖아?" “나 동의했어.” 박서준은 시선을 돌리며 권은비에게서 조금 멀리 떨어져 앉았다. 그의 주변에는 차가운 기운이 감돌았다. 강영욱은 적당한 시기에 눈치있게 권은비를 향해 말했다. “권은비 씨, 식당은 제가 우선 예약해 놓았습니다. 제가 기사에게 데려다주라고 하겠습니다.” 권은비는 입을 열어 뭔가 더 말하려 했지만, 더 이상 박서준의 인내심을 자극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가방을 들고 일어섰다. “그럼, 그럼 난 더 이상 방해하지 않을게. 시간이 되면 다시 올게.” 권은비에게 돌아온 것은 사무실 안의 침묵뿐이었다. 그녀는 약간 난감한 채로 돌아서서 걸어 나갔다. 사무실이 정적에 휩싸이자 박서준은 눈을 들어 강영욱을 바라보았다. “너도 나가.” 강영욱은 고개를 끄덕이며 응하고는 돌아서서 나갔다. 사무실 문을 닫고 나서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무실 안. 백아린은 설계 도면과 프로젝트 내용을 박서준에게 밀었다. “이건 우리 대표님이 설계한 방안입니다. 박 대표님께서 한 번 읽어보세요.” 남자는 뼈마디가 뚜렷한 손가락을 뻗어 책상 위의 서류를 집어 들고, 고개를 숙여 읽기 시작했다. 사무실 안은 매우 조용했고, 백아린은 막 배부르게 밥을 먹은 데다 약간 열이 나서 지금은 조금 졸리기 시작했다. 박서준은 손끝으로 서류를 가볍게 두드리며, 무심코 묻는 듯이 말했다. “너 지금 돈이 많이 부족해?” 백아린은 그를 한 번 쳐다보았지만, 열 때문에 말하기가 귀찮았다. 남자의 시선은 여전히 서류에 머물러 있었고, 그의 차분한 목소리에는 아무런 감정의 기복이 없었다. “작은 작업실에서 비서를 하는 것보다, 돈이 필요하면 내 비서가 되는 것이 더 낫잖아.” “허허.” 백아린은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턱을 괴고, 속이 빈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당신의 비서가 되면, 한 달에 얼마 벌 수 있어?” “난 우리 대표님의 비서를 맡고 있는데, 대표님의 인정을 받아서 한달에 2천만 원 지급하는데.” 박서준은 드디어 눈을 들어서 백아린의 가식적으로 웃는 모습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가 눈살을 찌푸리기도 전에 백아린은 계속해서 말했다. “당신이 한 달에 2천만 원을 줘서 비서를 시켜도 나는 감히 일할 수가 없어. 남들이 보면 그 돈 때문에 내가 당신의 내연녀라도 된 줄 알겠어.” … 박서준은 손을 들어 콧대를 문질렀다. “당신은 당신 대표의 목적이 단순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는 그윽한 눈매로 백아린을 바라보았다. “네가 대학 졸업 후 줄곧 박씨 집안에서 호강하게 살아왔고, 일한 경험이 전형 없는데 왜 그 사람이 너에게 그렇게 높은 월급을 지급하는지 생각해 보기는 했어.” 이 말에 백아리의 가뜩이나 어지러운 머리가 더 웅웅거리게 만들었다! 알고 보니, 그와 결혼한 지난 3년 동안, 그는 그녀를 이렇게 생각해왔던 것이다. 3년이라는 시간은 생각하면 할 수록 우스웠다. “당신의 더러운 심보로 다른 사람도 같은 취급하지 마!” 백아린은 벌떡 일어나, 약간 붉어진 눈가로 박서준을 응시했다. 3년 동안 마음속에 쌓여 있던 원망과 분노가 이 순간 거의 폭발할 것 같았다! “내가 너네 박씨 집안에서 호강만 했다고? 박서준 씨, 너는 참 일관되게 남을 업신여기면서 비난하네.” 백아린은 비아냥거리는 웃음을 냈다. “너네 박씨 집안의 대단한 규칙이 새우를 먹어도 당신 어머니의 눈치를 봐야 하다니.” “박씨 집안의 도우미도 여태껏 나를 유명무실한 박 사모님이라고 무시해 왔는데.” “당신 어머니는 내가 3년 동안 아이를 낳지 못해서 그녀의 체면을 구겼다고 나를 원망했어.” 백아린은 눈을 가늘게 뜨고 박서준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물어보는데, 나 혼자 무성생식이라도 하라는 거야? 박서준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 그러나 백아린은 지금 박서준이 어떻게 생각하든 아랑곳하지 않고 지난 몇 년 동안 자신이 받은 모든 비난을 한꺼번에 쏟아내고 싶었다. “내가 너네 박씨 집안에서 무슨 호강을 했다는 거야?” 박서준의 가슴속에서 알 수 없는 짜증이 치밀어 올랐고, 손을 들어 넥타이를 잡아당겼다. “왜 나한테 말하지 않았어.” “너한테 말한다고?” 백아린은 입가에 비웃는 미소를 띠며 마치 큰 농담이라도 들은 것 같았다. “나의 고통은 당신 때문에 생긴 거 아니야?” 3년 만에 백아린은 처음으로 박서준의 차가운 얼굴에 미세한 균열이 생기는 것을 보았다. 박서준은 일어나서 백아린을 향해 걸어갔다. “만약에 당신이 이런 일들을 나한테 빨리 알려줬더라면, 당신은 아마도…” 백아린은 손을 들어 그의 말을 가로막고 시선은 담담했다. “당신의 태도가 이미 그들이 나한테 대하는 태도를 결정했으니 미안해할 필요 없어. 이제는 당신의 사과가 필요 없으니까.” 그녀가 이 말을 하자, 박서준의 눈빛이 당황해지더니 그는 손을 들어 백년만의 손목을 잡았다. “너 혹시 아직도 나한테 숨기는 거 있어.” 박서준의 칠흑같은 눈동자로 백아린을 응시하며, 그녀의 얼굴에서 허점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백아린은 조금의 당황한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고 손을 들어 박서준의 손을 뿌리치려 했다. “박 대표님, 오늘 저는 작업실을 대표해서 일에 대해 이야기하러 온 것입니다. 저를 존중해 주시죠!” 그러나 그녀는 남자가 자기의 손을 쥔 힘이 점점 강해지는 것을 느꼈다. “우린 아직 이혼하지 않았어. 넌 아직도 법적으로 내 아내야!” “박서준! 사람은 너무 자만하면 안 돼!” 백아린은 박서준의 손에서 자신의 손을 빼내며 말했다. 그녀 자신도 자기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난 네가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한 마리의 개인가?!” “기분 좋을 땐 날 가지고 놀고 기분 나쁘면 날 한쪽에더가 내팽개치고, 당신은 날 갖고 노는 게 그렇게 재미있어?!” 백아린은 열로 인해 흐릿한 머리를 부여잡고 눈을 뜨려고 애썼다. 그녀의 생각은 갑자기 뒤엉켜졌다. 이 남자를 위해 자기는 상도, 미래도 포기했지만, 결국 그녀는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이었다. 이 세상에서 그 누구도 믿을 수 없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기 자신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백아린이 갑자기 흥분해지자 박서준의 표정이 변했다. 그는 손을 들어 그녀를 진정시키려 했다. 그러나 백아린은 갑자기 두 걸음 물러나면서 눈물이 터져 나왔지만, 표정은 돌연 차갑고 적막해졌다. “박서준, 애당초 내가 당신을 강요해서 결혼을 하자고 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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