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장
백아린은 사실대로 고개를 저었다.
“예약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박 대표님께서 우리 대표님한테 오늘 도면을 준비해서 회사로 오라고 하셨는데요...”
“칙.”
옆에 있던 다른 프런트 데스크 직원의 비아냥거리는 소리를 내며 옆 사람한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핑계도 댈 줄 모르고…”
백아린을 마주하는 프런트 직원은 아예 그녀를 향해 눈을 희번덕거렸다.
“우리 회사는 예약이 없으면 대표님을 만날 수 없어요. 귀사의 대표님께서 예약을 하신 후에 다시 오시는 게 어떨까요?”
백아린은 눈살을 찌푸렸다.
“박 대표님께서 오늘 디자인 도면을 가져오라고 요청하셨습니다. 당신네 프런트 데스크에 내선 전화가 있으니 여기서 바로 확인해보면 알게 되지 않나요?”
“대표님께서는 매우 바쁘십니다. 당신들처럼 작은 회사가 아니고 하루 24시간 전화를 기다리라는 건 아닌데, 모두가 전화를 요구하면 대표님이 일을 하지 말고 차라리 콜센터를 해야겠네요!”
백아린 계속해서 말하려고 하는 것을 본 프런트 데스크 직원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시계를 가리켰다.
“점심시간에는 대표님께서 내려오시니, 아직 2시간 남았습니다.”
옆에 있는 다른 직원은 불난 집에 기름을 부었다.
“만약 프로젝트를 위해 온 거라면, 당신네 대표님이 직접 대표님에게 전화를 하면 바로 올라갈 수 있지 않겠어요?”
두 명의 괴상야릇한 프런트 직원을 마주한 백아린은 심호흡을 하더니 머리가 약간 어지러웠다. 열이 다시 올라온 듯했다…
그녀는 이를 악물고 짜증스럽게 휴대전화를 꺼내, 연락처에 있는 익숙한 프로필 사진을 보며 입술을 오므리더니, 결국에는 박서준의 전화를 연결했다.
위층에서, 박서준은 이사회를 진행 중이었고, 휴대전화는 이미 무음 모드로 설정되어 한쪽에 놓여져 있어서 백아린의 전화를 바로 받지 못했다.
빌어 먹을 박서준! 일부러 그런 거 아니야?!
백아린은 전화를 끊고 속으로 그를 극도로 험한 욕설을 몇 마디 퍼부었다!
프런트 데스크 직원은 전화에서 들리는 잠시 연결되지 않는 소리를 듣고 비아냥거림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내 말이, 힘들네 대표님의 전화번호를 알아내면 뭐 해? 아무 사람의 전화를 받을 수 있는 전화가 아니니까!”
만약 지난 3년 동안이었다면, 그녀는 아마도 박서준의 와이프라는 신분을 내세워서, 그녀의 가련한 결혼의 체면을 지키려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너무 많은 교훈을 겪으면서, 백라인은 그렇게 하는 것이 더욱 수치스러운 결과를 초래할 뿐이라는 것을 이제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박서준은 그녀의 기대에 차고 수줍음이 가득한 눈빛을 보며 냉담하게 조롱할 것이다.
“무슨 박 사모님, 내가 언제 이 결혼을 인정한 적이 있었나?”
그리고 그녀가 곧바로 보안 요원에 의해 쫓겨날 결과를 아랑곳하지 않고 성큼성큼 엘리베이터로 걸어가면서, 그녀의 난처함과 불안함을 냉담하게 즐기고 있을 것이다.
백아린은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려 프런트 데스크 직원을 한번 쳐다보려고 했지만, 결국 눈을 내려 자조적으로 웃으며 로비의 소파에 앉아 기다렸다.
그녀가 떠날 생각이 없는 것을 보고, 두 명의 프런트 데스크 직원은 그녀가 다른 의도를 품고 있다는 사실을 더욱 확신하며, 멀리서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이 더욱 좋지 않았다.
1시간 좌우 지날때 쯤.
권은비는 화려한 흰색 원피스를 입고, 걸을 때마다 바람에 흔들리며 손에는 도시락통을 들고 두성 그룹 로비로 들어섰다.
이 두명의 프런트 데스크 직원은 권은비를 여러 번 본 적이 있어 그녀가 유명한 연예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박서준을 여러 번 찾아온 것을 본 적이 있어서, 이미 마음속으로 그녀를 박서준의 와이프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권은비 씨!”
두 프런트 데스크 직원은 권은비를 향해 정성스럽게 인사를 올렸다.
권은비는 웃으면서 부드럽게 말했다.
“난 서준 씨에게 점심을 가져다주러 왔어요.”
“권은비 씨는 역시 배려심이 깊으시네요.”
“맞아요, 우린 대표님께서 권은비 씨 같은 여자친구가 있는 게 얼마나 부러운데요.”
프런트 데스크 직원은 멀리 앉은 백아린을 보면서, 마치 공을 세우려는 듯 권은비를 향해 말했다.
“권은비 씨, 오늘 어떤 이상한 여자가 대표님을 찾더라고요. 저희가 거절했는데도, 아직도 안 가고 있어요!”
권은비는 안색이 차갑게 변하더니 계속해서 웃으면서 물었다.
“누구?”
프런트 데스크 직원은 백아린이 있는 방향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앉으면서 버티고 있어요!”
프런트 데스크 직원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가며, 권은비는 한눈에 멀지 않은 곳에 앉아 있는 백아린을 보게 되었다.
그녀는 보온 도시락통을 쥔 손을 힘을 꽉 주고 하이힐을 밟으며 우아하게 백아린의 앞으로 다가갔다.
“백아린 씨, 우연이군요. 당신도 서준 씨를 만나러 여기로 온 거예요?”
백아린은 나른하게 고개를 들었다. 아파서 온 사람은 전체적으로 깨지기 쉬운 모습을 띠고 있었다.
“무슨 일 있어요?”
백아린의 지금의 모습은 신경을 써서 꾸민 것으로 여긴 권은비는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난 서준 씨에게 점심을 가져다 주러 왔어요. 이 사람들이 백아린 씨를 못 올라가게 막았다면서요? 저랑 같이 올라가요.”
“데스크 직원은 당신을 만난 적이 없어서 못 올라가게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에요. 백아린 씨는 너무 개의치 마세요.”
그 말인즉 그녀가 자주 두성 그룹에 와서 박서준에게 점심을 가져다 준다는 것이었고, 데스크 직원들조차 그녀를 아주 익숙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백아린은 눈을 들어 웃는 듯 마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 여기에 카메라도 없는데, 나한테 연기할 필요 있나요?”
“정작 연기해야 할 때는 못 하고, 지금은 연기력이 아주 폭발하시네요?”
순간 백아린에게 아픈 곳을 찔린 권은비는 얼굴이 창백해졌고, 이를 악물며 목소리를 최대한 낮추어 말했다.
“백아린! 염치없게 굴지 마. 너랑 서준이는 곧 이혼할 거고, 그 사람은 곧 내 남자가 될 거야. 눈치껏 멀리 꺼져!”
백아린은 입꼬리를 올려 활짝 웃었다.
“난 쓰레기를 재활용하는 취미는 없어. 네가 그렇게 남이 썼던 걸 좋아한다면, 잘 사용해 봐. 실망시키지 말고.”
“너!”
권은비는 숨을 몰아쉬고 눈을 가늘게 뜨면서 콩방귀를 뀌었다.
“너 아직 모르지? 솔직히 말해줄게. 시카고에 있던 그날 밤, 나랑 박서준은 이미 정을 나눴고 서로 사랑하게 됐어!”
그날 밤, 밤은 뜨거운 열기가 넘쳤고 남자의 매섭고 침략적인 숨결을 생각하기만 하면, 백아린의 머리는 더욱 어지러운 것 같아 손을 들어 이마를 짚고 아무 말하지 않았다.
권은비는 자기가 백아린에게 충격을 가했다고 생각하면서 계속해서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서준 씨는 세계에서 최고인 매니지먼트 팀도 선물해줬어…”
백아린은 머리가 아파서 상대방이 뭘 말하고 있는지 잘 들리지 않았고, 그저 그녀가 입을 열었다 닫았다하는 것이 매우 시끄럽다고 생각했다!
“너 너무 시끄러워.”
백아린은 일어나서 손을 들어 권은비의 계속해서 움직이는 입을 틀어막았다.
권은비의 놀란 눈빛도 아랑곳하지 않고, 무표정하게 그녀의 두 입술을 꼭 쥐었다. 마치 오리의 부리를 잡는 것 같았다.
“히스테리는 그만하고, 박서준과 잔 게 진짜 너야?”
순식간에!
권은비는 눈을 크게 부릅뜨고 있었고, 마치 마음속의 비밀이 들통났다는 사실에 놀란 듯해 보였다!
이 썅년이 그날 침대에 있었던 여자가 자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된 거지?!
설마…
권은비는 그날의 상황을 돌이켜보더니, 그녀가 도착했을 때는 박서준의 방 안은 이미 사람이 없었다.
이 일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녀 외에는 그날에 박서준이랑 잤던 여자일 뿐이다!
그녀는 뒤로 두 걸음 물러서서 백아린의 손에서 벗어나, 마음속으로는 점점 더 당황하고 혼란스러웠다.
“내가 아니면 너니?! 허튼소리 그만 해!”
권은비는 무심코 옷을 매만졌다.
“나 서준 씨의 옷을 가져다줘야해. 너 같은 사람과 여기서 실랑이하는 것도 귀찮아!”
그녀가 뒤돌아서 가려던 순간, 백아린의 전화 벨소리가 때마침 울렸다.
백아린은 걸려 온 전화를 확인하자마자 마음속에서 알 수 없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손을 들어 전화를 받았다.
“박서준! 당신네 회사 프런트 데스크 직원을 뽑을 때 한 가지 조건이 구비해야 하는 거니. 무조건 멍청해야 가능한다고?”
“멍청이는 당신네 회사의 서비스 방침이니? 멍청하지 않으면 두성 그룹에서 일할 수 없는 거야?!”
권은비는 뒤돌아서 표정에는 약간 화가 나 있었다.
“백아린, 너 어떻게 서준 씨랑 이런 식으로 말할 수 있어!”
백아린는 그녀를 향해 아름다운 눈을 희번덕거렸다.
“너랑 뭔 상관이야?”
방금 회의를 마친 박서준은 휴대전화를 들더니 1시간 전의 부재중 전화를 보게 되었다.
백아린에게서 걸려 온 전화라는 것을 확인하자, 그는 손가락을 멈칫하더니 다시 전화를 걸었다.
통화가 연결되자마자 호된 꾸중을 들을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
박서준은 손을 들어 이마를 문지르면서 무의식적으로 목소리를 낮췄다.
“일 있으면 올라와서 얘기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