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6장
박서준은 강영욱이 우물쭈물하는 것을 눈치채고 미간을 약간 찌푸리며 그에게 손짓했다.
“가져 와.”
강영욱은 곧바로 그에게 자료를 양손으로 건넸다.
자료를 여는 순간 박서준은 멈칫했다.
담당자의 자료 첫 페이지의 오른쪽 상단에는 백아린의 증명사진이 버젓이 놓여 있었다.
사진 속 그녀는 온화하게 웃고 있어서, 지금의 작은 아이 사자 같은 모습과는 전혀 달라 보였다.
박서준은 눈을 내려고 그녀의 직위를 훑어보았다.
대표 비서?
박서준의 눈에는 냉소가 서렸고, 그는 자료를 탁자 위에 던졌다.
“참으로 수완이 뛰어난 사람이야.”
강영욱은 옆에서 숨도 감히 못 쉬었다!”
그는 대표의 의도를 알았지만, 쉽게 속내를 드러낼 수 없었다. 그의 대표는 워낙 강경한 성격인 데다가, 최근에 와이프… 아니 전 와이프와의 일에서 계속 발목을 잡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대표님…”
박서준은 가볍게 눈매를 들었다.
“마음대로 하라고 그래. 이 일 모른 척 하고.”
“네, 알겠습니다. 대표님.”
서하영은 운전해서 백아린과 집으로 돌아와서 가방을 대충 던져 놓았다.
“아린아, 나 먼저 씻을게.”
“먼저 가. 나 아직 서류가 다 정리되지 않았어. 아직 시간이 이르니 난 이따가 씻을게.”
백아린은 노트북을 들고 거실에서 프로젝트 관련 세부 사항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번 리조트 개발안은 마을 재개발 문제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녀는 노트북 지도에서 빨갛게 표시된 지역들을 바라보았다. 이곳 몇몇 장소는 이전에 그녀가 직접 가 보았던 곳으로, 마을 사람들이 강하게 항의하며 떠나지 않으려 했던 집들이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두성 그룹의 이사회 쪽에서는 마을 주민 전체의 서명 동의서를 받아냈다.
백아린은 컴퓨터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어쩐지 그래도 직접 한 번 더 가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지난번의 설계도도 이 몇 가구 때문에 완성도가 떨어졌다.
하지만 박서준과 협력한다는 생각만 해도 백아린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째서 이혼할 때가 되니 두 사람의 얽히는 상황이 오히려 더욱 많아지게 되는 거지!
백아린은 머리를 흔들어 잡념을 모두 털어내고, 다시 프로젝트에 집중했다.
서하영은 샤워를 마치고 나와 머리를 닦으면서 백아린이 여전히 일하고 있는 것을 보고 그녀 옆에 가서 앉았다.
“아이고, 아가씨. 일이란 건 끝이 없는 법이야.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 좀 쉬어가면서 하면 안 돼?”
“리조트 기획안이 곧 실행에 들어가니, 이때는 절대 소홀히 할 수 없어. 하물며 내일 또 박서준을 만나서 협력에 대해 이야기해야 하니 더더욱 허투루 넘어가면 안 돼.”
백아린은 타자를 치면서 투덜거렸다.
“그가 만약에 내가 그와 협력하는 걸 알게 되면, 또 어떻게 날 괴롭히려 할지 몰라. 이 설계안을 제대로 준비하지 않으면, 그가 내 약점을 잡고 늘어질 게 뻔해!”
서하영은 어이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너희 둘이 티격태격하는 것도, 대체 뭘 두고 싸우는 건지 모르겠어.”
세부 사항을 정리한 후, 백아린은 깊은 숨을 내쉬며 컴퓨터를 껐다.
“당연히 자존심 싸움이지! 넌 몰라. 나 씻으러 갈게.”
샤워를 하던 중, 서하영은 거실에서 한가롭게 TV를 보고 있었고, 욕실에서는 백아린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아!”
서하영은 얼른 달려가 욕실의 문을 밀었다.
“아린아, 괜찮아?!”
서하영은 욕실 안에서 사람이 넘어졌을까 봐 깜짝 놀랐는데, 결과적으로는 온몸을 부르르 떨며 목욕 타올을 감싸고 있는 가련한 모습의 백아린을 마주 보게 되었다.
“무슨 일이야…”
백아린은 떨리는 목소리로 원망스럽게 친구를 바라보며 말했다.
“나… 씻고 있는데 왜 도중에 더운 물이 안 나오는 거야?1”
“아?”
서하영은 놀랄 겨를도 없이 서둘러 백아린을 데리고 나왔다.
“너 얼른 가서 옷 입어. 절대로 감기 걸리면 안돼! 내가 관리실에 전화해 볼게!”
마침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시기라, 백아린은 찬물을 맞고 나서 정말로 추위에 떨었다.
그녀는 방으로 돌아가서 마른 옷으로 갈아입었지만, 몸은 여전히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밖에서 서하영이 누군가와 말다툼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백아린은 옷을 다 입고 밖으로 나갔다.
“어떻게 된 거야?”
서하영은 방금 전화를 끊고 나서 씩씩거리며 백아린에게 말했다.
“관리실도 너무한 거 아니야. 돈을 받아 처 먹으면서 일은 제대로 하지 않고!”
“말로는 집이 오랫동안 비어 있어서 온수관이 막혀서 이런 상황이 생긴 거래. 지금 당장 사람을 보내서 고치라고 했더니, 내일이나 가능하대!”
“나 연간 600만 원이 넘는 관리비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어! 나…”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백아린은 재채기를 했다.
서하영은 즉시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감기 걸리려고 하는 거 아니야, 내가 가서 약 가지러 갈게!”
“에에에, 나 그렇게까지 예민하지 않아. 갑자기 추워서 그런 것 같은데, 약 먹을 정도로 심한 거 아니야."
백아린은 아무렇지 않게 손을 흔들었다.
“나 괜찮아, 걱정하지 마.”
…
‘괜찮아’라고 말했던 사람은 다음 날 아침, 바로 38도까지 열이 올랐다.
백아린은 몸이 으슬으슬한 상태로 침대에서 기어 나오듯 일어났다. 그녀는 아마도 새벽 후반부터 열이 오른 것 같았고, 열이 너무 올라서 잠을 자는 내내 정신이 몽롱했다.
지금 일어나 보니 온몸의 피부가 닿기만 해도 신경통이 느껴지고, 목구멍도 아파지기 시작했다.
“콜록콜록…”
백아린은 약을 찾기 위해 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더니, 마침 짐을 다 챙기고 회사에 가려던 서하영을 보게 되었다.
서하영은 한눈에 열 때문에 기운이 없는 백아린을 보게 되었다.
“어떻게 된 거야!”
백아린은 기침을 했다.
“작은 감기일 뿐이야. 넌 어서 회사에 가, 나 신경 쓰지 말고. 약 먹으면 괜찮아질 거야."
서하영은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손을 들어 백아린의 이마를 짚어보았다.
“이렇게나 뜨거워! 너 얼른 약 먹어, 내가 약 찾아줄게!”
“나 정말로 괜찮아.”
백아린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
“나 이따가 해열제 먹을 테니, 넌 먼저 회사로 가.”
“이런 상태로 오늘 두성 그룹과 협상하러 갈 생각이야?”
백아린은 별일 아니라고 생각했고 그저 약간의 발열일 뿐이고 해열제만 먹으면 괜찮아질 거라고 여겼다. 다만 그녀는 친구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았다.
“걱정 마, 나 오늘 상태가 너무 나쁘면 내일에 갈게.”
겨우 친구를 타일러서 집밖에 나서게 했다.
열이 나서 식욕이 없던 백아린은 간단하게 음식을 먹고 해열제 한 알을 먹고 나서 소파에 기대어 잠시 휴식을 취했다.
열이 조금 내린 것 같아서 백아린은 즉시 노트북을 챙기고 옷을 입은 후 밖으로 나섰다.
백아린의 두 볼은 열 때문에 약간 붉어져 있었고 아파트 단지를 나와 밖으로 나서자, 불어오는 바람이 그녀의 얼굴을 스치더니 정신이 조금 더 맑아진 것 같았다.
아마도 해열제가 효과를 본 듯, 백아린은 조금 기운을 차리고 차를 운전해서 두성 그룹 빌딩에 도착했다.
결혼한 몇 년 동안, 백아린은 박서준이 자기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에 단 한 번도 회사에 오지 않았다. 백아린은 웅장하고 화려한 두성 그룹의 로비를 바라보며, 눈을 내리깔고 마음속에서 복받치는 감정을 억눌렀다.
그녀는 프런트 데스크로 가서 물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힐링 작업실의 담당자입니다. 오늘은 박 대표님과 리조트 협력 프로젝트를 논의하러 왔습니다. 실례지만, 대표님 사무실은 몇 층에 있나요?"
프런트 데스크 직원은 백아린을 훑어보면서, 그녀의 옷차림에 다소 경멸스러운 듯했다. 하지만 그녀의 화사한 얼굴을 보자, 마치 무언가를 깨달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 예약하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