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8장

백일 기념일. 나는 그 말을 자세히 곱씹었다. 그러다 어젯밤 그 남자의 욕망이 가득하던 두 눈을 떠올리자 익지 않은 떫은 감이라도 씹은 듯 입안에 씁쓸함이 가득했다. 나는 주한준같이 공사가 다망하고 냉정하고 엄숙한 사람은 그가 말한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날 같은 건 기억하지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보니 기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세심하게 룸까지 예약해 임지아와 축하를 했다. 이건 우리가 서로 접점이 있었던 지난 6년간 단 한번도 없었던 일이었다. 그리고 임지아는 둘만 따로 축하를 해야 할 날에 나를 초대했다. “좀 그렇지 않을까요?” 당아연의 미래를 생각 하는 불편한 마음을 꾹 누르며 물었다. “만약 주 대표님의 화만 돋우었다간 죽을 죄를 지게 될 텐데요.’ 어젯밤에 이미 밉보였으니 더 이상 다른 문제를 일으켜서는 안 됐다. 내 말에 임지아는 곧바로 해답을 줬다. “걱정할 것 없어요, 진아 선배. 그도 그럴게 ‘우연’이잖아요. 게다가 이렇게 중요한 날에 제가 준한 오빠한테 얘기하는 거면 다 들어줄 거예요.” 임지아가 이렇게 확신에 차 말을 할 수 있는 건 다 주한준이 밤낮으로 채워준 덕에 나오는 자신감이었다. 나는 주먹을 말아쥐며 말했다. “걱정 끼쳤네요, 임 팀장.” “진아 선배, 너무 내외하세요.” 임지아는 큰 눈을 깜빡이며 웃었다. “이번 일로 다들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게 보여서 저도 사실 마음이 불편했어요. 그도 그럴 게 이 일은 저 때문에 벌어진 거라 앞으로 다들 마음에 응어리가 생기지 않길 바라거든요.” 그렇게 말하는 임지아의 표정은 진심이 가득했다. 가득하다 못해 그 마음의 진실성의 의심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진아 선배는 준한 오빠와 엄 교수님의 사이를 풀어주고 싶지 않으세요?” 임지아는 내가 곧바로 대답이 없자 기대 어린 눈빛으로 나를 보며 조용히 말했다. “제가 보기엔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오해가 있는 것 같아요. 오해가 있다면 아예 제대로 이야기를 터놓는 게 낫지 않겠어요?” 임지아의 말은 몹시 일리가 있었지만 왠지 모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