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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장

명령이 귓가에서 들리더니 허리를 감싼 손에 힘이 들어가며 나는 그대로 주한준의 품에 안겼다. 익숙한 비누향이 코끝을 간지럽히자 심장도 따라서 빠르게 뛰었다. 의아함에 고개를 들자 주한준의 두 눈에 거세게 타오르는 불길이 보였다. 착각인가? 분명 조금 전만해도 주한준은 나를 쫓아내려고 했던 것 같은데. 나는 한 발 물러서며 그를 거절햇다. “고마워요, 저… 괜찮아요.” 하지만 나의 물러섬에 주한준은 더욱 강압적으로 다가왔다. 한 발 물러서면 한 발 다가왔고 물러서면 더 다가왔다. 끝내 내 두 발은 소파 앞에 닿아 더는 물러설 곳이 없었다. 그리고 앞에 있는 남자는 설명할 수 없는 침략성을 보여주며 나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거리가 너무 가까워 움직이는 울대도 선명하게 보였다. “주 대표님, 전 제가….” 주한준은 내가 말을 마칠 기회를 주지 않은 채 곧장 내 입술을 막았다. 마치 나를 그대로 씹어 삼키려는 기세로 거칠게 입을 맞추며 조급하게 호흡이 섞였다. 순식간에 몸의 기억을 불러냈다. 아마도 알코올이 너무 사람을 괴롭게 했던 탓일까, 이 순간 머릿속에는 갈망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나의 이성은 주한준의 뜨거운 입맞춤에 점점 가라앉기 시작했다. 너무 황당했지만 또 너무 사실적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때 별안간 주한준의 손가락이 내 손목 쪽을 매만지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무너지기 직전의 이성이 다시 돌아오더니 고개를 돌린 나는 경멸 어린 표정을 지었다. 주한준도 그것을 알아챈 듯 딱 붙은 몸이 눈에 띄게 굳었다. 뜨거웠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사라졌고 우리 둘 사이에 남은 건 어색함과 대치뿐이었다. 잠시 후, 주한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손목 밴드가 그렇게 중요해??” 방금 전, 내 예상이 맞았다면 주한준은 이 손목 밴드를 벗기려 했다. 그 일그러진 흉터를 떠올리자 심장도 따라서 저릿해졌다. “말해.” 주한준의 말투는 더 가라앉았고 태도에도 짜증이 섞였다. “남진아, 엄겨울이 선물한 게 그렇게 중요해? 나랑 이런 분위기에서도 벗기 아쉬울 만큼?” 나는 믿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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