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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화

안소희는 시시콜콜 따지기도 귀찮았다. “그래요. 당신 말이 맞아요.” 허가윤은 솜을 상대로 복싱하는 느낌이라 힘이 빠지기만 했다. 안소희와 같은 캐릭터는 처음 본다. “영재가 이혼하면서 거액의 합의금을 준 게 소희 씨를 생각해서 그런 거 같아요?......” 허가윤은 여태 눌려있던 화가 폭발한 듯했다. 그녀는 이 상황에서도 추호의 흔들림 없이 평온한 표정을 짓고 있는 안소희를 짓밟고 싶었다. 두 사람이 대면할 때면 왜 항상 안소희는 당당하고 전혀 구김 없는 모습이고, 자신은 항상 못난이가 되는 기분이 드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안소희의 귓전은 온통 시끄러운 잡음으로 맴돌았다. 난생처음 사람이 이렇게 짜증났다. 예전에는 여자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생명이라고 생각했었다. 동생도 그렇게 친구들도 그렇고. 하지만 이 순간 만큼은 허가윤을 내다 버리고 싶었다. “다 말했어요?” 안소희는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기 싫었다. 허가윤의 정서는 붕괴 직전이었다. “안소희!” “난 당신의 얘기에 대해 관심이 없어요. 만약 계속해서 이렇게 무료한 얘기만 할 거면 부탁하는데 몸을 돌려 엘리베이터를 눌러 내려가 주세요.” 안소희의 정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태연했다. 허가윤은 아직 멀었다. 어떻게 우아하게 싸워야 하는지 고민할 여유조차 없었다. 허가윤은 억울함으로 치밀었다. 오기 전에 상상했던 광경이랑 너무 달랐다. 그녀는 안소희가 큰 소리로 자신을 욕하고 심지어 자신을 때려주기를 기대했다. 그래야만 나영재한테 가서 자신의 억울했던 처지를 하소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나영재는 안소희를 더욱 미워할 거고, 나중에 이혼하더라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중요한 일이 있어요.” 허가윤은 드디어 핵심적인 공략 수단을 내세웠다. “우리 내려가서 얘기해요.” 안소희: “여기에서 말해요.” 허가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제자리에 서 있었다. 안소희는 그저 그런 허가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대로 1분이 지나갔다. 안소희의 인내심은 이미 바닥난 지 오래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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