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8장

지수현은 이 말을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들었기에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 나도 네 마음속에서 내가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잘 알아." 두 사람이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자, 거실이 숨 막힐 정도로 조용해졌다. 지수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허정운을 바라보며 말했다. "주방을 치우고 올게. 이따가 배달을 시킬 건데 뭐 먹고 싶어?" “아무거나. 나는 먼저 서재에 가서 일할게.” 허정운이 자리를 뜬 뒤, 지수현은 주방을 정리하고 나서 자기가 좋아하는 배달 음식을 시켰다. 예약을 마친 그녀는 거실에서 휴대폰을 가지고 놀면서 배달 음식을 기다렸다. 한 시간도 채 안 되어 배달 음식이 도착하자 지수현이 음식을 차려놓고 허정운을 부르러 서재로 갔다. 식탁 위에 차려진 음식을 본 허정운의 표정이 매우 보기 안 좋게 변했다. "지수현, 너 일부러 그런 거지?" 막 밥을 먹으려던 지수현이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뜻이야?" "내가 매운 걸 못 먹는 걸 뻔히 알면서도 매운 음식을 이렇게 많이 시켰잖아?" 지수현은 매운 음식을 아주 좋아하는 편이었으나, 예전에는 허정운이 위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나서 그의 입맛에 맞춰주기 위해 담백한 음식만 만들었었다. 그녀는 눈썹을 치켜세운 채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래서 내가 네 몫으로 야채볶음과 계란찜을 시켜줬잖아?” ‘방금 물었을 때는 아무거나 시키라더니, 지금은 또 이것저것 투정을 부리니 정말 모시기 어렵군!’ 허정운이 얇은 입술을 앙다물고 차가운 눈빛을 했다. 지수현이 음식을 집을 때마다 그녀를 쳐다보는 허정운의 눈빛이 더욱 차가워졌다. 몇 분 뒤, 지수현이 어쩔 수 없이 젓가락을 내려놓고 허정운을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은 있는 대로 좀 먹어. 내일부터 내가 아주머니를 불러 음식을 만들게 할게.” 잠시 침묵하던 허정운이 억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식사를 마친 뒤, 지수현이 설거지를 다 마치자, 허정운이 담담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목욕해야겠으니, 네가 나를 도와줘." 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