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장
진가희는 먹먹한 목소리로 물었다. "지성이, 왜 도와줬어?"
하도훈에게 가장 묻고 싶었던 질문이었다.
"나와의 관계 때문에 도와준 거야?"
"연민이야? 아니면 자비를 베푼 거야? 지성이가 오빠 앞에서 허리를 숙이니까 구세주처럼 지성이에게 은혜를 베풀고 싶었어? 오빠가 도와줄 필요 없어. 도와줄수록 오빠가 지성이를 모욕하는 것으로 여겨지니까."
하도훈은 방금 전까지 순진한 토끼 같던 진가희가 한순간에 발톱을 세운 고양이로 변한 것이 의외였다.
하도훈은 빨갛게 달아오른 진가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하도훈은 시선을 내리깐 채 진가희를 바라보며 불쾌한 감정을 느꼈다. 하도훈은 운전기사에게 도로 옆에 차를 세우게 했다.
차에 두 사람만 남게 되자 하도훈은 가림막을 전부 내렸다. 차 내부는 순식간에 개인적인 비밀 공간이 되었다.
공간이 밀폐되었다는 것을 발견한 진가희가 붉어진 얼굴로 하도훈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하도훈이 손을 내밀어 진가희의 볼을 만지려고 했다. 진가희는 고개를 돌려 그의 손을 피했다. 하도훈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하도훈은 진가희의 턱을 붙잡아 강제적으로 들어 올려 자신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진가희는 더 이상 피하지 않고 머리를 하도훈의 손에 맞긴 채 눈시울을 붉혔다.
진가희는 발톱을 세운 고양이가 아니라 타고나길 순한 양이었다. 조금 전에 충동적으로 분노를 풀고 나니 바람 빠진 풍선처럼 기세가 줄었다.
"우지성을 대신해서 슬퍼하는 건가?"
진가희는 부인하지 않았다.
"우지성을 대신해서 불만을 표현하는 거고."
진가희는 여전히 입을 열지 않았다.
"우리 관계 때문에 우지성에게 보상을 한 거라면 어떻게 할 건데?"
하도훈의 목소리는 아주 낮았고 말을 하면서 그의 얼굴이 점점 진가희에게 가까워졌다.
진가희는 다가오는 하도훈을 피하고 싶어 그의 손을 떼어내려 했다. 손을 떼어내는 순간 하도훈의 큰 손이 진가희의 손을 잡았다. 진가희의 얼굴이 순식간에 빨개졌다.
하도훈이 손을 붙잡은 탓에 진가희는 심장이 격력하게 박동했다. "가희야. 나도 양심에 찔려. 그래서 보상해 주고 싶었을 뿐이야. 모욕하려는 생각은 전혀 없었어."
양심에 찔린다는 하도훈의 말이 마음에 새겨져 진가희는 순식간에 눈물이 흘러나왔다.
우지성이 하도훈에게 술을 권하는 장면을 본 순간, 진가희는 하도훈과의 관계를 떠올렸다. 우지성이 모든 것을 알게 된다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고문을 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게 우지성한테 나쁜 건 아니잖아? 우지성이 영원히 다른 사람에게 굽신거리는 모습을 보고 싶어? 아니면 몸에 맞지도 않는 양복을 입고 사람들 비위를 맞추면서 웃고 있는 모습을 보고 싶어?"
진가희는 그런 우지성을 전혀 보고 싶지 않았다.
우지성은 자신감이 넘치고 당당해야 했다. 오늘처럼 허리를 펴지도 못한 채 굽신거려서는 안 된다.
"나는 우지성이 높은 곳까지 올라가게 만들어 줄 수 있어. 가희야, 이게 우리 두 사람 모두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해지는 길이 아니겠어?"
진가희는 고개를 들어 물었다. "정말?"
하도훈은 담담하게 대꾸했다. "응."
다들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희생으로 우지성에게 좋은 삶을 가져다줄 수 있다면 확실히 나쁜 일은 아니라고 진가희는 생각했다. 어쨌든 지금 우지성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이런 일들뿐이다.
하도훈의 손목을 잡고 있던 진가희의 손에 힘이 빠졌다. 하도훈의 앞에 앉아 있는 진가희는 마치 방향을 잃고 헤매는 작은 배처럼 보였다.
하도훈은 다시 손을 들어 손가락으로 진가희의 뺨을 매만졌다. 두 사람의 숨결이 서로 닿을 듯 말 듯 했다.
이상야릇한 분위기를 느낀 진가희는 어색함에 뒤로 물러나고 싶었다.
갑자기 하도훈이 진가희에게 키스했다. 진가희는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몰라 처음에는 피했지만 몇 번의 접촉 후에는 하도훈의 키스에 큰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