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fic
Open the Webfic App to read more wonderful content

제10장 모모가 누군데?

연수호가 샤워하고 나왔을 때 김유정은 아직 잠이 들지 않았고 일부러 그에게 등을 돌렸다. 그녀의 몸에는 얇은 실크 잠옷이 드리워져 있었고 검은 웨이브 머리가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연수호는 침대 머리맡에 앉아 거즈에 싸인 김유정의 손을 바라보며 물었다. “손 많이 아파?” 김유정은 그를 무시했다. 인내심이 바닥난 연수호는 손을 뻗어 김유정의 엉덩이를 찰싹 내리쳤다. “내가 말하고 있잖아.” 졸지에 한 대 맞고 아프지는 않았지만 순식간에 화가 치밀었다. 김유정은 연수호가 제멋대로 집을 들락날락 하는 게 싫었다. ‘여기가 무슨 호텔이야?’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치밀었던 김유정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안 아파.” 귀를 찌르는 그녀의 목소리에 연수호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김유정, 그 성질머리 언제 고칠래?” 연수호는 본인의 마음을 몰라주는 김유정이 너무 답답했다. 한편으로는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듯 시도 때도 없이 발끈하는 김유정을 보며 안서우가 따라 배우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김유정은 몸을 돌려 연수호를 바라봤다. 침대 머리맡에 앉아 있는 연수호는 갓 말린 머리카락이 솜털처럼 이마에 드리워져 있었다. 뽀얀 얼굴에 뚜렷한 이목구비가 더해지니 환상적이었다. 말을 하지 않는다면 풋풋한 대학생의 느낌을 물씬 풍겼다. 김유정은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성질이 나쁜 건 나도 알아. 다른 사람들은 다 받아주는데 수호 씨만 나한테 이러는 건 스스로 반성 좀 해봐야 하지 않을까?” 미간을 잔뜩 찌푸린 연수호는 표정마저 일그러졌다. “다른 사람이 누군데?” 김유정은 표정이 굳어지는 연수호를 볼 때마다 기분이 절로 좋아졌다. “수호 씨를 제외한 모든 사람.” 김유정은 도발하듯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말했다. 말없이 듣고 있던 연수호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두 손으로 그녀의 손목을 꽉 움켜쥐고 침대에 고정했다. 김유정의 하얀 쇄골을 보며 눈빛이 돌변한 연수호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쇄골을 한입 깨물었다. 김유정은 너무 아파서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오른쪽 쇄골에는 작은 점 하나가 있는데 희고 섬세한 쇄골에 더해지니 섹시함이 극대화되었다. 연수호는 그곳을 깨물기 좋아하는 편이다. 아픈 듯 숨을 크게 들이마시는 김유정의 모습에 연수호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손 다쳐서 오늘은 건드리지 않을게. 한 번만 더 입을 함부로 놀리면 그때는 울면서 애원해도 소용없어.” 매혹적이고 허스키한 목소리에 김유정의 호흡은 점점 거칠어졌다. 말을 마친 연수호는 빨갛게 달아오른 김유정의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나는 한다면 하는 사람이야.” 김유정은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불을 끄니 어느새 연수호의 품에 안겼다. 그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여러 번 안간힘을 썼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연수호는 188cm의 키와 긴 팔다리 덕분에 작은 병아리 같은 김유정을 쉽게 품에 가둘 수 있었다. 어둠 속에서 김유정은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 “수호 씨, 어릴 때 해외에 혼자 있었어?” 그녀를 안고 있는 손을 더 세게 조여졌다. “아니.” 연수호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모모도 있었어.” “모모? 그게 누군데?” “엄청 상냥한 여자.” 연수호의 목소리는 나른했고 김유정은 그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 이름을 언급할 때 연수호의 말투가 한층 누그러진 것을 분명히 느꼈다. 결혼 3년 동안 보기 드문 부드러움이었다. ‘상냥한 여자... 딱 좋아할 만한 스타일이네.’ 김유정은 완전 정반대의 타입이다. “우린 매일 같이 잤어.” 연수호는 큰 손으로 김유정의 허리를 꼬집더니 살짝 웃으며 말했다. “손맛이 너보다 훨씬 좋아.” ‘뭐라는 거야? 어이가 없네.’ 김유정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발로 세게 걷어찼다. “나한테 손대지 마.” 그럴수록 연수호는 있는 힘껏 김유정을 끌어안았다. “질투해?” “응.” 김유정은 시원하게 인정했다. 어둠 속에서 연수호는 가느다란 눈을 번쩍 뜨더니 입가에 웃음이 떠올랐다. “내 남편이 다른 여자랑 잤다는 사실을 질투하는 거지, 수호 씨가 신경 쓰여서 그러는 건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 김유정은 말투에서 기분 나쁜 티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질투보다는 손해가 더 크다고 생각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결혼하기 전에 남자 몇 명 더 자보는 건데.’ 연수호는 김유정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한껏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경고의 의미가 더 컸다. “김유정. 다른 남자랑 자는 순간 내가 너 가만두지 않을 거야.” ... 다음 날 아침 깨어났을 때 곁에는 연수호가 없었다. 그가 누웠던 자리에도 더 이상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어젯밤 돌아오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김유정은 재빨리 씻은 후 아래층으로 내려갔고 그 시각 장미영은 이미 부엌에서 아침 식사 준비를 시키고 있었다. 장미영은 아래층으로 내려온 김유정을 보며 입을 열었다. “도련님한테서 전해 들었는데 사모님께서 손을 다쳤다면서요? 오늘은 운전기사가 회사까지 모셔다 드릴 겁니다. 시간에 맞춰 오후에도 모시러 갈 테니 그 차를 타고 회장님을 만나러 가시면 됩니다.” 김유정은 우유 한 모금을 마셨다. “수호 씨는 언제 나갔어요?” 연수호의 몸이 가벼운 건지 아니면 너무 깊게 잠들어서 그런 건지 김유정은 아침에 그 어떤 인기척 소리도 듣지 못했다. “도련님은 아침도 안 드시고 일찍 나가셨습니다.” 김유정은 손에 든 잡지를 넘기며 무심하게 말했다. “굶어 죽지는 않겠죠 뭐.” 툴툴거리는 김유정의 모습에 장미영의 입가에는 인자한 미소가 떠올랐다. 두 사람은 결혼하자마자 이 신혼집으로 이사 왔고 그때부터 장미영은 둘을 케어했다. 김유정은 성격이 아주 좋았지만 연수호 앞에선 늘 입을 삐죽이며 말대꾸를 했다. 연수호는 말수가 적은 편이다. 그런데 김유정 앞에서만 평소에 볼 수 없는 표정과 감정을 많이 드러낸다. 장미영은 이 또한 신혼부부의 애정 표현이라고 여기며 두 사람이 서로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 김유정은 아침 식사 후 차를 타고 회사로 향했다. 회사에 들어오자마자 곽혜인과 이지혜가 부랴부랴 달려왔다. “유정 씨, 괜찮아요?” 곽혜인은 거즈를 감은 김유정의 손을 발견하고 재빨리 물었다. “손 괜찮아요? 설마 어제 다친 거예요?” 김유정은 웃으며 답했다. “가벼운 외상이에요.” 아주 경미한 부상인데 거즈를 칭칭 감은 탓에 심각한 것처럼 보였다. 옆에 있던 이지혜는 걱정스러운 마음에 눈물을 글썽였다. “디자이너한테는 손이 생명인데... 다 저 때문이에요. 저 때문에 이렇게 다치셨잖아요.” 김유정이 그녀를 위로하려던 순간 뒤에서 거북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유정 씨, 어제 유안 그룹의 미움을 샀다면서요?” 소리를 따라 뒤를 돌아선 김유정에는 우아한 자태의 누군가가 보였다. 진소희는 힙을 감싸는 새빨간 미니스커트를 입고 15cm의 하이힐을 신은 채 천천히 다가왔다. 세련된 메이크업과 달리 표정에서는 깔보는듯한 느낌이 물씬 풍겼다. 곽혜인과 이지혜는 고양이를 본 쥐처럼 화들짝 놀라더니 곧바로 고개를 숙이고 인사했다. “부대표님, 안녕하세요.” 진소희는 불쾌해하며 그들을 힐끗 쳐다봤다. “꼭 그렇게 부대표라는 걸 강조해야겠어요? 내가 몇 번이나 얘기했잖아요. 그냥 대표님이라고 불러요.” 김유정은 피식 웃었다. “소희 씨, 3년이나 지났는데 여전히 직급에 예민하시네요.” 3년 전, 김유정은 거액을 받고 자성 그룹에 스카우트 되었다. 당시 디자인 전무로 승진할 거라고 자부했던 진소희는 자연스레 강등되었고 그 이후로 사사건건 김유정을 겨냥했다. “어차피 처음부터 우리 대표님을 위한 자리였어요.” 말을 한 사람은 진소희의 비서인 조연서다. 옆에서 듣고 있던 곽혜인이 참다못해 입을 열었다. “솔직히 유정 씨가 어떤 실력을 가졌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잖아요? 게다가 회사 프로젝트도 대부분 유정 씨가 따낸 건데...” 짝. 뺨 때리는 우렁한 소리가 곽혜인의 말을 잘랐다. 하얗고 고운 얼굴은 순식간에 빨갛게 부어올랐고 곽혜인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진소희를 바라봤다. “고작 비서 주제에 감히 말대꾸해? 유정 씨 혼자 회사를 먹여 살렸다는 뜻이야? 다른 사람들이 열심히 일한 건 안중에도 없나 보지?” 짝. 진소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경쾌한 소리가 다시 한번 울려 퍼졌다.

© Webfic, All rights reserved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