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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장 다른 남자의 접근에 질투하는 연수호

“김유정...” 진소희는 두 눈을 부릅뜨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김유정은 대수롭지 않은 듯 피식 웃었다. “고작 부대표 따위가 나한테 이런 말투로 얘기하는 건 실례지.” 진심을 담아 세게 때려서 그런지 진소희의 얼굴은 금방 붉어지며 부어올랐다. 진소희는 당장이라도 김유정을 갈기갈기 찢어버릴 듯 험악한 눈빛으로 째려봤다. “소희 씨, 경고하는데 다시 한번 내 사람을 때리면 그대로 돌려받을 줄 알아요. 내가 절대 가만있지 않을 거니까.” 김유정은 무시무시한 싸늘함을 내뿜으며 진소희를 바라봤다. “나한테 불만이 많은 것 같은데 어디 한번 실력으로 증명해 봐요. 할 줄 아는 건 아무것도 없으면서 입만 놀리는 모양새가 되게 격 떨어져 보이거든요.” 그 말을 끝으로 김유정은 옆에서 숨죽이고 있는 조연서에게 시선이 향했다. “연서 씨, 오늘따라 볼터치가 잘 안된 것 같은데 뺨 한 대 때려줄까요?” 조연서는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아닙니다. 전무님.” “유정 씨, 뭐가 그렇게 당당해요?” 진소희는 부어오른 뺨을 가리며 김유정을 노려봤다. “유안 그룹의 미움을 샀다면서요? 이제부터 자성 그룹 전체가 유정 씨와 함께 고통받을 거예요. 사고를 쳤으면서 아직도 본인이 자성 그룹에 어울릴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김유정은 대수롭지 않은 듯 웃으며 손을 저었다. “그럼 다 같이 죽는 것도 나쁘지 않네요.” 그녀는 진소희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곽혜인과 이지혜를 불러 사무실로 향했다. 잔뜩 분노한 진소희는 떠나는 김유정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를 갈았다. “고작 전무 주제에 뭐가 저렇게 당당해?” ... 김유정은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아픈 듯 심호흡을 하며 거즈에 감긴 손을 주물렀다. 오른손잡이라 진소희를 때릴 때 손을 바꿔야 했는데 그만 깜빡하고 말았다. “유정 씨, 제가 말실수 했어요. 죄송해요.” 곽혜인은 손자국이 선명하게 남아있는 얼굴로 조심스럽게 김유정의 눈치를 살폈다. 진소희가 김유정를 아니꼬워한다는 사실은 회사의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 다만 공개적인 장소에서 이렇게 싸운 건 이번이 처음이다. 곽혜인은 자신의 말실수로 인해 두 사람이 싸웠다고 생각했고 괜히 김유정에게 폐를 끼칠까봐 두려웠다. “혜인 씨를 때린 건 선을 넘은 거죠. 때렸으면 똑같이 되돌려 주는 게 맞는 거예요. 혜인 씨는 전혀 잘못한 게 없으니까 주눅들 필요 없어요.” 김유정은 핸드폰을 꺼내더니 곽혜인에게 계좌이체를 했다. “서러웠을 텐데 맛있는 거 사 먹고 오늘은 들어가서 푹 쉬어요.” 곽혜인은 문자에 찍힌 일곱 자리 숫자를 보고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뺨 한 대에 200만 원이라니. “아참.” 김유정은 이지혜에게 말했다. “유명한 그 망할 회사의 프로젝트는 필요 없으니까 이제 신경 쓰지 마요. 저런 구제 불능의 쓰레기는 우리랑 손잡을 가치조차 없어요.” “하지만... 유 대표님의 뒤에는 유안 그룹이...” 이지혜는 유안 그룹의 미움을 샀다는 생각만으로도 오금이 저렸다. 김유정은 웃으며 말했다. “그런 대기업은 성우 그룹이 안중에도 없을걸요? 우리를 억압할 정도는 아니니까 겁먹지 마요.” “서 대표님 쪽은...” “대표님 귀국하면 제가 직접 연락해서 설명드릴게요.” 김유정은 청심환처럼 단번에 두 사람의 불안을 잠재웠다. 사무실에서 나온 후 이지혜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젯밤 유정 씨를 데려간 사람이 정말 유안 그룹의 대표님이에요? 성질이 괴팍하고 엄청 무서운 분이라고 소문이 자자하잖아요. 유안 그룹의 대표님이 맞다면 유정 씨가 오늘 아무 일 없이 출근할 리가 없잖아요. 이상하네요. 분명히 뭐가 있을 것 같은데...” 그녀의 질문에 곽혜인은 확신이 없었다. 사실 곽혜인도 잡지에서 유안 그룹의 대표를 본 게 전부다. 게다가 어젯밤은 룸안의 조명이 너무 어두워서 얼굴을 선명하게 본 게 아니기에 유안 그룹의 대표라고 백 퍼센트 확신할 수 없었다. “제가 잘못 봤을 수도 있어요.” “아니길 바라야죠. 그렇지 않으면 유정 씨가 힘들어질 거예요.” ... 오후, 김유정은 연수호의 전화를 받았다. 늘 그렇듯 짧고 굵게 팩트만 말했다. “내려와.”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정확히 4시를 가리켰다. 회사 밖으로 나온 김유정은 저 멀리 도로에 주차된 한정판 부카티 스포츠카를 보게 되었다. 빨간색과 검은색이 아주 조화롭게 어우러져 시원한 느낌을 주었고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눈길을 돌렸다. 스포츠카의 창문이 굳게 닫혀있어 안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한정판 스포츠카와 눈에 띄는 번호판을 단 사람은 경성 전체를 통틀어 연수호밖에 없을 것이다. “전무님.” 김유정이 막 걸음을 옮기려던 중, 마침 외근을 마치고 아래층에서 커피를 사고 있던 이수혁을 만났다. 이수혁은 올해 자성 그룹에 인턴으로 입사한 졸업생이다. 아직 회사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됐던 터라 김유정을 보자마자 반갑게 인사를 건넸고 김유정도 예의상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이수혁은 손에 든 커피 한잔을 건넸다. “전무님, 커피 드세요.” 완곡하게 거절했지만 차마 이수혁의 열정을 이기지 못하고 커피를 받았다. 같은 시각. 부카티 운전석에 앉은 남자는 핸들에 한 손을 얹고 다른 한 손으로 턱을 귀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차창 밖을 흘겨보니 길 건너편에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의 모습이 보였고 연수호는 순식간에 눈빛이 싸늘하게 돌변했다. 자연스럽게 머리를 묶은 김유정은 심플하고 박시한 흰색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소매 끝을 롤업하니 희고 가녀린 손목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블랙 팬츠에 벨트를 매치해 허리를 잘록하게 잡아주었고 하이힐까지 신으니 늘씬하고 하얀 다리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아주 캐주얼한 출퇴근 의상이지만 김유정 특유의 분위기가 더해지니 더없이 아름다웠다. 그녀의 눈길과 웃음까지 더할 나위 없이 환상적이다. 연수호는 눈을 가늘게 뜨고 다른 남자와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김유정을 뚫어져라 바라봤다. 얼마 지나지 않아 차창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김유정은 차 옆에 서서 문을 잡아당겼으나 열리지 않았다. 썬팅으로 인해 김유정은 연수호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지만 연수호는 그녀의 모든 행동이 보였다. 김유정은 문 열어달라며 얘기한 후 다시 문을 잡아당겼으나 여전히 열리지 않았다. 그제야 연수호가 일부러 의도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분 나빠서 걸음을 옮기려던 찰나 차창이 내려갔다. 때마침 갑자기 손 하나가 튀어나와 김유정의 손에 들려있던 커피를 툭 쳤고 커피는 순식간에 바닥에 쏟아졌다. 김유정은 본능적으로 뒤로 한 발 물러나 커피를 피했지만 신발에 커피가 조금 튀었다. 내면에 잠재되어 있던 화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연수호에게 따지려던 찰나 극도로 싸늘한 목소리가 차에서 울려 퍼졌다. “김유정, 너 거지야?” 연수호는 불쾌한 표정으로 그녀를 노려보더니 눈빛마저 차갑게 변했다. 안 그래도 화가 치밀어 오른 김유정은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대로 폭발했다. “미쳤어?” 연수호는 비꼬며 웃었다. “커피 살 돈이 없어서 다른 사람이 사주는 걸 받아먹는 거야?” 김유정은 어리둥절하더니 이내 다시 웃기 시작했다. “수호 씨, 지금 다른 남자가 나한테 커피 사줘서 기분이 나쁜 거지?” 연수호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자 김유정은 자연스레 잔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며 들으란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커피 사주려는 남자가 많아서 골치가 아프네? 매일 이렇거든.” 김유정의 말이 끝나자마자 액셀을 밟는 소리가 울려 퍼졌고 스포츠카는 그녀의 앞에서 쏜살같이 질주했다. 덮쳐오는 배기가스에 김유정은 기침을 콜록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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