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fic
Open the Webfic App to read more wonderful content

제9장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눈치야

스위트 룸 안. 분명히 소독할 것들만 가지고 오라고 했는데 문을 열자 의사도 함께 안으로 들어왔다. 김유정은 아주 조금 베인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고작 이 정도로 뭘 의사까지 불러?’ 의사는 그녀의 손바닥에 난 상처를 자세히 훑어보더니 가벼운 상처라며 간단하게 드레싱 해주었다. 그러고는 치료를 마친 후 룸을 나서기 전 상처 부위에 물이 닿지 않게 조심하라며 당부했다. 이에 김유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의사를 보냈다. 사실 이 정도 상처는 드레싱까지 할 필요가 없었다. 김유정은 옷매무새를 정리한 후 클럽을 나섰다. 그때 메시지 알림이 소리가 들려오고 그녀는 휴대폰을 확인했다. [유정 씨, 괜찮아요? 저랑 지혜 씨는 집에 도착했어요.] 메시지를 보낸 사람은 곽혜인이었다. [네, 괜찮아요.] 김유정은 답장을 보낸 후 다시 발걸음을 옮겨 주차장 쪽으로 향했다. “이 비서님?” 이태호는 그녀의 차량 옆에 서서 문을 열어주었다. “대표님께서 사모님을 집까지 무사히 모셔다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김유정은 어차피 운전하기 귀찮았는데 잘됐다며 차에 올라탔다. “연수호 씨가 별일이네요?” “사모님께서 손을 다치셨다고 운전하기 힘들 거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에 김유정은 붕대가 감긴 손을 바라보며 가볍게 웃었다. 이태호는 그녀의 기분이 좋아 보이자 시동을 걸며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사실 표현은 잘 안 하시지만 대표님께서는 사모님 일에 꽤 많은 신경을 쏟고 계십니다.” “고작 이 비서님을 보내 나를 집까지 데려다주게 한 게요?”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대표님께서는 늘 사모님 생각을 많이 하고 계십니다.” 이태호는 연수호가 귀국한 후부터 쭉 비서로서 그의 옆을 지켰기에 연수호라는 사람을 아주 잘 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사모님도 아시다시피 대표님께서는 자상한 분이 아니십니다. 보통 사람은 대표님께 말 한마디 붙이지도 못하죠. 하물며 사모님처럼 시도 때도 없이 욕을 하시는 분은 거의 없다고 봐도 됩니다. 아마 다른 누군가가 사모님처럼 대표님을 대했으면 진작 바다에 던져져 고기밥이 되었을 겁니다. 그런데 대표님은 사모님이 자기를 욕해도 목소리는 높일지언정 결과적으로 항상 당해주잖습니까.” 줄곧 연수호의 옆에 있기에 이태호는 김유정 때문에 이를 바득바득 가는 연수호의 모습을 아주 많이 봐왔다. 김유정은 이태호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더니 이내 일리 있는 말이라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다들 연수호가 성격이 더럽다고 하지만 사실 그녀도 성격이 만만치 않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건 그 자리에서 입 밖에 내야 하며 아닌 것은 곧 죽어도 아닌 성격이었다. 그건 연수호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였고 그 때문에 두 사람은 만나기만 하면 견원지간이라도 되는 듯 싸워댔다. 하지만 연수호는 이태호의 말대로 언성을 높일지언정 단 한 번도 그녀에게 손을 올리거나 무력으로 그녀를 제압하려 들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3년간 스캔들이 잦기는 해도 실질적으로 너무하다 싶을 정도의 일은 벌인 적이 없었다. 김유정은 그 생각에 어쩐지 기분이 조금 좋아졌다. 사실 아까 스위트 룸에서 그녀의 상처를 그녀보다 먼저 발견한 것만 봐도 연수호가 그녀를 신경 쓰고 있는 건지 아닌 건지 알 수 있었다. “이 비서님, 혹시 수호 씨가 날...” 김유정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태호의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 발신자는 연수호였고 연수호는 간단하게 몇 마디 전한 후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이태호는 끊긴 전화를 보더니 조금 난감한 얼굴로 김유정에게 시선을 돌렸다. “저... 사모님, 대표님께서 오늘 저녁 일이 좀 있으시다고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다고 하시네요.” 그 말에 김유정은 아까까지만 해도 들떴던 마음이 차갑게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무슨 일인데요?” “그게... 음...” 이태호는 김유정의 눈치를 살피며 식은땀을 흘렸다. “그게... 정아진 씨를 만나러 가신다고 하셨습니다. 아니, 제 말은 정아진 씨 쪽에 급한 일이 생겨서 그 문제를 해결하러 간다는 말이었습니다!” 다급한 그의 해명에 김유정은 화를 내는 것이 아닌 그저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 몇 초 후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이 비서님, 월급을 대체 얼마나 받길래 이래요?” “네? 그게 무슨...” “얼마나 많은 돈을 받으면 이렇게도 수호 씨를 감싸주나 싶어서요.” “네? 사모님, 오해입니다! 저는 그런 게...!” “세우세요.” 이태호가 뭐라 말을 다 하기도 전에 김유정이 앞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에 이태호는 끼익하는 소리와 함께 갓길에 차를 세웠고 세우자마자 차에서 쫓겨났다. 김유정은 아무 말 없이 운전석으로 향하더니 차 문을 세게 쾅 닫고 그대로 시동을 걸고는 자리를 떠나버렸다. 이태호는 길바닥에 버리진 채 쌩하고 사라진 차량을 보며 마음속으로 눈물을 흘렸다. ... 늦은 시각, 어느 한 골목. 한 남자가 어두운 골목에서 질질 끌려 나왔다. 남자를 끌고 나온 덩치가 우람한 다른 한 남자는 어둠에서 나온 후 곧바로 검은색 셔츠를 입은 남자의 옆으로 다가갔다. “대표님, 해결됐습니다.” 연수호는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정아진에게 물었다. “널 미행했다는 남자가 저 남자 맞아?” “맞아!” 정아진은 연수호의 옆에 찰싹 달라붙으며 그의 팔짱을 꼈다. “지나가는 골목마다 따라와서 무서워 죽는 줄 알았어.” 그러고는 고개를 들어 연수호를 바라보았다. 주변이 어두운 탓인지 연수호가 어떤 얼굴을 하고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수호 네가 제때 와줘서 다행이야.” 연수호는 팔을 뺀 후 경호원처럼 보이는 남자에게 물었다. “누군지는 알아봤어?” 우람한 덩치의 남자의 이름은 안수철로 그는 연수호의 경호원이다. 그에게는 안수환이라고 동생이 한 명 있었는데 그 동생 역시 연수호의 경호원이다. “별다른 신분은 없는 그저 일반인이었습니다.” 정아진은 텅 비어버린 자신의 팔을 보더니 어색하게 웃었다. “내가 너무 긴장하는 바람에 스토커라고 착각했나 봐.” 연수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후 담배를 바닥에 던져버리고 곧바로 골목밖에 세워진 차량 쪽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본 정아진은 저도 모르게 다시 그의 팔을 잡았다. “수호야, 1년 전에 있었던 일 말인데... 혹시 유정 씨도...” “김유정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눈치야.” 연수호는 다시 한번 팔을 빼낸 후 조금 차가운 목소리로 경고 아닌 경고를 했다. “너도 더 이상 그 일에 관해서는 기억할 필요 없어. 그리고 사진에 관해서는 더 이상 묻지 않을 테니까 앞으로 쓸데없는 짓 하지 마.” 그 말에 정아진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다른 뜻은 없었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너도 잘 알잖아.” 그녀는 초조한 감정을 숨기며 애써 웃어 보였다. 연수호는 별다른 말 없이 그녀를 힐끔 보더니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정아진은 멀어져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쿵쿵 뛰는 심장을 쓸어내렸다. 만약 1년 전 그 일이 아니었으면 그녀는 애초에 연수호 근처에 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 일이 있었기에 연수호와 송정우와 친구 할 기회도 생겼다. 다만 정아진은 한가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수호는 왜 김유정을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김유정만 특별 취급하는 거지?’ ... 연수호는 느긋한 발걸음으로 천천히 차에 올라탔다. 시트에 막 등을 기대려는 찰나 김유정으로부터 메시지 한 통이 도착했다. [당신이 지금 어디서 누구랑 뭘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내일 본가로 가서 밥 먹기로 한 거 잊지 마.] 메시지 내용을 확인한 연수호는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위로 말아 올리며 피식 웃었다. 털이 잔뜩 선 채 메시지를 보냈을 김유정의 모습이 절로 상상이 되었다. ... 휴스턴 별장. 김유정은 메시지를 보낸 후 그대로 침대에 누웠다. 사실 메시지 따위 보내고 싶지 않았지만 내일 아버지와의 식사 약속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보내야만 했다. 연수호가 약속을 깨면 그녀는 혼자 가야 하고 그렇게 되면 그 꼴 보기 싫은 모녀를 혼자 상대하게 될 테니까. 불을 끄고 서서히 꿈나라에 들려는 그때, 아래층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1분 후 침실 문이 열리더니 연수호가 안으로 걸어들어왔다. 김유정은 멀리서도 풍기는 여자의 향수 냄새에 베고 있던 베개를 그대로 연수호에게 던져버렸다. “다음번에 또다시 다른 여자 향수 냄새 묻혀오면 그때는 문전박대당할 줄 알아!” 어찌나 움직임이 컸던지 잠옷 숄더가 어깨를 타고 주르륵 아래로 흘러내렸다. 잔뜩 성이 난 채 어깨를 훤히 드러낸 그녀의 모습은 무척이나 유혹적이었다. 연수호는 베개를 받아든 후 김유정의 모습을 몇 초간 바라보더니 이내 씩 웃었다. “그럼 앞으로 여자들한테 너랑 같은 향수를 뿌리라고 할까?” ‘이 미친놈이, 뭐가 어쩌고 어째?!’

© Webfic, All rights reserved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