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장
대체 언제부터 사이가 틀어지기 시작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언제부터 그녀를 예뻐하던 가족들이 점점 그녀를 싫어하고 비난하게 되었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강준형 일가가 그녀를 딸로 인정하고 집에 데려간 뒤부터 모든 게 바뀐 것 같았다.
만약 강은영이 강설아의 이간질에 속은 거라면 그럴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다. 박강우는 그런 생각이 들자 강은영에 대한 신뢰도가 조금 올라갔다.
“오늘은 때가 아니야. 얌전히 집에 있어.”
어머니의 굳은 목소리를 생각하면 박강우는 본가에서 좋은 일로 그들을 불렀을 리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강은영을 데려가고 싶지 않은 건데 강은영은 결심을 굳힌 듯, 고집을 부렸다.
“당신이 내 걱정하는 건 알아. 하지만 당신과 함께하기로 했으면 할머니와 어머님과도 잘 지내야지.”
시간을 계산해 보면 아마 강설아가 박강우가 다친 일로 가족들에게 가서 고발한 시점이 지금 이 시점일 것이다.
물론 이번 생에 많은 것이 달라졌지만 예전에 한 일은 변하지 않았고 강설아가 그녀를 배신할 거라는 것도 변하지 않았다.
그녀는 알게 모르게 뒤에서 박강우의 가족들과 강은영의 사이를 이간질했다. 그러니 이번처럼 좋은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아마 내가 당신 다치게 한 일로 부른 것 같은데 걱정 마. 내가 가서 잘 해명할게.”
박강우는 그 말을 듣자 더 그녀를 데려가고 싶지 않았다. 안 그래도 강은영에게 안 좋은 감정이 많이 쌓인 가족들인데 그녀 때문에 그가 부상을 입었다는 일까지 알고 있으면 좋지 않은 소리가 나올 건 뻔했다.
그는 그녀의 태도가 바뀐 이 시점에서 안 좋은 소리를 듣고 또 위축될까 봐 두려웠다.
“내가 잘 처리할게. 당신은 내일 가.”
“여보….”
“애교 부려도 소용 없어. 얌전히 집에 있어.”
말을 마친 그는 강제로 그녀를 떼어놓고 외투를 챙겨 밖으로 나갔다.
강은영은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든든하면서도 후회가 몰려왔다.
지난 생에도 그는 이렇게 그녀의 편에 서주었고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서도 가족들의 안 좋은 소리가 그녀의 귀에 전해지지 않게 했다.
그때는 왜 몰랐을까?
바보처럼 그를 밀어냈던 지난 생의 자신을 생각하며 강은영은 스스로 귀뺨을 쳤다.
“사모님, 이러지 마세요. 대표님도 사모님 생각해서 집에 있으라는 거잖아요.”
전 집사가 다가와서 그녀를 위로했다.
강은영은 약간 의아한 표정으로 전 집사를 바라보았다.
“집사 아저씨도 이 일을 알고 계셨어요?”
“그럼요. 저희는 모두 대표님의 사람들입니다.”
강은영은 그 말을 듣고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박강우가 출발하고 10분 후, 강은영은 강씨네 저택으로 출발했다.
도착하자마자 강설아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차에서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뭔가 기분 좋은 일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녀가 박강우의 본가에서 받은 선물을 안고 차에서 내리던 순간, 차에서 내린 강은영이 그녀를 불러세웠다.
“거기 서.”
강은영의 목소리를 들은 강설아가 흠칫 어깨를 떨었다.
고개를 돌리자 강은영이 날이 선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설아는 저도 모르게 위축되어 뒷걸음질치면서도 선물박스를 바짝 껴안았다.
“네… 네가 어쩐 일이야?”
“그걸 정말 몰라서 물어?”
강은영은 성큼 앞으로 다가가서 강설아의 손에 들린 선물 박스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기억이 맞다면 박강우의 할머니가 선물한 억대의 다이아몬드 목걸이일 것이다.
그녀는 손을 뻗어 그것을 낚아챘다.
놀란 강설아가 다급히 소리쳤다.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뭘 하긴? 이거 네 거 아니야.”
지난 생에도 강설아는 할머니 앞에서 아양을 떨며 강은영과 시댁 식구들 사이를 이간질해서 많은 선물을 받아냈다.
하지만 이번 생에는 절대 그런 일이 반복되게 하지 않을 것이다.
강설아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그거 강우 할머니가 나한테 선물로 준 거야. 당장 돌려줘.”
짝!
아찔한 소리와 함께 강설아가 비명을 질렀다.
“악!”
손찌검도 모자라서 이제는 물건까지 빼앗다니!
강설아는 악에 받쳐 소리를 질렀다.
“사람 살려요! 여기 강도가 있어요!”
그녀는 그러면서도 강은영이 잡고 있는 선물 박스에 손을 뻗었다.
강영물산 상황은 나날이 안 좋아지고 있었고 미리 대비를 해두어야 했다.
탁!
강은영은 그대로 상대의 종아리를 걷어찼다.
강설아는 통증을 참지 못하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박스를 열어 보니 할머니가 애지중지 소장한 다이아몬드 목걸이 세트였다. 그녀는 비웃음 가득한 눈으로 강설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 능력 좋다?”
거짓말로 할머니를 속여서 이런 값비싼 보석까지 얻어내다니. 역시 여우 짓은 강설아를 따라올 자가 없었다.
사실 지금도 강은영은 이해할 수 없는 게 있었다. 가문의 체면과 도덕을 중요시하는 박강우의 가족들이 어쩌다가 불륜으로 태어난 강설아를 그렇게 예뻐하게 되었을까?
이 사이에 다른 이유가 있을까?
하지만 그게 무엇이든 전부 제 자리로 돌려놓을 것이다.
“선물 돌려줘.”
강설아는 강은영을 음침하게 노려보며 다시 손을 뻗었다. 하지만 힘의 차이는 진작에 실감했기에 억지로 빼앗지는 못하고 눈으로만 욕을 퍼붓고 있었다.
“사생아 주제에 이렇게 값비싼 액세서리가 너한테 어울린다고 생각해?”
소리를 듣고 나온 강준형 부부는 그 말을 듣자마자 분노가 치밀었다.
안 그래도 회사 일 때문에 머리가 터질 지경인데 강은영을 보자 모든 게 그녀의 탓인 것 같아서 화를 참을 수 없었다.
“네가 무슨 낯으로 집에 와? 회사가 너 때문에 지금 어떤 상태인지 알기나 해?”
“정말 나 때문이라고 생각해?”
강은영은 웃으며 강준형에게 물었다.
강준형이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강은영에게 달려들려던 찰나, 차 문이 열리더니 진기웅이 차에서 내렸다.
그는 말없이 뒤에서 버티고 서 있을 뿐인데도 위협적인 포스가 풍겼다.
강준형은 박강우가 가장 신뢰하는 비서겸 경호원인 진기웅을 보자 차마 가죽띠를 풀지 못하고 눈빛으로 강은영을 압박했다.
“너 따라 들어와.”
“강 회장님, 나 바쁜 사람이라 여기서 낭비할 시간이 없어요.”
말을 마친 그녀는 뒤돌아서 차로 다가갔다.
강준형은 화가 나서 피를 토할 것 같은 심정이었다.
회사 사정을 알고 있는 진미선은 강은영에게 불만이 많았지만 일단 꾹 참고 그녀를 불렀다.
“은영아, 잠깐만.”
“참. 조금 전에 내가 당신들이 아끼는 딸에게서 억 대의 액세서리 세트를 빼앗았거든.”
온화한 표정을 연기하던 진미성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
그들이 미처 폭발하기도 전에 강은영은 박스를 흔들며 차에 올랐다.
강설아는 서러움에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 저거 강우 할머니가 나한테 선물한 건데 팔아서 아빠 회사에 보탤 생각이었거든. 그런데 은영이가 빼앗겼어. 쟤 어쩜 우리한테 저럴 수 있어?”
진미선은 안쓰러운 마음에 큰딸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차에 오른 강은영은 운전석에 앉은 진기웅에게 말했다.
“본가로 가주세요.”
“하지만 대표님은 사모님께 얌전히 집에 계시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강은영이 아니었다. 혼자 그의 등 뒤에 숨어 보호만 받을 수는 없었다.
“진 비서 내려요. 내가 직접 운전해서 갈 거니까.”
“사모님!”
“내려요!”
강은영이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본가에는 박강우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족들이 있었다. 그녀는 자기 때문에 박강우가 가족들과 사이가 멀어지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어차피 한번은 짚고 넘어갈 거, 차라리 매도 빨리 맞는 게 나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