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몇백 억을 나눠야 하는 거 아니야?

그녀는 목소리가 싸늘하고 눈빛이 결연했다. 그런데 말이 끝나자마자 고선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휴대전화를 꺼내 발신 번호를 힐끗 보던 그는 눈썹을 찌푸리며 전화를 받았다. “왜 그래?” 전화기 너머로 무슨 말을 했는지 고선호는 낮은 소리로 대답했다. “지금 갈게.” 그는 나유아를 쳐다보지도 않고, 고개조차 돌리지 않은 채 침실을 나갔다. 나유아는 코웃음 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이 다 깨서 다시 잠들 수 없었다. 일어나서 짐을 싸고 난 그녀는 이혼 협의서를 작성하고 자신의 이름에 서명한 후 카드 몇 장과 함께 거실 티테이블에 올려놓았다. 그제야 그녀는 고선호와의 신혼집을 떠났다. 성효진은 긴 다리를 꼬고 아무렇게나 차에 기대어 있다가 나유아가 조그마한 캐리어만 들고나오는 걸 보고 이내 몸을 똑바로 세우더니 놀라 눈을 휘둥그레 떴다. “설마? 이것밖에 안 돼?” 트렁크에 짐을 잽싸게 넣고 비서 석에 올라탄 나유아는 가볍게 입을 열었다. “적어도 지금은, 난 자유야.” “정말 이혼했어?” 성효진은 별로 믿지 않는 눈치였다. 나유아는 시큰둥하게 어깨를 으쓱했다. “콩깍지를 벗기고 다른 일 해야지.” 성효진은 더는 묻지 않고 바로 운전대를 돌리며 욕설을 퍼부었다. “젠장, 고선호는 그렇게 부자면서 몇백억 정도는 나눠야 하는 거 아니야?” 나유아는 입을 삐죽하며 대답했다. “그의 강산은 모두 혼전 재산이니 내가 감히 넘볼 수 없어.” 돈에 관해서 고선호는 사실 통이 큰 편이었다. 만약 법적으로 재산을 엄격하게 나눈다면, 그녀가 손에 쥘 수 있는 것은 수백억이 훨씬 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원하는 것은 처음부터 그의 돈이 아니었다. 성효진은 그녀가 말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이혼도 좋은 일이야. 스튜디오 주문이 너무 밀려서 내 허리가 부러질 지경이었는데 마침 네가 잘 돌아왔어. 그렇지 않았다면 항상 나 혼자 바빴을 거야, 사람들은 정말 이 작업실이 나 혼자 것이라고 생각해.” 나유아는 졸업하자마자 성효진과 공동으로 의상 디자인 스튜디오를 열었는데, 이름은 ‘N. HYO'로 나유아의 성과 성효진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한국어 이름은 음역인 '엔효'였다. 두 사람 중 한 명은 비즈니스 천재였고 다른 한 명은 디자인 천재였기에 스튜디오는 늘 인기가 많았다. 하지만 나유아는 가장 절정일 때 고선호와 결혼해 가정주부가 됐다. 그래서 엔효는 항상 성효진 혼자 관리했고, 나유아는 배후에서 디자인 원고만 책임졌다. 성효진은 사업에 전념하고 있었는데 능력이 뛰어나 몇 년 만에 엔효를 VIP 개인 의상 디자인실로 변신시켰다. 엔효의 유일한 디자이너이자 오너인 나유아는 성효진이 에이스 디자이너 ‘수정'으로 포장돼 상류층에서도 유명해졌다. 고선호와 이혼한 그녀는 거의 빈털터리가 되었다. 앞으로의 생계 문제를 고려해야 했던 그녀는 원래 스튜디오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성효진의 말에 자기도 모르게 정색했다. “전에 너에게 많은 디자인 원고를 줬잖아, 왜 아직도 남은 주문이 있지?” 성효진은 이 일을 생각하면 머리가 아파졌다. “부잣집 아가씨들, 연예계의 배우들을 넌 몰라, 정말 임금님보다 더 시중을 들기 힘들어. 스타일과 색이 겹치기만 해도 안 돼. 그래서 디자인 원고는 거의 한 장에 한 벌만 할 수 있어. 네가 지난번에 준 것은 지난번 계약서까지만 버틸 수 있어.” “욕심을 좀 부려서 예약을 몇 건 더 받았거든...” 그녀는 말하며 손끝으로 손가락을 꼬집었다. “아주 조금만 더.” “아주 조금 얼마나?” 나유아는 걱정스러운 듯 따져 물었다. 성효진은 헤헤 웃으며 대답했다. “그냥... 66건 정도.” 잠시 머뭇거리다가 또 한마디 보충했다. “드레스야.” 목소리가 아까보다 많이 약해졌다. 나유아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원래 어디에 살지 고민했는데, 이제 고민할 필요 없이 그냥 스튜디오에서 지내면 된다. 66건, 그녀는 하루에 한 장씩 디자인해도 두 달이 걸리고, 세부 자료도 대조해야 하니, 연말까지는 쉬지 못할 것 같았다. 그녀는 비서 석의 등받이에 기대어 앞을 바라보았다. 결혼 몇 년 동안 그림 그리는 것 말고는 너무 적은 일을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효진아, 몇 년 동안 고생했어.” 성효진은 대범하게 말했다. “뭐가, 우리 둘 사이에 무슨 고생이야. 게다가 네 디자인이 없으면 내가 아무리 고생해도 소용없어. 앞으로 우리 둘이 힘을 합치면 다른 건 말할 것도 없고, 연예계의 많은 훈남을 만날 수 있어. 고선호의 그 죽 쓴 얼굴에 비하면 하나같이 잘생겼잖아. 잘생기기만 할 뿐만 아니라 유용해.” 말을 하던 성효진은 또 화를 내며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젠장, 조만간 고선호 그 자식을 네 앞에 무릎 꿇고 돌아와달라고 애원하게 할 거야.” 나유아는 어제 이후 유일하게 진심 어린 미소를 지었다. 이름을 듣자 고선호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더럽다는 생각만 들었다. 하지만 고선호의 마음은 배지혜로 가득 차 있다는 걸, 빨리 자신이라는 이 걸림돌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돌아와 달라고 부탁한다고.?’ ‘말도 안 돼.’ 나유아는 성효진을 흘겨보며 물었다. “내가 잘 지내길 바라면 안 돼?” 고선호라는 이 물 건너 간 사람과 다시는 엮이고 싶지 않았다. 엔효 스튜디오는 해성 거리에 있는데 처음에는 점포 한 칸에서 점포 한 줄로 확장되었고, 내부에는 400㎡가 넘는 사무실이 있으며 비서만 7, 8명을 모집했다. 성효진은 나유아를 데려다주자마자 출장을 떠나며 특별히 당부했다. “며칠 안에 VIP 고객이 와서 소속 연예인들의 드레스를 장기 주문 제작할 거야. 오래전에 예약한 건데 마침 네가 있으니 내 마음이 좀 편해.” “마음 편히 갔다 와. 앞으로 이런 일은 나에게 맡기면 돼.” 스튜디오 2층에는 전용 휴게실이 있었다. 나유아는 짐을 꾸리고 잠시 자리를 잡자마자 비서가 보낸 수요 정보에 맞춰 빠르게 작업 모드로 들어갔다. 그래야 이혼을 잠시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밤낮없이 3일을 달려 가까스로 급한 원고를 보내어 견본을 만들도록 하고후 잠시 누우려 했는데 비서가 급히 올라와서 말했다. “유아 언니, 상대할 수 없는 고객이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