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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우리 이혼하자

“남편이 바람을 피웠어.” 친구에게서 이 소식을 들었을 때, 나유아는 막 배란 촉진 주사를 맞은 후 복부로 전해지는 쑤시는듯한 통증을 참으며 외래 진료 벤치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었다. 검은 머리에 하얀 피부를 자랑하는 그녀였지만 조그마한 얼굴에는 핏기가 전혀 없었다. 그런데도 아름다운 용모에는 조금도 영향 주지 않은 듯 지나가는 사람들이 자꾸 돌아보곤 했다. 나유아는 심호흡을 하고 손을 살며시 떨면서 사진을 클릭해 보았다. 고선호가 핑크 프리미엄 드레스를 입은 여자를 안고 호텔에서 나오고 있었다. 차갑고 딱딱한 이미지였던 고선호였지만 고개를 숙이는 순간 더없이 부드러워졌다. 아는 여자였다. 그녀는 바로 고선호의 첫사랑, 배지혜다. 나유아는 정신을 차리고 번호를 찾아 고선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긴 연결음 끝에 전화기 너머로 남자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야?” “밤에 돌아올 거야?” 나유아는 사실 돌아올 수 있는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의 전화가 이미 상대방을 방해한 것 같았다. 몇 초간 침묵이 흐른 뒤 고선호는 귀찮은 듯 물었다. “뭐가 그리 급해?” 눈시울이 붉어진 나유아는 그의 매몰찬 말투에 마음이 아팠지만 슬프지 않은 듯 덤덤한 어투로 되물었다. “오늘이 무슨 날인지 잊은 거 아니지?” 비밀 결혼한 지 3년이 되는 그들은 한 달에 한 번꼴로 같은 방을 쓰는 것을 제외하면 만나는 시간이 매우 적다. 오늘은 그들의 결혼기념일이자 그가 집에 돌아가야 하는 날이다. 지난달 침대에서 그는 반드시 그녀와 함께 있겠다고 약속했다. 고선호는 그녀의 말을 끊고 귀찮은 듯 말했다. “좀 이따 들어갈 테니 걱정하지 마.” 말을 마친 그는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뚜뚜’ 하는 전화 소리를 들으며 나유아의 마음은 순식간에 바닥으로 내려앉았다. 고개를 들고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심호흡을 몇 번 하고 친구 성효진에게 데리러 와달라고 전화를 걸었다. 10분 후, 병원 복도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울렸다. 깔끔한 남색 스트레이트 단발머리에 은색 염색까지 곁들인 그녀의 머리카락은 걸음 속도에 따라 제멋대로 찰랑거렸는데 멋지고 당당해 보였다. 성효진은 그녀에게 떨어지는 경이로운 눈빛을 무시한 채 눈썹을 찌푸리더니 곧장 나유아에게로 향했다. 너무 창백해 투명하기까지 한 나유아의 작은 얼굴을 보고 마음이 아프다고 느낀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욕설을 퍼부었다. “그 사람은 배지혜랑 함께 있는데 넌 뭐하러 배란 촉진 주사까지 맞고 있어?” 나유아는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었다. 그녀와 고선호의 결혼은 원래 억지로 맺어진 것으로, 할아버지가 억지로 두 사람을 엮은 것이다. 혼사가 앞에 놓였을 때 그녀는 거절하지 않았고, 마음속으로는 심지어 은근히 기뻐했다. 그녀가 오랫동안 고선호를 좋아했다는 걸 아무도 모른다. 결혼 후 그녀는 고선호에게 첫사랑 배지혜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할아버지가 그녀의 가정 배경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자신을 방패막이로 삼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선호는 그녀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을 꺼렸고, 그래서 그들은 3년 동안 비밀 결혼한 상태였다. 나유아는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언젠가 고선호의 마음을 녹여 마음속의 그 사람을 잊게 하고, 착실하게 자신과 함께할 수 있게 하리라 생각했다. 배지혜가 나타난 지금에서야 나유아는 자신이 얼마나 멍청한지 알게 되었다. 집에 도착한 후, 나유아는 샤워를 하고 나서 침대 위의 옷을 보고 마음이 쓰라렸다. 그녀는 자신에게 단 한 번만 기회를 주려 했다. 자신이든 고선호든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한밤중에 갑자기 차갑고 물기 어린 큰 손이 허리를 감싸 안는 걸 느꼈다. 남자의 뜨거운 호흡이 귓가에 닿아 그녀를 태우려는 듯했다. 놀라 깨어난 나유아는 본능적으로 발을 들었다. 고선호는 순식간에 눈치채고 민첩하게 그녀의 발목을 움켜쥐고 양옆으로 내리누른 후 몸을 돌려 그녀를 몸 아래에 짓눌렀다. 나유아는 촉촉한 눈동자로 잠에서 깬 듯 멍해 있다가 곧 정신을 차리고 손을 들어 남자의 목을 감싸 안더니 고개를 들고 다가갔다. 남자의 시선이 그녀의 옷을 훑고 지나가더니 호흡도 따라서 뜨거워졌다. “돌아오라더니, 이것 때문이야?” 나유아는 동작이 뻣뻣해다가 곧 웃음을 터뜨리며 대답했다. “맞아.” 그들이 함께할 때 항상 나유아가 주도적이었다. 배란 촉진 주사, 보신탕, 임신만 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시도해 볼 의향이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아이를 낳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에, 고선호는 더는 계속할 의욕이 없어져 그녀를 밀치고 일어나 침대 탁자에서 휴지를 뽑아 천천히 손을 닦았다. 그는 방금 무슨 더러운 것을 만진 듯 손가락 마디마디도 놓치지 않고 자세히 닦은 후 휴지를 쓰레기통에 던지며 냉담한 표정으로 물었다. “이따위 일로 사람을 시켜 지혜를 감시한 거야?” 나유아는 잠시 어리둥절해 있다가 한참 후에야 그들의 사진을 폭로한 파파라치를 말한다는 걸 알아차렸다. 의문문이었지만 오히려 긍정적인 어조였다. 그러니 그가 돌아온 것은 특별히 애인을 위해 따지려는 것이다. 달아올랐던 나유아의 몸은 얼음물을 뒤집어쓴 듯 순식간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차가워졌다. 한참 동안 침묵한 후, 그녀는 몸을 돌려 일어나 앉아 잠옷 치마를 들고 아무렇게나 걸쳤다. 화사한 얼굴은 쓸쓸하게 변한 채 방금 침대에서 열정적으로 움직이던 요정 같은 모습과는 딴판이었다. 나유아는 서슴없이 입을 열었다. “그래, 당신은 전 여자친구랑 시시덕거리면서 사생활도 철저히 지켜야지. 뭐가 됐든 겉보기엔 그럴듯해야겠지? 파파라치는 당연한 거야. 내가 상간녀 신고하지 않은 것은 당신과 혼인 신고를 했다는 사실이 창피해서야!” 고선호는 어리둥절했다. 항상 얌전하고 착한 나유아의 모습에 익숙한데, 이렇게 말주변이 좋은 줄 몰랐다. 역시 알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선호는 이마에 핏줄이 불끈 솟은 채 다짜고짜 그녀를 뿌리쳤다. “당신의 더러운 생각들로 지혜를 말하지 마, 지혜는 당신과 달라.” 고선호의 눈에서 그녀는 항상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고, 더럽고 철저한 사람이다. 반면 배지혜는 영원히 순수하고 깨끗하다. 그와 함께 3년을 보냈지만 배지혜의 눈빛 하나에 못 이겨 모든 것이 끝나버렸다. 나유아는 정말 자신이 눈이 멀어서 이렇게 오랫동안 그를 좋아한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어렸을 때라면 이런 개자식 같은 놈은 주먹 한 방에 날려 보냈겠지만, 그녀는 어이없게도 줄곧 그를 보물처럼 다뤄왔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나유아는 턱을 치켜들며 살며시 눈살을 찌푸리고 한마디 뱉었다. “고선호, 우리 이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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