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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장 마음이 식었어

추웠다.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몰려왔다. 나유아는 욕조 가장자리에 기대어 뜨거움과 차가움을 동시에 느끼며 스르륵 잠이 들었다. 이렇게 찬물에 밤새 담갔더니 다음날 흐리멍덩했다. 외출하기 전 특별히 장선댁에게 말했다. “선호 씨 어젯밤에 일찍 나가서 밤새 돌아오지 않았는데 저도 뭘 하러 갔는지 모르겠어요. 기다리지 않고 먼저 출근할게요.” 그녀는 고선호의 행방이 궁금한 것이 아니라 장선댁이 할머니한테 말 좀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어젯밤 두 사람은 잠자리하지 못했고 도망간 사람도 그녀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녀는 어떻게 고택을 떠났는지도 몰랐다. 그녀가 스튜디오 앞에 섰을 때 성효진은 창백한 그녀의 안색을 보고 물었다. “어젯밤에 뭐 했어? 어떻게 이 꼴이 되었지?” 그녀는 비틀거리는 나유아를 급히 부축하다가 몸이 유난히 뜨겁다는 것을 발견했다. “왜 열이 나는데도 여기 나왔어?! 병원에 데려다줄게.” 나유아는 힘없이 손을 내저으며 대꾸했다. “안 가, 집에 가서 좀 자고 싶어, 데려다줘.” 그녀는 이 말을 할 때 자기도 모르게 손으로 배를 움켜쥐었다. 그곳은 그녀가 수없이 주사를 맞았던 곳이다. 겨우 종지부를 찍고 나온 곳인데 그녀는 지금 병원이라는 말만 들어도 구역질이 났다. 그녀의 오랜 절친인 성효진은 곧 알아차렸다. “그래, 가지 말자. 집에 데려다줄게.” 안타까운 마음에 나유아의 이마를 만져보던 그녀는 급한 일을 제쳐놓고 곧장 차를 몰아 그녀를 아파트로 돌려보냈다. 물을 따라주고 해열제를 찾으며 계속 묻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고선호가 괴롭혔지? 멀쩡하던 사람이 왜 이렇게 돼서 돌아왔어?” 나유아는 성효진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괜찮아, 어젯밤에 이불을 잘 덮지 않아서 감기에 걸렸나 봐. 먼저 돌아가, 약을 좀 먹으면 괜찮아질 거야.” 그녀는 애써 눈을 뜨고 말을 이었다. “어렵게 그 주문서들을 돌려줬는데 네가 자리를 비우면 안심이 안 돼, 빨리 돌아가.” 밤새 찬물을 담가 얻은 40억의 원가가 또 치솟고 있는데 더는 잃어버리면 안 된다. 성효진은 입을 열고 뭔가 말하려다 마음이 아파 그냥 포기했다. ‘평소 나유아는 욕심이 정말 없는 사람인데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돈을 이렇게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걸까?’ 결국 그녀는 이를 악물고 휴대전화를 꺼내며 말했다. “지금 갈 거야, 걱정하지 마.” “가만히 누워있어, 내가 오빠한테 오라고 했으니 지금 오는 길일 거야.” ... 나유아는 노크 소리에 잠이 깼다. 그녀는 성효진이 오빠 성기범에게 그녀를 돌보라고 부탁했다던 것을 떠올리고 아마 성기범이 도착한 거로 생각했다. 움직이기 싫었지만 침대에서 일어나 문을 열려고 애를 썼다. 문을 여는 순간 눈에 익은 눈매가 눈에 들어왔다. 그 사람도 깜짝 놀라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녀를 쳐다보았다. 기대에 차 있던 눈빛도 망연자실해졌다. “형수님... 형수님? 왜 여기 있어? 아니, 그게 아니라 왜 나유아 씨지?” 심호현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입을 다물고 자신만만하게 집 안으로 들어서려던 발을 걷었다. “내 집인데 왜 내가 있으면 안 되지? 아니, 왜 호현 씨가 여길 찾아왔지?” 문밖에서 한기가 밀려오자 나유아는 목을 움츠리고 안으로 몸을 기울여 심호현에게 길을 내주었다. 추위에 떨고 싶지도 않았고 심호현을 내버려 둘 수도 없었다. “고선호랑 결혼한 지 이렇게 오래됐는데, 아직도 미녀를 감추는 수작을 부릴 줄은 몰랐네.” 심호현은 그녀의 무기력하고 창백한 얼굴을 보며 더는 머뭇거리지 않고 어색하게 웃으며 옆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눈앞의 작은 세 칸짜리 방을 바라보던 그는 눈썹을 찌푸리며 기대와 흥분이 수그러들고 존경 어린 표정을 지었다. “저기, 성기범이 형수님과 무슨 사이지?” 심호현이 떠보며 물었다. “그 사람은 내 친구... 우리 사장님 성효진의 오빠야.” 나유아는 하마터면 진실을 말할 뻔했다. “저기... 차는 다 고쳤어?” 나유아는 얼른 말을 돌리고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순간 머리가 어지러워 벽에 살짝 기대어 정신을 차리고 난 후 눈앞의 사람을 바라보았다. “별일도 아닌 데 뭘. 선호는? 왜 형수님 보러 안 온 거야?” 마침내 그들 사이의 관계를 알게 된 심호현은 한숨을 쉬며 한마디 더 물었다. 그 이름을 들은 나유아는 어젯밤 두 사람의 애틋하던 장면을 떠올렸다. 전화 한 통을 받고 부랴부랴 나가는 그의 모습도 생각났다. ‘젠장, 개자식.’ 나유아는 냉랭한 표정을 지으며 대꾸했다. “내가 어떻게 알아?” “물 한 잔 따라올 테니 앉아 있다가 가, 별일 없는데 헛걸음을 해서 미안하네.” 몸이 더 아프다는 걸 느끼며 나유아는 더는 실랑이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탁자 위의 유리잔을 들고 돌아서서 주방으로 갔다. ‘쨍그랑!’ 주방에서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휴대전화를 집어 던지고 주방으로 달려간 심호현은 쓰러진 나유아를 보았다. 가느다란 팔이 유리에 긁히면서 피가 실 끊어진 구슬처럼 흘러나와 바닥에 한 송이 피 꽃을 피웠다. “젠장... 형수님!” 심호현은 친구의 아내라 손을 함부로 할 수 없어 나유아의 어깨를 흔들었지만 뜨거운 온도에 움츠러들었다. ‘젠장!’ 심호현은 얼른 혼수상태로 바닥에 쓰러져 있는 나유아를 안고 방문을 나섰다. 조수석에 나유아를 밀어 넣은 뒤 액셀을 힘껏 밟은 그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익숙한 검은 그림자를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어두운 곳에 있던 사람은 멀어져 가는 빨간 페라리를 노려보다가 몸을 움직였다. “고... 고 대표님, 심 대표님인 것 같아요.” 고선호의 뒤에 서 있던 송영수는 어리둥절해 하며 그의 어두운 얼굴을 바라보았다. “따, 따라갈까요?” 냉랭한 눈빛으로 질주하는 심호현의 차를 바라보던 고선호의 눈빛이 더 차갑게 변하며 주변 기온까지 차가워지는 듯했다. “돌아가자.” 한참이 지나서야 명령이 떨어졌고, 비서는 그 말에 따라 시동을 걸고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동네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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