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장
윤시아가 고개를 돌려 임천우를 노려보며 쏘아붙였다. "임천우, 시골뜨기 가난뱅이인 주제에 허세 안 부리면 안 돼?"
임천우는 어리둥절해 있다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을 내뱉었다. “나 진심이야.”
“헛헛헛……”
비웃으며 돌아서서 이 층으로 올라가는 윤시아.
그녀는 겁에 질린 임천우의 모습을 오늘 직접 목격한 후로부터 임천우에게 남아있던 호감마저 깡그리 사라졌다.
그녀는 임천우와 한마디라도 더 하는 것조차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
오후.
윤시아는 회사에 가지 않고 절친인 백서연과 만나기로 약속했다.
백서연은 발이 넓어 여러 분야에 친구가 많다, 그래서 그녀는 그런 백서연한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임천우도 문을 나섰다.
윤씨 저택에 찾아간 임천우는 윤영종에게 혁명 기념주화 하나를 부탁했다.
퇴역한 사관인 윤영종은 혁명을 상징하는 기념주화를 갖고 있었다.
그 기념주화 또한 윤씨 집안이 전혼 빌딩을 탈환할 수 있는 관건이기도 했다!!!
기념주화를 받은 임천우는 윤씨 저택을 나서면서 부광시 시장인 조현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현수 형, 바빠요?”
“늑대왕, 무슨 일이든 분부만 내리십시오”
“세 시간 뒤, 형이 직접 주영병원으로 와요.”
“알았어요.”
조현수의 대답을 들은 임천우는 전화를 끊고 택시를 불러 곧바로 주영병원으로 향했다.
정산 중이던 주경미가 주영병원에 찾아온 임천우를 보고 방방 뛰어서 임천우의 곁으로 다가오더니 다정하게 외쳤다. “닥터 오라버니!”
주 원장이 보이지 않자 임천우가 주경미한테 물었다. “경미 씨, 경미 씨 할아버지는요?”
“부상자 수용소로 가셨어요.”
주경미가 말했다. “닥터 오라버니, 부탁할 게 있으면 저한테 말해요. 저도 도와줄 수 있거든요.”
“약재 좀 골라서, 여기서 탕약을 달일까 해서요.” 임천우는 약재 이름 몇 가지를 말했다.
“나한테 맡겨요.”
준비를 마친 주경미가 임천우를 도우려고 직접 나섰다.
무려 세 시간이 지난 뒤, 임천우는 새까만 환약 몇 알을 만들어냈다.
괴상한 약 냄새가 퍼지자 주경미가 참지 못하고 코를 훌쩍였다. “닥터 오라버니, 이 환약은 효능이 뭐예요?”
“총, 화기 등으로 인한 상처를 치료하는 보약이죠.” 검은 환약을 비비고 있는 임천우의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닥터 오라버니, 오라버니 혹시 다쳤어요?” 주경미가 갑자기 긴장하기 시작했다.
“내가 아니고.”
임천우가 담담하게 말했다. “내 부하가 총상을 입은 적 있는데, 특별히 챙겨주려고 만들고 있어요.”
“닥터 오라버니, 군대 갔다 왔어요?”
“네.”
“그럼 오라버니 부하라면......” 주경미는 너무나도 궁금해졌다.
임천우는 이제 겨우 스물여덟, 아홉인데 이 나이에 군에서 높은 자리에 있었다고?
그때 발걸음 소리가 울렸다.
누군가가 탕약실 입구로 다가와 살짝 열린 문을 가볍게 두드렸다.
뒤돌아보던 주경미는 순간 넋을 잃고 말았다.
뜻밖에도 부광시 시장인 조현수였다!!!
조현수가 살짝 웃으며 말을 건넸다. “내가 바로 그 부하입니다!”
쿵!!!
조현수의 말은 우렁찬 천둥소리처럼 주경미의 귓가에 오랫동안 맴돌았다.
어엿한 부광시 시장인 조현수가, 부광시 중책을 떠맡고 있는 대부가, 뜻밖에서 임천우의 부하라니!!!
주경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임천우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점점 더 궁금해졌다.
새파랗게 젊은 이 닥터 오라버니는 대체 어떤 전설 같은 삶을 살았던 걸까?
멍한 상태의 주경미를 보며 임천우가 한마디 귀띔했다. “경미 씨, 차라도 좀 끓여서 조 시장님 대접해야지 않겠어요?”
“아!”
“미안해요!”
“조 시장님, 잠깐만요, 차를 바로 내올게요!”
주경미가 탕약실을 떠난 뒤에야 조현수는 임천우 앞으로 다가가 정중하게 말을 건넸다. “늑대왕, 무슨 일로 찾은 거죠?”
“형의 옛 상처가 아직 안 나은 같아서, 약 좀 만들어봤어요.”
“늑대왕, 고마워요!”
두 손으로 환약을 받은 조현수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늑대왕의 의술은 천하무적이다.
늑대왕이 만든 환약이라면 수년간 그를 괴롭혔던 잔병들이 틀림없이 구름 걷히듯 가셔질 것이다!
그러나 환약을 조현수에게 건넨 임천우가 화제를 돌리며 물었다. “현수 형, 내가 듣기로는 부광시에 있는 전혼 빌딩 프로젝트가 아직 결정 나지 않았다면서요?”
“맞아요.”
조현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사실대로 입을 열었다. “윤씨 집안과 진씨 집안에서 지금 입찰 경쟁 중인데, 아직 어느 쪽에 넘길지는 결정된 바가 없거든요.”
“현수 형, 내가 선물 하나 갖고 있는데, 윤씨 집안에서 형한테 드리는 거예요.”
임천우는 혁명 기념주화를 꺼내 조현수의 손에 쥐여주었다. “이 기념주화는 윤씨 집안 윤영종 어르신의 것인데, 그분 또한 한때는 훌륭한 사관이셨죠.”
손바닥 위에 놓인 기념주화를 보면서 임천우의 말을 듣고 있던 조현수는 문득 뭔가를 깨우쳤다. “늑대왕, 무슨 말인지 알겠네요.”
“아래 사람들을 시켜, 전혼 빌딩 프로젝트를 윤씨 집안에 맡기도록 할게요!”
“네.”
임천우가 한번 대꾸하고는 말을 이었다. “부탁할 게 하나 더 있어요, 내일 저녁에 형의 생일파티가 있다면서요. 윤씨 집안사람들도 참석하고 싶어 하는데, 자리 좀 만들어줘요.”
“그건 어렵지 않죠. 내가 경비한테 말해놓을게요. 윤씨 집안사람들은 초대장 없이도 참석할 수 있게끔요!”
그러면서 잠시 망설이던 조현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늑대왕, 늑대왕의 시간이 엄청 소중하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 초대하려는데 내일 참석해 주셨으면 해요.”
“내일 차 보내줘요!”
임천우는 거절하지 않았다. 어쨌든 지금은 한가하니 이런데 가끔 참석해도 괜찮다고 그는 생각했고,
이에 조현수는 매우 감격했다.
자신의 생일파티에 늑대왕이 참석한다니, 이건 그의 평생 영광이기도 했다!
이런 일은 나중에 옛 전우들 앞에서 한바탕 자랑할 수도 있다.
주경미가 직접 타온 차를 마신 임천우는 더 이상 머물지 않고 조현수의 차를 얻어 타고 주영병원을 떠나려 했다.
그러는 임천우를 조현수가 깍듯이 차에 모셨다.
이 장면은 행인들을 어안이 벙벙하게 만들었다.
부광시 중책을 떠맡고 있는 어엿한 대부가 새파란 놈한테 이렇게까지 깍듯하게 대하다니.
이 젊은이, 대체 어떤 사람이지?
윤시아와 헤어진 백서연이 마침 주영병원 앞을 지나다가 이 장면을 목격했다.
“이...... 이럴 리가?”
“산에서 온 가난뱅이라며?”
“조 시장이 왜 임천우를 깍듯하게 대하는 거지?”
큰 충격을 받은 백서연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조 시장의 차가 거리 끝으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다가,
한참 후에야 천천히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주영병원에 들어서자마자 물었다. “안녕하세요! 방금 그 남자, 누구예요?”
정산하려고 자리에 앉던 주경미는 누군가가 건넨 말에 고개를 들어 백서연을 한 번 훑어보다가 솔직하게 대답했다. “닥터 오라버니요?”
“닥터 오라버니, 예전엔 군인이었고, 조 시장님은 과거에 오라버니의 부사관이셨대요!”
“과...... 과거의 부사관이요......”
백서연은 하마터면 땅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다.
시아가 임천우 정보를 다 캤다고 하지 않았던가?
임천우는 분명 척박한 산골 출신의 가난뱅이라고 했는데, 갑자기 조 시장의 상급으로 탈바꿈하다니?
아니!
그럴 리가 없다!
백서연은 이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부들부들 떨리는 마음으로 휴대폰을 꺼낸 백서연은 윤시아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