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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장 분노

김연아는 킬러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손태호만 자극했다. “너도 내가 무서워? 무서우면 죽이기라도 해. 안 그러면 내가 널 죽일 테니까.” “그럴 기회 있을까요?” 손태호는 어두운 표정으로 진이수에게 말했다. “뭐해? 빨리 움직이지 않고!” 여섯 명의 남자는 동시에 몰려갔다. 그러나 이때 진이수의 무전기가 울렸다. “택시 한 대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응?” 진이수는 물론 남자들과 손태호도 멈춰 섰다. 진이수는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자세히 말해 봐.” “택시는 떠났습니다. 20살 정도 되어 보이는 남자가 로비에 들어가는 중입니다.” “도련님, 이걸 어떡하죠?” 진이수는 손태호에게 물었다. 손태호는 무전기를 빼앗아 들고 말했다. “여기는 뭐 하러 왔대? 쫓아내 버려.” “네, 도련님.” 다행히 밖에는 망보는 사람이 있었다. 손태호는 언짢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며 계속하라는 뜻을 밝혔다. 같은 시각, 강준은 로비에 들어섰다. 기분은 어쩐지 이상했다. 주차장에 차는 엄청 많은 데 로비에 직원조차 없었던 것이다. 잠시 후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어딘가에서 갑자기 나타나 물었다. “누굴 찾으시죠?” 생김새와 달리 꽤 친절한 표정과 말투였다. 강준은 눈살을 찌푸렸다. 모든 직원을 만나본 그에게 낯선 얼굴이었다. 그는 기억력이 아주 좋았다. 이런 것까지 착각할 일은 없었다. “저는 육준혁 씨의 동창입니다. 이곳에 면접 보러 왔는데, 혹시 지금 가능할까요?” 강준은 진지하게 말했다. “아, 준혁이?” 남자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준혁이는 시내에 갔어요. 내일이 되어야 돌아오니까 전화라도 해보세요.” “감사합니다. 그럼 내일 다시 올게요.” 강준의 연기는 아주 자연스러웠다. 단순해 보이는 생김새와 수줍은 말투 덕분에 남자도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했다. 남자는 강준의 교활함을 얕봤다. 육준혁이 이곳과 전혀 상관없다는 것도 몰랐다. 강준은 몸을 돌리는 순간 눈을 찌푸린 채 남자를 살펴봤다. 남자의 허리춤에는 비수가 있었다. 그는 즉시 김연아에게 무슨 일이 생겼음을 직감했다. 그는 앞으로 걷다가 안내 테스크에 펜이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펜은 소리 없이 서서히 허공에 떴다. 남자는 강준에게만 신경 쓰느라 자신을 향해 날아오른 펜을 발견하지 못했다. 그 펜이 남자의 뒤에 갔을 때 강준은 갑자기 몸을 돌렸다. 화들짝 놀란 남자는 허리춤의 비수를 잡으려고 했다. “참, 민머리 형님도 안 계세요?” “무슨 민머리...” 푹! 남자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빠르게 회전하던 펜이 남자가 비수를 뽑으려고 한 오른쪽 손목을 찔렀다. “악!” 남자는 아픈 듯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강준은 폭발적인 속도로 그를 향해 달려갔다. 무릎으로 턱을 치자 뽀각 소리가 들려왔다. 이빨이 산산이 부서지는 소리였다. 남자의 몸은 통제받지 않고 뒤로 넘어갔다. 그다음에도 강준은 힘을 풀지 않았다. 그는 훌쩍 뛰어올랐다가 중력을 이용해 남자의 가슴팍에 떨어졌다. 남자의 가슴에서는 갈비뼈 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남자는 코피를 줄줄 흘리며 즉시 눈을 뒤집었다. 강준은 경비원이다. 하지만 특출 난 능력은 없었다. 심지어 싸움질도 몇 번 해보지 못했다. 조금 전의 실력은 급한 마음에 갑자기 나온 것이었다. 남자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인하지 못한 그는 손이 다 덜덜 떨렸다. 조금 전 자신이 한 일이 놀란 것도 있었다. 그는 펜을 그토록 쉽게 조종할 수 있을 줄 몰랐다. 심지어 눈을 보지 않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통제가 가능했다. 의외의 발견이다. 심호흡으로 겨우 진정한 그는 남자의 허리춤에서 비수를 빼냈다. 비수는 검은색 빛을 내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전쟁에도 사용하는 밀도 높은 군용 비수였다. 중간에는 피를 빼는 틈새도 있었다. 이 비수에 찔린다면 무조건 과다 출혈로 죽게 될 것이다.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기에 이런 무기를 지니고 다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일단 누나부터 구해야겠어.” 그는 비수를 허리춤에 차고 빠르게 데이지룸을 향해 달려갔다. 리조트는 아주 고요했다. 그는 가는 길 내내 투시로 주변을 살펴봤다. 그런데도 사람은 한 명도 보지 못했다. 그는 금방 데이지룸 밖에 도착했다. 방 안의 목소리는 밖에서도 들렸다. “그래, 찢어야지. 찢어야 재밌어.” 참 얄미운 목소리였다. 강준은 출입문을 빤히 바라보며 투시를 상용했다. 룸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본 순간 분노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김연아는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 여섯 명의 남자는 한창 그녀의 바지를 찢는 중이었다. 상의는 이미 완전히 벗겨진 상태였다. 지금의 김연아에게 여유로움은 전혀 보아낼 수 없었다. 대신한 건 막대한 수치심이었다. 곁에 장발의 남자는 핸드폰을 든 채 빙빙 돌며 동영상을 찍고 있었다. 분노가 치밀어 오른 강준은 눈이 충혈됐다. 그는 이성적으로 생각할 새도 없이 발로 문을 차버렸다. 쾅 소리와 함께 문은 부서져 버렸다. 분노의 힘이 상상 이상이었다. 강준도 이런 힘을 낸 적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문이 열린 순간 김연아의 주변에 있던 남자들이 똑같은 비수를 꺼내 들었다. 일치한 동작을 봐서 훈련을 받은 적 있는 사람들 같았다. 그들은 장발 남자의 앞으로 가서 공격 태세를 보였다. 장발 남자를 보호하려는 모양이었다. “준아, 네가 어떻게 왔어? 빨리 가! 빨리 도망가!” 김연아가 큰 소리로 외쳤다. 강준이 무조건 위험에 처할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급한 마음에 그녀는 힘껏 버둥거렸다. 강준처럼 단순한 사람은 그녀의 사적인 원한에 끌어들여서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죽든 말든 상관없었다. 억울한 희생자가 생기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하하, 손님을 그냥 보내는 건 도리가 아니지.” 장발남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이수야, 저 녀석을 붙잡아서 묶어 놔. 일단 죽이지는 말고 감상이라도 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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