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장 손씨 가문 손태호
새벽 4시, 강준은 드디어 퇴근하고 육준혁의 차에 올라탔다.
육준혁도 다른 지역에서 왔다. 강성에서 지낸 시간이 하도 오라니 벌써 집과 차가 있었다. 차는 그다지 좋은 브랜드가 아니었지만 그래도 2000만 원 정도는 했다.
육준혁은 강준을 데리고 야장에 갔다. 새벽 4시에도 영업하는 식당은 야장밖에 없었다. 야식을 먹기에 딱 적합했다.
“내가 왜 그 여자한테서 멀어지라고 하는지 궁금하지 않아?”
두 사람은 꽤 친해졌다. 그래서 할 말이 있으면 마음에 담아만 두지 않았다.
“형이 저를 해칠 일도 없고, 멀어지라고 하면 거리를 두는 거죠. 저도 그 정도 머리는 있어요.”
“하하, 그 여자가 널 어떻게 해칠지는 궁금하지 않고?”
육준혁은 음식을 먹으면서 말했다.
“어떻게 해칠 건데요?”
강준은 드디어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육준혁이 웃으며 대답했다.
“스턴의 서건후 말이야. 어딘가 남다른 것 같지 않았어?”
“당연히 남다르죠. 돈 있지, 차 있지, 주변에 여자도 끊이지 않지. 매일 같이 인생을 즐기기만 하는 사람인데 일반인이랑 같을 리가 없죠.”
“그런 거 말고, 다른 것 좀 생각해 봐. 너희랑 다른 게 또 뭐 있을 것 같아?”
“다른 거요?”
강준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다크서클이 짙어요. 매일 술을 마셔서 그런지 피곤해 보이기도 했어요. 뭐, 여자 때문인 것 같기도 하고요.”
“하하하.”
강준의 말을 들은 육준혁은 한참 웃다가 말했다.
“그런 것도 있겠지만,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서건후가 뽑혔다는 거야.”
“뽑혀요? 그게 무슨 뜻이에요?”
강준은 사람이 뽑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몰랐다. 육준혁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서건후가 건드린 여자, 그러니까 발을 다친 그 여자 말이야. 그 여자한테 뽑혔어.”
“뭐가 뽑혀요? 저는 못 알아듣겠어요.”
강준은 육준혁이 하는 말을 하나도 못 알아들었다.
“채음보양, 혹은 채양보음이라는 말 들어봤지? 그런 의미의 뽑혔다야.”
“헉. 설마 형...”
놀란 강준은 차마 말을 마저 하지 못했다. 육준혁은 손을 휘휘 저으면서 말했다.
“자세한 건 알 필요 없고, 그냥 그 여자를 조심하면 돼. 내 추측이 맞는다면 넌 이미 그 여자의 사냥감이 됐거든.”
육준혁은 진지하게 분석했다.
“도와주겠다는 사람 전부 거절하고 널 지명하는 게 이상했어. 다음에 다시 만나면 멀리 떨어져. 그 여자가 먼저 들러붙으면 나한테 연락하고.”
“네, 알겠어요.”
강준은 아직도 어리둥절했다. 육준혁의 말이 이야기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육준혁이 계속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았기에 따져 묻지 않았다.
두 사람이 야식을 먹는 사이 하늘이 완전히 밝아졌다. 육준혁은 강준을 집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지만, 강준이 걷고 싶다는 핑계로 거절했다.
육준혁이 먼저 차를 타고 떠난 다음 강준은 택시를 잡았다. 그는 휠튼 리조트에 가서 김연아를 보고 싶었다. 하루 사이 그녀에게 무슨 일은 없었는지 걱정됐던 것이다.
...
같은 시각, 강준이 모르는 휠튼 리조트에는 한 무리의 사람이 와 있었다. 등에 타투로 가득한 김연아는 양손이 포박된 채 데이지룸의 천장에 매달렸다. 아래에는 서서히 죽어가는 직원 두 명이 쓰러져 있었다.
앞에는 젊은 남자와 장발의 남자가 있었다. 그들은 음악을 감상하며 와인잔을 흔들었다. 시선은 김연아의 몸매를 훑고 지나갔다.
김연아는 수영복 차림이 아니었다. 그녀는 가죽 바지에 검은색 나시를 입었다. 그대로 공중에 포박된 몸은 약간씩 흔들리고 있었다.
“우리 형님 너무 안쓰러워요.”
젊은 남자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이런 여자도 누리지 못하다니요. 저승에서 땅을 치고 계실 거예요. 근데 듣기로는 남편 죽일 재수 없는 팔자라고 하던데, 그래서 사람들이 절대 건드리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살짝 께름칙해요. 근데 여기 그 따위 미신 하나도 신경 안 쓰는 사람이 더 많아요.”
“맞습니다!”
젊은 남자는 주변을 빙 눌러봤다. 검은색 외투를 걸친 6명의 남자는 노골적인 눈빛을 하고 있었다. 상대가 김연아라면 미신 따위 망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듣는 말에 의하면 김연아는 화이트 타이거였다. 여자 중에서도 최고로 꼽힌다는 말이다. 물론 남편 죽이는 재수 없는 팔자인 것도 사실이다.
4년 전, 강성 손씨 가문의 장손이 그녀와 결혼했었다. 소식이 전국적으로 퍼진 성대한 결혼식이었다. 아직도 강성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손씨 가문의 차량은 몇 블록이나 꽉 채웠다. 교통경찰이 출동해야 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토록 성대한 결혼식 날 밤, 손씨 가문의 장손이 침대 위에서 죽어버렸다.
어떤 사람은 뇌출혈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과로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심장마비라고 했다. 하지만 김연아의 팔자 때문에 죽었다는 말이 대다수였다.
그래도 화이트 타이거가 매혹적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남자 중 그녀에 대해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토록 매혹적인 여자와 하룻밤을 보낼 수 있다면 귀신이 되어도 상관없었다.
그렇다 보니 젊은 남자가 지시하기도 전에 뒤에서 기다리고 있는 남자들은 호흡이 거칠어졌다. 젊은 남자와 달리 그들은 두려워할 것이 없었다. 원래도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킬러 인생이지 않은가?
“손태호, 넌 그 정도 담도 없어? 왜, 직접 나서지 않고.”
김연아는 공중에 매달려서도 전혀 겁먹지 않았다. 심지어 여유로운 표정으로 장발의 남자는 도발하기까지 했다.
“신혼 첫날밤에 죽어버렸으니, 네 형도 참 재수 없지. 내가 아직 처녀라고 하면 믿어줄 거야? 못 믿겠으면 직접 확인해도 되고.”
손태호는 담담하게 웃었다.
“저를 자극하는 거예요?”
“쫄보 새끼.”
손태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형수님, 저는 기회를 드리는 거예요. 저희한테 자료를 넘겨주고, 저희 것이었던 재부도 넘겨준다면 살아서 떠날 수 있도록 도와줄게요.”
“너희 것이었던 재력? 하, 너 진짜 뻔뻔하다. 그거 다 내 돈이야. 너희랑은 상관없어. 우리는 법에 따라 재산 분할 했다? 너희 건 하나도 빠짐없이 다 가져갔잖아. 나머지는 내가 번 거야.”
“흥.”
손태호는 콧방귀를 뀌었다.
“제 형이 남겨준 돈이 없었다면 그렇게까지 벌지 못했겠죠. 그러므로 저희 손씨 가문의 것으로 생각해요.”
“하하, 어이없어. 이렇게 해서라도 과부 돈을 빼앗아 가고 싶었냐?”
“입 아프게 말하지 말고 대답이나 해요.”
손태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인내심이 곧 바닥 날 표정이었다.
“나랑 자면 알려줄게. 알고 싶으면 네가 직접 움직여서 간절한 정도를 보여줘야지.”
“제가 그 말을 믿을 것 같아요? 그리고 형수님같이 더러운 여자는 제 눈에 차지도 않아요.”
손태호는 핸드폰을 꺼내며 말했다.
“이수야, 나머지는 너한테 맡길게. 사진 많이 찍어. 시간은 많으니까 급해하지 말고.”
“걱정하지 마세요, 도련님.”
뒤에서 남자들은 탐욕스러운 웃음소리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