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장 살인
손태호는 취향이 아주 악질이었다. 김연아가 신경 쓰는 사람이 온 것을 보고 그는 오히려 신이 나서 진이수에게 지시했다. 강준이 보는 앞에서 김연아를 모욕할 생각이었다.
김연아도 손태호의 뜻을 알았다. 전에 한 번도 약한 소리를 한 적 없는 그녀는 이제야 울부짖기 시작했다.
“강준, 너 빨리 나가! 날 상관하지 말고 빨리 나가라고!”
그러나 강준은 그녀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그는 비수를 꽉 잡은 채 연신 심호흡했다. 당황하면 일을 더 그르치게 될 것이기에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애썼다.
직원들의 시체가 실수의 결과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는 한낱 경비원일 뿐이다. 훈련 한 번 제대로 받은 적 없는 경비원이기에 최대한 조심해야 했다.
다행히도 그에게는 초능력이 있었다. 초능력은 그의 조커 카드였다.
그는 데이지룸을 쓱 둘러봤다. 그러다가 과일과 함께 놓인 과일칼을 발견하고 잠깐 멈칫하다가 기쁜 기색을 보였다.
남자에게서 빼앗은 비수는 너무 무거웠다. 그래서 쉽게 들어 올릴 수 없었다. 그러나 과일칼은 가능했다. 자그마한 것이 소리 없이 사람을 죽이기에 딱 맞았다.
진이수는 강준의 앞으로 걸어갔다. 그는 강준이 들고 있는 비수를 보고 피식 웃었다.
“이거 전에 만져 본 적은 있어? 내가 가르쳐 줄까?”
그는 허리를 빳빳하게 쳐들고 있었다. 강준의 손에 들린 비수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강준은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그러나 남자들의 경멸 서린 눈빛을 보고는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 비수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더 이상 가까이 오지 마. 나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가만히 있지 않으면 어떡할지 궁금한데?”
진이수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앞으로 다가갔다. 강준은 조금만 더 뒷걸음질 치면 룸 밖으로 나가게 된다.
“하하하.”
손태호 등은 웃음을 터뜨렸다. 당당하게 쳐들어오던 강준이 겁먹은 모습에 웃음이 나왔던 것이다.
그들은 참지 못하고 비웃었다. 손태호는 언성까지 높이며 말했다.
“왜 애를 괴롭히고 그래? 빨리 와서 옷이나 마저 찢어. 영상은 찍어야지, 안 그래?”
“네!”
손태호의 지시를 듣고 한 남자가 김연아의 곁으로 돌아갔다. 그는 너덜너덜해진 바지를 잡고 아래로 당기려고 했다.
“죽여버릴 거야!”
자극받은 강준은 살기 서린 표정으로 비수를 휘둘렀다. 그 순간 진이수도 비수를 뽑아 들고 맞섰다.
비수와 비수가 마주치면서 무거운 울림이 전해졌다. 강준은 손이 저릿하며 힘이 풀리더니 비수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진이수의 힘이 우세에 있었다. 진이수는 강준이 정신 차리기도 전에 비수를 들고 그의 오른쪽 얼굴을 후려쳤다.
만약 그대로 맞았다면 얼굴 뼈가 부러졌을 것이다. 다행히 빠르게 피한 덕분에 강준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는 머리를 뒤로 피하며 발차기했다.
진이수는 그의 공격을 예상한 듯했다. 그러나 피하지 않고 가슴을 내밀었다.
퍽!
강준의 발은 진이수의 가슴에 부딪혔다. 그의 가슴팍은 강철같이 단단했다. 강준의 발차기는 전혀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그는 가볍게 강준의 발목을 잡았다. 그리고 차갑게 웃으며 비수를 들고 강준의 종아리를 노렸다.
위기의 순간 강준의 눈빛은 다시 과일칼로 향했다. 과일칼은 훌쩍 날아오르더니 번개같이 빠른 속도로 인파를 뚫었다.
푹!
과일칼은 진이수의 뒤통수로 들어와 머리를 관통했다. 비수를 잡고 들어 올린 팔은 허공에 멈춘 채 움직이지 않았다.
김연아는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과일칼은 그녀와 멀지 않은 곳에 멈춰 있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과일칼을 등지고 있던 남자들은 진이수가 어떻게 공격당했는지 잘 몰랐다.
놀란 김연아는 입을 떡 벌렸다. 자그마한 입에 계란 하나 채워 넣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녀는 완전히 넋이 나갔다.
손태호 등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킬러들은 금방 정신 차리고 손태호를 중심으로 빙 둘러섰다. 과일칼은 진이수의 뒤통수를 통해 관통했기에 뒤에 보이지 않는 적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때 진이수가 뒤로 쓰러졌다. 강준은 그의 몸을 들춰서 뒤통수에 꽂힌 과일칼을 뽑아냈다.
푹!
칼날에 따라 피가 뿜어져 나왔다. 강준은 구역질을 참으며 과일칼을 던졌다.
이번에 칼날은 정확히 김연아를 포박하고 있는 밧줄을 끊어냈다. 아슬아슬하게 김연아의 손목을 스쳐 지나가기는 했지만 정확히 밧줄만 끊어냈다. 김연아의 피부는 아주 멀쩡했다.
타악!
김연아는 바닥에 떨어졌다. 강준은 사람들을 뚫고 그녀의 곁으로 달려갔다.
김연아의 모습은 아주 초라했다. 상의는 벗겨져 있었고 바지도 너덜너덜한 상태였다. 그러나 그녀는 부끄러움도 잊은 듯 놀란 표정으로 강준을 바라봤다.
강준도 그녀의 알몸에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그는 그저 빠르게 옷을 벗어 그녀에게 걸쳐 주었다.
“괜찮아요. 이제 다 괜찮아질 거예요.”
강준은 천천히 김연아의 등을 토닥였다. 마치 어린아이를 위로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 순간 강준은 가장 신사다운 모습을 보여줬다. 남자는 원래 이래야 한다. 이게 정상적인 남자의 품격이다. 여러 명이 우르르 한 여자를 괴롭히는 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그는 마냥 지켜볼 수 없었다.
반대로 김연아는 가슴이 사르르 녹았다. 살면서 이토록 마음이 놓은 적은 처음이었다. 시간이 그냥 이 순간에 멈춰버렸으면 하는 기분도 들었다.
그녀는 항상 강한 척만 했다. 모든 일을 혼자서 해결하려고 했다. 그러나 혼자서 얼마나 속앓이를 했는지는 그녀만 알았다. 그녀도 남자의 보호가 필요한 여자였다.
강준은 아주 남자다운 사람이었다. 다른 남자처럼 술 냄새와 담배 냄새를 풍기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깨끗한 냄새가 더욱 끌렸다.
“하, 신비한 척하기는. 빨리 저 자식들을 죽여!”
손태호는 짜증이 났다. 과일칼이 어떻게 날아갔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진이수가 쓰러진 것을 보고 그는 강준과 김연아를 죽이는 것으로 목표를 바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