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육준혁
밤이 되자 강준은 집에 가서 경비원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스턴 클럽에 출근했다. 결국 점심은 거르게 되었고 저녁도 라면으로 대충 때웠다.
스턴 클럽에는 10명의 경비원이 있는데, 지금은 20~30년 전에 비하면 경비원의 정의 자체가 달랐다.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면 나이트클럽의 경비원은 물관리가 위주였다. 패싸움은 물론이고 심지어 몰래 불법 행위를 저지르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반면 요즘 들어서는 단지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일 뿐, 가끔 술에 취한 손님이 난동을 부릴 때만 개입하는 편이다.
사실상 대부분 대형 클럽은 외주 업체를 찾아 보안 업무를 맡겼기에 대도시에서 경비 업체나 관리 사무소 업체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강준은 경비팀에서 딱히 대접받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바로 사촌 형이었다.
사촌 형이 여자 때문에 경비팀장과 싸운 적이 있고 난 이후로 둘은 원수지간이 되었다.
결국 경비팀장의 눈 밖에 나게 되면서 다른 팀원들도 시도 때도 없이 그에게 시비를 걸었다.
큰고모네 아들인 사촌 형은 10대에 이미 강성시에 올라와 일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일류 바텐더로 자리 잡았다.
물론 강준은 일류 바텐더가 얼마나 대단한지 몰랐지만 사촌 형이 너무 자랑해서 귀에 쟁쟁했다.
밤 10시부터 새벽 2시는 클럽에서 가장 바쁜 시간대였다.
강준의 업무는 아주 간단했고, 바로 백스테이지와 클럽 공연장 사이의 통로를 지키는 것이다.
사실 통로를 지키는 건 전혀 힘들지 않았고 가끔 공연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경비원에 비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면에서 제약이 많았다.
남들은 움직이면서 일했기에 여기저기 구경하러 다니거나 심지어 야외 주차장을 지키는 경비원은 한가할 정도였다.
그러나 본인만 홀로 문을 지키면서 손님이 몰래 들어가지 못하도록 해야만 했다.
클럽은 매일 다른 공연이 있고, 예를 들면 마술사를 초대하거나 한물이 간 연예인을 불러 노래시키고, 가끔은 폴댄스 팀을 섭외하기도 했다.
다들 백스테이지에서 옷을 갈아입고 공연 시간이 다가오면 무대에 올랐다가 공연이 끝나면 퇴장했다.
강준은 매일 밤 백스테이지 문 앞을 지키면서 다양한 사람을 흥미진진하게 관찰했다.
혼자 술 마시러 오는 남녀도 있었지만, 삼삼오오 모여서 소비하러 찾아온 단체 손님도 적지 않았다.
그리고 나머지는 재산을 탕진하는 부류에 속했다. 왜냐하면 200만 원이 넘는 로열 살루트를 주문한 다음 마시기는커녕 여자에게 끼얹는 손님을 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심지어 한 병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듯 여러 병이나 시켰다.
이런 게 바로 패가망신의 표본이지 않은가?
대도시는 부자도 많지만 가난한 사람이 훨씬 더 많았다.
그리고 술을 마시고 계산 안 하는 거지도 있는데 이럴 때 바로 경비원들이 등장할 타이밍이었다.
다만 두드려 패고 욕설을 퍼붓는 대신 매니저의 지시에 따라 먹튀 하는 손님을 주방에 데려가 설거지시키거나 허드렛일하게 했다. 그리고 본인이 소비한 금액만큼 몸으로 때우고 나서 다음 집으로 돌려보냈다.
가끔 혼자 술을 마시러 왔다가 취해서 정신을 잃는 여성도 있는데, 이런 경우는 대부분 끌려갔다.
클럽에는 ‘시체’만 노리는 하이에나들이 존재했다.
물론 진짜 시체는 아니었고 술에 취해 뻗은 여자들을 가리켰다. 상대방이 정신을 잃는 순간 잽싸게 나타나 여자를 부축해서 떠나거나 아예 둘러업고 사라지기도 했다.
그러고 나서는 곧장 방 잡으러 갔다.
강준은 클럽에 취하려고 오는 여자들은 방탕한 편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술이 고프다면 집 근처 편의점에서 파는 소주를 한 두 병만 마셔도 금세 취하지 않겠는가?
굳이 클럽까지 와서 술을 마신다는 자체가 의도가 불순하다고 여겼다.
마지막으로 외로움을 견디지 못한 싱글 남녀들이 원나잇을 기대하고 클럽을 찾는 경우가 많았다. 술이 들어가서 알딸딸한 기분에 눈이 맞으면 쿨하게 호텔로 자리를 옮겼다.
강준은 이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견문도 넓어졌다.
밤 11시, 강준이 흥미진진하게 어떤 여자 손님의 몸을 투시하고 있을 때 누군가 그의 어깨를 툭 쳤다.
“준아.”
“형, 깜짝 놀랐잖아요.”
강준은 남을 몰래 훔쳐보는 걸 들킨 줄 알고 화들짝 놀랐다.
마술사 육준혁은 클럽에 공연하러 자주 왔기에 문지기 강준과 금세 친해졌다.
또한 그가 강성시에 이사 온 이후로 몇 안 되는 친구 중 한 명이기도 했다.
“내가 뭐 갖고 왔게?”
육준혁은 마치 마술처럼 노란 종이봉투에 포장한 통닭을 꺼냈다.
“고마워요. 형! 내가 저녁 굶은 건 어떻게 알고.”
강준은 마침 출출했는지라 굳이 사양하지 않았다. 고작 라면으로 끼니를 때웠기에 금세 배가 꺼졌다.
그래서 통닭을 건네받자 허겁지겁 입에 쑤셔 넣기 바빴다.
육준혁이 흐뭇하게 웃었다.
“천천히 먹어. 물도 있으니까 마시고. 체할라.”
이내 생수 한 병을 따서 강준에게 건네주었다.
강준은 게 눈 감추듯 통닭을 먹어 치우고 뼈를 휴지통에 버리더니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맨날 형한테 얻어먹어서 미안하네.”
강준이 머쓱하게 말했다.
육준혁은 웃으면서 버럭 화를 냈다.
“저번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벌써 잊었어? 통닭 한 마리가 고작 얼마나 한다고.”
“이미 지나갔잖아요. 그게 뭔 대수라고.”
강준이 손을 휘휘 저었다.
약 한 달 전, 쉬는 날 자정이 다 되어가는데 육준혁이 갑자기 연락이 와서 몸이 아픈 탓에 강가에 꼼짝 못 하고 있으니 집으로 데려다줄 수 있냐고 물었다.
강준은 재빨리 강가로 찾아갔고, 비록 영문은 알 수 없지만 바닥에 가만히 누워 있는 육준혁을 발견했다. 만약 그가 조금이라도 더 늦게 갔다면 육준혁은 물살에 떠밀려 갔을 것이다.
그 이후로 육준혁과 강준의 사이는 한층 돈독해졌다.
육준혁도 은혜를 잊지 않고 스턴 클럽에 공연하러 올 때마다 강준에게 선물이나 음식을 챙겨주곤 했었다.
“참, 서 대표는 요즘 어디 아프신 데 없대?”
육준혁의 뜬금없는 질문에 강준은 어리둥절했다.
“그럼요. 저기서 술 마시고 계시네요.”
강준이 저 멀리에 있는 소파를 가리켰고, 스턴 클럽 대표 서건후는 좌우로 여자를 껴안은 채 남자 손님과 술대결을 펼쳤다.
매일같이 음주 가무를 즐기는 서건후의 삶은 감탄이 절로 나왔다.
육준혁이 눈을 가늘게 뜨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며칠 전에 서 대표랑 같이 있던 터틀넥 입은 예쁘장한 여자가 기억나? 혹시 요즘도 클럽 다녀?”
“누구? 대표님이 여자를 맨날 바꿔서 정확히 어떤 사람을 얘기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강준이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때 술 많이 마시고 발을 삐끗한 하이힐 신은 여자 있잖아. 네가 부축도 해줬는데.”
육준혁이 힌트를 보탰다.
“응? 형이 어떻게 알아요? 게다가 이 정도로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다니.”
강준이 의아한 목소리로 묻자 육준혁은 그를 흘겨보았다.
“그래서 본 적 있어? 없어?”
“아니요. 그때 부축해서 걸어가다가 형이 불러서 내가 대답하는 틈을 타서 인파 속으로 도망갔어요. 그 뒤로 다시 만난 적이 없는데 아마도 다른 사람이랑 떠나지 않았을까요?”
“그래. 나중에 마주치면 그 여자 꼭 멀리해.”
육준혁이 진지한 표정으로 경고했다.
“알았어요. 멀리할게요.”
강준은 어리둥절했지만 굳이 묻지 않았다. 이때, 클럽에 흥겨운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일단 옷부터 갈아입고 공연 준비해야겠어. 오늘 저녁에 한 타임밖에 없으니까 네가 퇴근할 때까지 기다릴게. 같이 야식 먹으러 가자.”
육준혁은 말을 마치고 나서 백스테이지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