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4장

만약 제일 아끼는 손자가 이혼한 여자를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면 충격받으실 것 같았다. 그러다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뭘 급해해? 연기 제대로 해야지." 부진성은 입꼬리를 올리고 웃었다. "아직 너 아니면 죽고 못 산다는 연기도 못했잖아, 우리 대왕마마가 앞으로 결혼 재촉하지 않게 해야지." 나는 어이가 없었다. "왜 꼭 그렇게 해야 해? 선배는 좋아하는 사람 없어?" "있지." "누군데?" "너." 나는 심장이 멎는 것 같았지만 바로 그가 날 놀리는 걸 알고는 화난 척하며 말했다. "선배!" 부진성은 웃으며 다정하게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걱정 마, 내가 알아서 해, 별일 없을 거야, 넌 연기에만 집중하면 돼." ... 부진성이 어쩌다 상하이에 왔었기에 집에 오래 있지 않았는데 바로 부민규한테 끌려 나갔다. '여자 친구'인 나도 당연히 따라갔다. 모임 장소는 강변의 비즈니스 타워였다. 점심 무렵의 햇살이 찬란하게 쏟아져 내렸고 통유리창 너머로 마치 반짝이는 보석 가루를 뿌려놓은 듯했다. 막 로비에 들어섰을 때, 부진성의 휴대폰이 울렸다. "너희 둘 먼저 올라가." 부진성은 내 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금방 따라갈게." 그러고는 고개를 살짝 돌려 부민규를 바라봤다. "형수 잘 챙겨." "알겠어, 형!" 부진성이 가는 걸 보아서야 나와 부민규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제일 위층에 있는 럭셔리 룸으로 올라갔다. "형수님, 도착했어요." 문이 열리는 순간, 이상한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눈앞에 화려하고도 방탕한 사치가 가득한 공간이 펼쳐져 있었는데 그곳은 현실에서 동떨어진 또 다른 세상 같았다. 부민규는 자연스럽게 친구들과 인사를 나누었지만 잊지 않고 다정하게 나한테 와인을 따라주었다. "감사해요, 저 술 못 마셔요..." 지금 임신해 있어서 알코올을 절대 접하면 안 되었다. "그럼 무슨 주스 마실래요?" 나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흔들었고, 날 챙기지 않아도 된다고 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옆에서 누군가 웃으며 말했다. "어머, 이 미인은 누구..." "뻔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