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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장

‘미안해.’ 박민혁이 드디어 정신을 차렸다. 그는 오늘 오지 말았어야 했다. 안그러면 김수지도 하루에도 이렇게 화를 많이 내지 않았을 것이다. ‘애당초 나는 당신하고 결혼하지 말았어야 했어.’ 그는 뜻밖에도 그들 사이의 모든 것을 부인했다. 김수지의 눈빛에 충격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무섭게 소리없이 손톱을 살에 찌르도록 힘을 주었다. ‘알았어요, 당신 그만 가세요.’ 아직 뱃속에 아기가 있는 엄마로서, 그녀는 지금 고함칠 권리도 없고, 더우기 감정적으로 흥분할 권리도 없다. 하지만 울 권리는 가질 수 있다. 그러니까, ‘제발 이 방에서 나가주세요.’ 그녀는 이불 속에 숨어서 아기와 함께 크게 울고 싶다. 만약 그가 이곳을 떠나면 김수지가 화를 내지 않고 잘 쉬게 할 수 있다면, 박민혁은 떠나고 싶다. ‘나 다시는 당신 앞에서 김수현이 안 꺼낼게.’ 김수지의 입장에서 보면 화내는 것은 당연하다. 그가 생각이 짧았다. 그날 밤, 박민혁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김수지는 잠시 울다가 이내 감정을 추슬렀다. 그녀는 남자가 필요없다. 특히 이미 그녀를 포기한 남자는 필요없다. 하지만 그녀는 아기를 포기할 수 없다. 그래서 그녀는 반드시 제때에 밥을 먹고 제때에 잠을 자야 한다. 다만 밤에 꿈이 많다. 박민혁이 청혼했을 때의 그 장면이 항상 꿈에 나타난다. 그날은 모든 것이 아름다웠다. ‘뭐 해.’ 안소희는 침대 머리맡에 서서 김수지의 치켜 올라간 입가를 보며 물었다. ‘무슨 좋은 꿈을 꿨어?’ 김수지는 그제서야 게슴츠레 눈을 떴다. ‘꿈?’ 그는 담담하게 웃었다. ‘좋은 꿈을 꿨어.’ 다만 현실은 가혹할 뿐이다. 이전에 두 사람이 아무리 아름다웠어도 결국에는 현실에 직면해야 한다. ‘아니야.’ 안소희는 늘 그녀의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차린다. ‘수지야, 어제 내가 간 다음 너한테 무슨 일이 있었니? 눈꼬리가 이상해. 그리고 표정도 이상하구.’ ‘아무것도 아니야.’ 김수지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얼버무렸다. ‘임신 때문인지 지금 피부가 불안정해. 씻고 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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