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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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회장 밖.
허지은은 부성훈의 손을 뿌리쳤다.
"무슨 일 있어?"
"허지은, 너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누가 오라고 했어?"
"내가 초대장 받았는데, 왜 못 와?"
"네가 이러면, 내가 어떻게 입방아에 오르내릴 줄 알아?"
부성훈의 분노에 가득 찼지만, 사람들이 오갔기에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허지은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왜 매번 나만 네 기분을 생각해 줘야 해?"
부성훈은 지금 진짜 급해했다. 성진 그룹의 대표가 오늘 현장에 온다는 소식이 있었기에, 자신의 명성에 먹칠할 수 없었다. 그러면 나중에 성진 그룹과 계약하려면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부성훈은 고민도 하지 않고 말했다.
"네가 빚진 거니까."
허지은은 심장이 아파 났다.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그녀가 부성훈과 만날 수 있었던 이유는, 부성훈이 자기 아빠의 죽음을 허지은의 탓이라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그가 자신을 이해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떨 때는 그를 위해서 참아주는 거였다.
하지만 부성훈의 말 한마디에 그녀의 모든 환상이 깨졌다.
허지은은 순간 반응하지 못했다.
"뭐라고?"
부성훈도 자신이 허지은이 제일 신경 쓰는 말을 했다는 걸 느끼고는 허지은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
"지은아, 날 도와준다고 생각해 줘, 연회에서 빠져주면 안 돼? 나중에 내가 사과할게, 난 그냥 명예를 지키려고 그래, 그러면 성진 그룹과 더 많이 계약할 수 있잖아, 안 그래?"
허지은이 눈도 깜빡이지 않고 말도 하지 않자 부성훈은 다급해졌다.
"허지은, 먼저 돌아가, 응?"
그는 거의 소리 지를뻔했다.
거봐, 달래서 안 되면 바로 화를 내네.
허지은은 심호흡하고는 그의 손을 밀어냈고 싸늘한 눈빛을 하고 있었다.
"허 대표님이 왜 가야 하죠? 성진에서 아직 허 대표님이랑 대회 후속 문제에 관해 얘기하고 싶은데요."
여자 목소리가 들리자 두 사람이 동시에 돌아보았다.
부성훈은 얼른 옷을 정리하고 환하게 웃었다.
"민서 씨."
그녀는 성진 그룹 대표의 친여동생, 주민서였다. 아주 깔끔하고 예쁘게 생겼고, 기질도 비교가 안 될 만큼 훌륭했다.
그러나 허지은이 주민서 옆에 섰어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허 대표님, 들어가서 얘기하시죠."
주민서가 초대했다.
부성훈은 주먹을 꽉 쥐고는 눈빛으로 허지은한테 경고했다.
"지은아, 집에 일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 대회 일은 내가 민서 씨랑 얘기할게."
주민서는 머리를 살짝 돌렸다.
"대회 일은 계속 허 대표님이 성진이랑 얘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쪽으로는 허 대님을 더 믿습니다."
주민서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느껴지자 부성훈은 심장이 덜컹했다.
분명 그를 배은망덕한 놈이라고 오해해서 태도가 변한 걸 거야!
허지은이 나타나서 이렇게 된 거야!
부성훈은 마음속으로 이미 이 일을 허지은 탓으로 돌렸다!
허지은은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주민서를 따라 연회장으로 들어갔다.
그녀가 자신을 무시하자 부성훈은 그저 허지은이 지금 간이 부었다고 생각했다.
제대로 혼내주지 않으면, 잘못한 줄 모를 거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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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회장에 들어가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성진 그룹 대표의 여동생인데, 잘 보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
주민서는 사교를 아주 잘했다. 몇 마디로 바로 그녀들과 얘기를 나누고는, 허지은을 데리고 옆으로 가서 앉았다.
사실 그녀도 오빠의 지시를 받고 온 거였다.
오빠가 왜인지 허지은을 콕 찍었고, 그녀한테 잘 챙겨주라고 했었다.
오빠가 해외에 있어서 당분간 돌아올 수 없기 때문이었다.
며칠 전 그 결혼식이, 정말 안현시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주민서는 부성훈이 정말 파렴치하다고 생각했다.
"허 대표님, 이번 가을 시즌 자수품을 대표님이 직접 하셔서, 상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편인에서 이미 내년 국제 대회 자격을 받았다는 걸, 성진에서 이미 소식을 들었어요."
이번 가을 시즌 작품을 편인에서 만들긴 하지만, 성진의 이름을 거는 거였고 나중에 수익은 편인에서 갖게 되는 거였다.
만약 이기면 내년에 두 회사가 같이 국제 대회에 참가하는 거였다.
"물론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아요."
허지은은 아직 그 자수품을 복구하고 있었다.
말하면서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오는 부성훈의 소개를 똑똑히 들었다.
"제 와이프 백아연입니다."
"쨍그랑."
허지은의 손에 있던 술잔이 바로 카펫에 떨어졌고 술이 바닥을 모두 적셨다.
주민서는 힐끗 보더니 같이 온 시중한테 얼른 정리하라고 했다.
"허 대표님, 어떤 일은 정말 안타깝게 생각되네요."
편인과 알게 된 지도 꽤 됐기에, 거의 대부분 그녀와 교섭했었다.
그녀는 허지은을 아주 마음에 들어 했고 존경했다.
하지만 결국 이런 꼴이 되었으니 정말 안타까웠다.
허지은은 서서히 미소를 지었다. 마음이 너무 차가워 감각이 없었고, 눈시울이 빨개지자 애써 참으려고 했지만 결국 참지 못했다.
다행히도 앞에는 주민서 혼자만 있었다.
주민서는 그녀한테 티슈를 건넬 뿐, 아무 말하지 않았다.
괜히 말했다가는, 허지은이 난감할 것이었다.
고개를 돌리자 그녀는 주민서가 건넨 명함을 보게 되었다.
"언젠간 우리가 동료가 됐으면 좋겠네요. 그전까지,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하세요, 제 번호는 있으니까, 이건 제 오빠 개인 번호입니다."
[성진 그룹- 주민호]
소문에 업계에서 성진 그룹 대표의 개인 연락처를 갖고 있는 사람이 없다고 했다.
그 대단한 분의 업무용 번호랑 개인 번호를 허지은이 다 갖게 되었다.
지난번에 강 비서가 주 대표님의 업무용 명함을 줬었다.
허지은은 망설이다가 결국 그 명함을 건네받았다.
"알겠어요."
그 후로도 주민서와 대회의 디테일한 부분에 관해 얘기를 나눴고, 허지은은 먼저 연회를 나와 회사로 갔다.
그녀는 야근하면서 자수품을 복구해야 했다.
저녁 10시.
누군가 갑자기 사무실 문을 열었다.
"허지은, 너 화해하기 싫은 거야? 꼭 나랑 맞서겠다는 거야?"
부성훈이 자수 테이블을 발로 찼는데, 하마터면 실이 끊어질 뻔했다.
그녀는 고개를 쳐들었다.
"부성훈, 너 지금 뭐 하고 있는지 알아?"
"너 경고하고 있는 거야!"
부성훈이 분노에 차서 노려보았다.
"내가 세운 회사에 힘 입어 내 머리 꼭대기에 기어오르려고, 그래!"
"내일부터 넌 더는 지사 대표가 아니야. 자수 부서에 가."
권리를 빼앗았을 뿐만 아니라, 아예 자수 부서로 보내려고 해?
허지은이 일어서 말했다.
"난 회사의 지분 25%를 갖고 있어, 날 해임하려고?"
부성훈은 멈칫했고 주먹에서 으드득 소리가 났다.
편인은 투자금을 모아 세운 거였기에 주주들이 많았다. 두 사람 말고도 다른 셋이 더 있었다.
세 사람은 모두 자수품 대회에서 수상한 대단한 수낭들이었고, 국내에서 이름 있는 작품도 많이 만들었다. 세 사람이 각각 16%, 18%, 10%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머지 31%는 부성훈 지분이었다.
허지은의 권력을 취소하려면 그 세 주주의 동의가 있어야 했다.
그녀가 편인 지사의 대표가 될 수 있었던 것도, 세 주주가 모두 동의했기 때문이었다.
"너... 아주 좋아!"
부성훈은 이를 바득바득 갈며 말했다.
"내가 너 자수 부서로 못 보내겠네, 그럼 너 부대표 해. 허지은, 난 말 안 듣는 여자는 딱 질색이야, 계속 이러면 우리 사이를 다시 생각해 봐야겠어."
그녀가 말을 안 들을수록, 부성훈은 그녀의 기를 꺾으려고 했다!
허지은은 그의 앞에서 반드시 굽신거려야 했다!
말을 다 한 부성훈은 허지은을 지긋이 바라보고는 문을 박차고 나갔다.
문이 닫혔고 허지은은 유리 벽에 기댔다.
분명 그가 그녀를 몰아세웠고, 그녀가 조금 반항했을 뿐인데, 그는 그녀가 편인에서의 권력을 빼앗아 가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