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말을 마친 그는 고남연의 손을 뿌리쳐 침대에 눌렀다.
“그래, 오늘 끝까지 안 하는 사람이 개다.”
끝내 두 사람은 서로 겨루다 윤북진은 그저 자신을 괴롭히려한다는 것을 알아챈 고남연은 윤북진이 방심한 사이 침대맡에 있던 장식을 들어 망설임없이 윤북진의 머리로 내려쳤다.
“고나연.”
분노에 차 고남연을 부른 윤북진은 손을 들어 이마를 닦았다. 온통 피가 묻어났다.
그때, 고남연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장식을 침대맡 서랍 위에 던지며 손을 털었다.
“난 경고했어.”
잘 거면 잠만 자지, 자신을 괴롭히려는 거면 꿈 깨는 게 좋았다.
그런 고남연의 태도에 윤북진은 할 말을 잃었다.
“형, 아주 대단해! 남연이한테 맞아서 병원에까지 다 오고.”
병원 안.
윤북진과 함께 치료하러 병원에 온 서경백은 윤북진의 머리에 둘둘 감긴 붕대에 배를 잡고 웃어댔다.
역시 고남연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얻어맞기만 했던 그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윤북진의 차가운 시선에 서경백은 곧바로 쉿하는 동작했지만, 올라가는 입꼬리는 숨길 수가 없었다.
차를 타고 윤북진을 바래다줄 때도 서경백은 윤북진을 볼 때마다 웃음을 흘렸다.
그때, 윤북진이 흘깃 쳐다보며 물었다.
“고남연은 질투를 하는 건가?”
서경백이 대답했다.
“뻔한 거 아니야? 안 그럼 왜 병원에 갈 정도로 때렸겠어. 형, 남연이 진짜 괜찮은 사람이야. 소중히 여겨.”
고남연은 서경백보다 한 살 어렸다. 그러나 윤북진과의 관계에 그녀의 호탕한 성격 때문에 서경백은 그녀의 앞에서는 고남연을 누나라고 불렀다.
물론 뒤에서는 여전히 이름을 불렀다.
윤북진은 소매를 정리하며 소매에 묻은 피를 탁탁 털었다. 갑자기 안색이 조금 밝아진 그는 입꼬리를 올려 미소까지 지었다.
“형, 남연이한테 어디 잘못 맞은 거 아니야? 이런 때인데 웃음이 나와? 이렇게 다쳐놓고 내일 밖에는 어떻게 나가고 어떻게 해명하게!”
윤북진은 별고 아니라고 생각했다.
뭐 해명할 게 뭐 있단 말인가, 아내한테 맞은 상처라고 하면 될 것을.
별장 안방.
윤북진이 다친 몸으로 떠난 뒤 고남연은 그가 돌아오길 기다리지 않았다.
그리고 이튿날, 나갈 준비를 마친 그녀는 곧바로 윤정 그룹으로 가 법률 대리인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러갔다.
접견실 안, 비서가 공손하게 말했다.
“고 변호사님, 대표님께서는 지금 회의 중이시라 오늘은 법률 대리인에 대한 일은 논의하지 않을 겁니다.”
비서가 윤북진에게 해오름 변호사 사무소에서 고 변호사가 왔다고 했을 때 윤북진은 만나지 않겠다고 했었다.
이렇게 때려놓고 법률 대리인 계약에 관해 이야기하러 오다니, 참 뻔뻔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법무팀의 책임자가 찾아와 고남연에게 설명했다.
“고 변호사님, 우리 그룹에서는 해오름 변호사 사무소는 고려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건 설명이 아니라 명백한 거절이었다.
그 뒤로 고남연은 윤정 그룹에 몇 번이고 찾아갔지만 윤북진은 여전히 그녀를 만나주지 않았고 법률 대리인에 대한 협상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일주일 뒤, 퇴근을 하던 고남연은 변호사 사무소에서 멀지 않은 곳에 검은색 마이바흐가 있는 것을 보고는 이내 걸음을 늦췄다.
하정준은 고남연이 나온 걸 보자 황급히 차에서 내려 뒷좌석 차 문을 열었다.
“사모님.”
걸음을 멈춘 고남연은 하정준에게 말했다.
“대표님께서 본가에서 식사를 하자고 하십니다.”
고남연은 차 뒷좌석에 앉은 윤북진을 흘깃 쳐다보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시간 없어요.”
그녀가 윤정 그룹에 몇 번이고 찾아갔을 땐 코빼기도 비추지 않더니 이제 와서 연기를 하자고 자신을 부른다면 당연히 협조할 리가 없었다!
차량 뒷좌석에 앉은 윤북진은 여전한 자세로 담담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보아하니 정말 엄마가 될 생각이 없나 보네.”
그 말에 고남연은 화가 나 양손을 가슴 위에 올린 뒤 시선을 깔아 그를 쳐다봤다.
“나한테 기회는 줬고?”
윤북진은 옷소매에 묻은 보이지 않는 먼지를 털며 말했다.
“날 넘어트리지 못한 건 네가 부족한 탓이지.”
이내 그는 고개를 들었다.
“고남연, 앞으로 한 달에 한 번 돌아갈게.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 없을지는 너에게 달렸어.”
한 달에 한 번?
만약 날짜가 맞지 않다면 와도 허탕이었다. 게다가 윤북진이 그렇게 말이 잘 통하는 사람도 아니니 얌전히 자줄 리가 만무했다.
그렇게 생각한 고남연이 입을 열었다.
“일주일에 한 번, 협상은 없어.”
고남연을 한참 동안 뚫어지게 쳐다보던 윤북진은 붉은 입꼬리를 올렸다.
“타.”
윤해천은 요즘 그를 단단히 감시하고 있었고 집안 어르신들도 적잖이 압박을 가하고 있었다. 아이는 중요하지 않지만, 그의 태도는 반드시 단정해야 했다.
윤북진이 대답하자 다음 순간, 고남연은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허리를 숙여 윤북진의 곁에 앉았다.
뒷좌석 문을 닫은 하정준은 한시름을 놓으며 앞으로 가서 탔다.
집에 가서 잠을 자는 것도 협상해야 한다니, 부부 사이가 이런 것도 참 대단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윤북진과 고남연은 본가로 들어갔고 윤씨 가문 할머니는 서둘러 나와 그들을 맞이했다.
“아이고, 우리 남연이 왔니? 어디 봐봐, 아이는?”
그렇게 말하며 할머니는 고남연의 배에 기대 기척을 들었다.
고남연은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할머니, 아직이에요.”
그러자 윤씨 가문 할머니의 표정이 곧바로 안 좋아지더니 허리를 세우며 말했다.
“남연아, 너랑 북진이 결혼한 지도 벌써 2년인데 왜 아직도 소식이 없어? 병원에는 가 봤어? 네가 문제인 거야, 북진이가 문제인 거야?”
고남연은 얌전하게 대답했다.
“전 검사 결과가 정상이었어요.”
그녀는 임신하고 싶어도 아쉽게도 자웅동체가 아니라 쉽지 않았다. 그게 아니었다면 진작에 대여섯은 안겨줬을지도 몰랐다.
그 말을 들은 할머니는 고개를 돌려 윤북진을 쳐다봤다.
“북진아, 그렇다는 건 네가 문제라는 거구나.”
“너 이 녀석, 허우대도 멀쩡한 것이 어떻게 아이 하나를 못 낳아? 아주 헛키웠어.”
“할머니, 저랑 남연이는 아직 젊어서 그런 생각 없어요.”
결혼한 지 벌써 2년이나 됐는데도 그럴 생각이 없다니, 이 손자는 자신을 속이는 게 분명했다.
할머니가 막 윤북진을 혼내려는데 윤해천이 위층에서 내려오며 말했다.
“어머니, 남연이랑 북진이 일은 둘이 알아서 할 테니까 괜한 간섭 마세요.”
그러더니 고개를 돌려 윤북진을 쳐다봤다.
“북진아, 할 얘기가 있으니 이리 와보거라.”
윤북진이 불려가자 고남연은 거실에서 두 어르신과 함께 수다를 떨며 TV를 봤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마치고 식사를 할 때 윤해천은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남연아, 최근 회사의 법률 대리인 계약 준비 중이라며?”
고남연은 고개를 들었다.
“네, 아버님.”
“내일 회사로 와서 계약서에 사인해.”
고남연이 졸업하던 해, 윤해천은 그녀를 제대로 키워보기 위해 윤정 그룹에 들어오라고 했었지만 고남연은 그 제안할 것으로 했었다.
윤해천의 말에 기분이 좋아진 고남연이 웃으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아버님.”
그동안 윤해천은 정말 그녀에게 아주 잘해줬었다. 늘 그녀를 위해줬고 도와줫었다.
만약 윤해천과의 나이차이가 너무 많고, 진해영이 그녀에게 잘해주지 않았다면 윤해천과 결혼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럼, 분명 윤북진보다는 훨씬 나았다.
옆에 있던 할머니는 아예 계속해서 윤북진에게 음식을 집어주고 있었다.
“북진아, 더 먹고 몸보신 좀 해.”
그 말에 고남연은 고개를 돌려봤다. 할머니가 윤북진에게 집어준 음식들은 하나같이 인삼에 양물에 같은 스태미나에 좋은 것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