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보아하니 그녀는 자신이 생각했던 것처럼 회사와 집만 오가는 게 아닌 모양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강정숙이 디저트와 음료를 가지고 들어왔을 때 윤북진은 고남연이 평소에 어떻게 지내는지 물어봤다.
“사모님께선 가끔 야근을 하시는데,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에요. 평소엔 꽤 일찍 돌아오세요.”
“오늘 이 시간인데 참 이르군요.”
평소엔 자주 오지 않는다고 투덜대더니 자신도 별반 다를 건 없었다.
윤북진은 자신이 주마다 한 번 돌아온다고 했으면 고남연이 얌전히 집에서 목이 빠져라 자신을 기다릴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의 생각과는 달랐다.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윤북진은 창가 앞을 떠나지 않았다.
그는 고남연이 오늘 몇 시에 돌아올지 지켜볼 예정이었다.
아우디 A4 안, 남자는 양손으로 핸들을 꽉 잡고 있었다. 고남연이 창가에 머리를 기대고 있자 그가 물었다.
“고 변호사, 괜찮아요?”
고남연은 미간을 찌푸린 채 손을 들어 가슴을 꾹 눌렀다.
“괜찮아요.”
오늘 밤 주인공은 그녀였기에 술을 꽤나 마신 상태였다.
아까 다들 노래방도 가자고 했지만 고남연은 도저히 걸을 수조차 없는 상황이라 주임은 동료에게 그녀를 바래다주라고 했다.
10여 분 뒤, 차는 고남연이 지시한 대로 로얄빌리지 별장으로 들어왔고 운전을 하던 남자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로얄 빌리지는 A시에서 가장 고급진 별장 구역이었다. 산과 강이 맞닿아 있어 주변 환경이 아름다워 A시의 사람들이 꿈에 그리는 곳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집값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아주 비쌌다.
그런데 고남연이 이런 로얄 빌리지에서 살 줄이야.
차가 고남연이 가리키는 1번지에 도착했을 때 남자는 화들짝 놀라고 말앗다.
그가 알기로 로얄 빌리지 1번지는 A시의 어느 큰 인물이 백모에 가까운 땅을 사들여 눈앞의 이 별장을 지었다.
“고 변호사님.”
고남연을 부른 남자가 막 그녀의 상태를 확인하려는데 별장의 대문이 천천히 열리더니 길쭉한 몸매의 남자가 짙은 회색의 잠옷을 입고 굳은 얼굴로 천천히 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 사람이 윤북진인 것을 알아본 남자는 핸들을 쥐고 잇는 손에 핏줄까지 툭 불거졌다.
“대표님.”
다음 순간, 그는 얼른 차에서 내려 인사를 건넸다.
그를 흘깃 쳐다본 윤북진은 이내 조수석으로 가 차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끼치는 술 냄새에 윤북진의 눈빛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고남연, 누가 밖에서 술 마시고 다 낼?”
조수석에 앉아 있던 고남연은 윤북진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며 깜짝 놀라 외쳤다.
“어! 돌아왔네!”
고남연은 두 사람의 약속을 잊은 게 분명했다.
인사를 하며 윤북진에게 미소를 지은 고남연은 다시 한번 벨트를 풀며 중얼거렸다.
“왜 안 풀리지!”
윤북진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몸을 숙여 안전벨트를 푼 뒤 차에서 안아 들었다.
양손을 반사적으로 윤북진의 목을 감싸면서도 고남연이 말했다.
“윤북진, 나 안 취했어. 이거 내려놔. 나 걸을 수 있어.”
그 말을 들은 윤북진을 그녀를 더 단단히 품에 안았다.
마치 자신의 것임을 주장이라도 하는 모습에 마당 대문 쪽에 서 있던 남자는 놀라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쩐지 고 변호사가 법률 대리인 자리를 따냈다 했더니 윤 대표와 이런 사이였을 줄이야.
그러다 윤북진의 방금 전 눈빛을 떠올린 남자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설마, 오해하는 건 아니겠지!
그리하여 서둘러 차에 들어간 그는 고남연의 가방을 챙겨 건네며 해명했다.
“대표님, 이건 변호사님 가방입니다.”
“대표님, 오늘 변호사 사무소에서 회식이 있었는데 제가 알코올에 알레르기가 있어서 술을 마시지 못하는 바람에 각 동료들 귀가를 담당하기로 했습니다.”
윤북진은 남자가 건네는 가방을 받아들며 담담하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입구 쪽, 남자는 두 사람이 들어가는 것을 배웅했다. 고남연이 윤북진에게 안겨 별장 안으로 들어갈 때까지도 그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고 변호사에게 저런 뒷배가 있었다니.
보아하니 그들 사무소의 급이 다시 올라갈 모양이었다.
고남연을 안고 위층 안방으로 돌아온 윤북진은 그녀를 소파에 내던진 뒤, 옆에 있는 의자를 끌어와 맞은편에 앉았다. 어디 심문이라도 할 기세였다.
“고남연, 그 남자 동료인 거 확실해? 널 혼자 바래다준 거야 아니면 다른 사람도 같이 바래다준 거야?”
방금 전의 그 남자는 깔끔하고 얌전하게 생긴 것이 고남연이 눈길을 줄 만한 타입이었다.
쿠션을 끌어안은 고남연은 몽롱한 눈으로 윤북진을 쳐다봤다.
“윤북진, 질투하는 거야?”
윤북진이 궁금해할수록 고남연은 알려주지 않으려 했다.
평소에 맨날 자신을 괴롭히며 각종 루머나 끌어들이는 주제에 협조해 주고 싶지 않았다.
고남연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윤북진이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이자 고남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단번에 그 담배를 빼앗았다.
“윤북진, 안아줘.”
오늘 술에 취한 그녀는 이 술기운을 빌려 하고 싶은 건 다 하려고 했다.
윤북진이 분명 화를 내며 자신을 밀칠 줄 알았지만 그는 되레 양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부드럽게 안더니 확하고 끌어안아 더 가까이 몸을 붙였다.
가슴 속에 일렁이던 짜증이 조금 가라앉아 윤북진은 양손으로 고남연의 턱을 들어 올려 그녀의 얼굴을 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찔려? 애교를 다 부리고.”
고남연은 그의 손을 뿌리치며 어깨에 고개를 파묻고 비비적댔다.
“윤북진, 나 졸려, 자고 싶어.”
고양이처럼 살랑대는 고남연에 윤북진은 마음이 약해졌다.
“고남연, 다음엔 안 봐줘.”
다음에 또 이렇게 술을 마시고 남자랑 같이 집에 온다면 무슨 사이든 아니든 그냥 넘어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윤북진의 경고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고남연은 나른하게 그의 어깨에 기대서는 부드러운 입술을 얼굴에 문질렀다.
“윤북진, 뽀뽀해 줘.”
윤북진은 그녀의 팔을 잡고 슬쩍 밀어냈다.
“적당히 해.”
“싫어?”
고남연은 몸을 바로 했다.
“그럼 다른 사람이랑 할래.”
말을 마친 그녀는 곧바로 윤북진의 위에서 일어났다.
윤북진의 표정이 굳어버리더니 그녀의 허리를 잡고 당겼고 그녀는 그대로 휘청이며 그의 품으로 쓰러졌ㄷ.
고남연의 이마가 그대로 그에게 부딪혔고 입술이 입술에 닿았다.
두 사람의 뜨거운 입술이 맞닿았다. 윤북진은 향기로웠지만 고남연에게는 술 냄새가 가득했다.
꿀꺽 침을 삼킨 고남연이 막 뒤로 물러서며 윤북진을 밀어내려는데 윤북진의 몸이 앞으로 기울더니 그대로 키스를 했다.
시선을 내리깐 고남연은 손을 들어 목을 안았다.
뜨거운 키스가 끝나고 고남연은 취한 눈빛으로 윤북진을 바라보며 물었다.
“윤북진, 나 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