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버려진 그녀

이서아는 순간 모든 흥미가 사라졌다. 한수호가 몇 번을 하든 어떻게 하든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가정 교육을 잘 받고 자라서 보수적이야. 혼전순결주의래.” ‘무슨 뜻이지? 인하 씨랑 결혼이라도 하려고?’ ... 이서아는 다시 스타 그룹으로 돌아와 한수호의 비서직을 맡았다. 하지만 비서 실장에서 일반 비서로 강등되었다. 이서아가 원래 앉던 자리는 이미 백인하의 자리가 되었고 그녀의 자리는 예전에 백인하가 조수였을 때 앉았던 그 자리였다. 문 옆의 구석진 자리라 눈에 잘 띄지도 않았고 오랜 시간 동안 사용하지 않아 책상 위에 잡동사니가 많이 쌓여 있었다. 이서아가 갑자기 돌아온 바람에 행정팀에서 아직 정리도 하지 못했다. 어색한 상황에 이서아는 행정팀 직원을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아 직접 정리하겠다고 했다. 사무실로 들어온 백인하가 그 모습을 보고 즉시 달려왔다. “서아 언니, 미안해요. 일찍 와서 정리하려고 했는데 길이 막혀서... 지금 바로 자리 정리해서 돌려드릴게요.” 이서아는 걸레를 짠 후 먼지를 닦았다. “사무용품은 모두 회사의 재산이지 내 것이 아니니까 돌려줄 필요도 없어요. 대표님께서 인하 씨를 거기에 앉으라고 했으니까 그냥 거기 앉아요.” 백인하는 입술을 깨물며 죄책감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그... 그럼 제가 정리 도와드릴게요.” 이서아는 백인하를 신경 쓰지 않고 불필요한 잡동사니를 창고로 옮겼다. 돌아올 때 손을 씻으려고 화장실에 들어가려는데 들어가기도 전에 두 명의 여자 동료가 메이크업을 하면서 떠는 수다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이 비서님 돌아오셨다던데 알고 있어요?” “네. 어제 대표님이랑 같이 진성에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오늘 출근하겠죠, 뭐.” “이럴 줄 알았어요. 대표님은 이 비서님을 포기하지 않았다니까요.” 백인하가 들어가려다가 발걸음을 멈췄다. “업무 능력은 이 비서님이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뛰어나지만 다른 건... 대표님한테는 백인하 씨가 있는 거 아니었어요?” 그러자 여자 동료가 급히 입을 막았다. “쉿! 마케팅팀에서 해고된 그 사람 잊었어요? 이런 말 함부로 해서는 안 돼요.” 하지만 다른 여자 동료는 개의치 않아 했다. “여기 지금 우리 둘만 있고 우리만 입 다물면 누가 안다고 그래요?” ‘일리 있네.’ 여자 동료도 자기 생각을 말했다. “내가 보기에도 대표님은 이 비서님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맞아요. 이 비서님은 대표님 밑에서 3년을 일했어요. 역경과 고난을 함께한 사랑은 영원히 넘을 수 없죠.” 화장을 마치고 나오던 두 여자 동료는 백인하를 보자마자 거의 혼비백산했다. 백인하는 자연스럽게 말을 걸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우리 얘기 못 들었겠지?’ 두 사람은 어색하게 웃었다. “안녕하세요. 일찍 나왔네요.” 그러고는 급히 떠났다. ... 점심시간에 이서아는 한수호와 고객을 만나러 갔는데 백인하도 함께 데리고 갔다. 듣건대 어떤 고객을 만나든지 한수호는 백인하를 훈련하기 위해 항상 동행했다고 했다. 아무래도 비서 실장 자리를 백인하에게 주려는 의도인 것 같았다. 이서아는 한수호의 옆에서 이번 식사 모임에 대해 소개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이 왔는지, 그리고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인지 설명했다. 백인하는 말도 붙이지 못하고 앞으로 몇 걸음 뛰어가서 차 문을 열었다. 그런데 차 문을 열기도 전에 쓰읍 하고 소리 냈다. 한수호의 시선이 백인하에게 향했다.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에요.” 두 손으로 차 문을 열다가 다친 듯했다. 그러자 한수호가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 “손이 왜?” 백인하가 팔꿈치를 문지르며 말했다. “괜찮아요. 무거운 물건을 옮기다가 살짝 삐끗했나 봐요.” 한수호의 얼굴에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 “무슨 무거운 물건을 옮겼는데?” 백인하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서아 언니 책상을 정리하는 사람이 없어서 제가 잡동사니를 창고로 옮기다가 그만 삐끗했어요. 괜찮을 줄 알았는데 살짝만 당겨도 아프네요.” “그 약한 팔다리로 왜 무거운 걸 들고 그래. 앞으로는 무리하지 마. 이런 일은 다른 사람이 할 거야.” 한수호는 이서아를 보며 말했다. “먼저 가서 고객 만나고 있어. 인하랑 병원에 좀 다녀올게.” 백인하는 서둘러 손을 흔들었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이렇게 번거롭게 할 필요 없어요. 대표님이 일을 끝낸 다음에 약국에 가서 약 사다 바르면 돼요.” 이서아는 차갑게 쳐다보며 덤덤하게 말했다. “먼 해외에서 오신 분이라 대표님이 자리에 있어야 합니다.” 한수호는 바로 결정을 바꾸었다. “그럼 네가 약국에 가서 약 좀 사와. 우리 먼저 가 있을게.” 백인하가 말했다. “부탁해요, 서아 언니.” 두 사람이 차에 올라타자 차는 이서아 앞을 휙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