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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장 행운

이서아는 답답한 마음을 애써 누르며 건너편 도로의 약국으로 가서 약을 샀다. 계산하던 그때 한수호의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서아야,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어? 왜 집에도 안 와?” 이서아가 웃으며 대답했다. “저 잘 지내고 있어요, 어머님. 한동안 일이 좀 많았어요. 요즘 바쁜 시기 지나서 주말에 아버님 어머님 뵈러 갈게요.” “바쁘지 않으면 그럼 주말에 말고 오늘 저녁에 수호랑 같이 밥 먹으러 와. 너희들이 좋아하는 요리 몇 가지 내가 직접 해줄게.” 이서아가 말했다. “알겠어요. 대표님께 말씀드릴게요.” 대표님이라는 소리에 김은실이 호통치듯 말했다. “왜 계속 대표님이라 부르는 거야? 멀게 느껴지게. 둘이 함께한 시간이 얼만데.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두 사람 결혼 얘기도 했었단 말이야.” 이서아는 발을 헛디딘 바람에 하마터면 약국 앞 계단에서 넘어질 뻔했다. ‘우리 결혼 얘기?’ 이서아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김은실이 갑자기 결혼 얘기를 꺼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사실 김은실은 한수호의 친엄마가 아니라 새엄마였다. 이서아는 한씨 가문에 알려지지 않은 비밀이 있다는 걸 대충 알고 있었다. 그 일 때문에 한수호는 가족과의 관계가 별로 좋지 않았고 거의 연락도 하지 않았다. 한 회장과 김은실은 그의 소식을 알고 싶을 때마다 이서아에게 물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연락 횟수가 많아지면서 이서아도 두 분이 자신을 좋아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 좋아함이 그녀의 업무 능력을 높이 산 것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미 결혼을 고려하는 단계까지 갔을 줄은 생각지 못했다. 이서아와 한수호의 결혼이라... 이서아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말했다. “어머님, 저 지금 고객 만나러 가야 해서요. 저녁에 대표... 수호 씨랑 저녁 먹으러 갈게요.” “그래. 알았어.” 이서아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한참 동안 멍하니 있다가 택시를 타고 약속 장소로 갔다. 대체 그 자리에 얼마나 오래 서 있었을까, 길가에 차 한 대가 멈춰 서서 그녀를 지켜보는 것조차 알지 못했다. 차 안의 남자는 카메라로 이서아의 사진을 찍었다. ... 약속 장소는 용산에서 가장 유명한 호텔이었고 용산의 특색 요리를 주문했다. 이서아는 테이블 밑으로 백인하에게 약을 건네준 후 한수호의 옆에 앉았다. 이 고객과 처음으로 협력할 때 이서아도 자리에 있었다. 고객은 이서아와 악수하며 영어로 말했다. “오랜만이에요, 이 비서님. 왜 이렇게 늦었어요? 전 또 비서님이 그만둔 줄 알고 찾았잖아요.” 이서아도 영어로 답했다. “오랜만이에요, 미스터 찰스. 문 앞까지 왔다가 대표님께서 준비하신 선물을 깜빡하고 차에 뒀지, 뭐예요. 다시 가져오느라 늦었어요. 죄송합니다.” 그러고는 선물을 두 손으로 건넸다. 선물을 본 고객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와! 저 이거 알아요. 드래곤보트. 인터넷에서 경기를 본 적이 있었는데 엄청 웅장하더라고요.” 한수호가 말했다. “미스터 찰스가 드래곤보트 경기에 관심이 있다면 내일 보여줄 수 있어요.” 그러자 고객이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일요?” 이서아가 설명했다. “대표님께서 드래곤보트 제조 공장에 투자했거든요. 이 모형이 바로 그 공장의 작품이에요. 공장 안에 진짜 드래곤보트도 있으니까 관심 있으시면 내일 직접 가서 보셔도 돼요.” 고객은 흔쾌히 동의하며 이서아의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대표님은 참 운도 좋으세요. 옆에 이런 비서가 있어서 얼마나 좋아요.” 한수호는 이서아를 힐끗거렸다. 이 여자가 다재다능한 건 사실이었다. 지금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3년 전에 영어도 제대로 할 줄 몰라 버벅거리는 촌뜨기였다는 걸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점심 식사를 마치고 고객을 배웅한 후 이서아는 화장실로 갔다. 돌아올 때 룸 문 앞에서 백인하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 전 너무 바보 같아요. 대표님께 아무것도 못 해드리고 아무런 도움도 되질 않잖아요. 서아 언니처럼 일을 잘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자 한수호가 피식 웃었다. “왜 이서아랑 비교해?” “그냥 모두가 서아 언니를 좋아하는 것 같아서요. 동료들도 그렇고 고객들도 그렇고요. 저도 대표님께 도움이 되고 싶어요.” “내 옆에 있는 것만 해도 도움이 돼. 대표의 기분을 좋게 하는 것도 능력이지.” 백인하는 울다가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 이서아는 침을 꿀꺽 삼키더니 룸으로 들어가지 않고 혼자 택시를 타고 회사로 돌아갔다. 한 시간이 거의 지나서야 한수호와 백인하가 돌아왔다. 백인하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즐거운 미소가 흘러넘쳤고 이서아를 보자마자 흠칫하다가 말했다. “서아 언니, 혼자 왔어요?” 그들은 조금 전에 셋이 함께 고객을 만나러 갔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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