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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장

난 끊임없이 눈빛으로 이유를 물었지만, 임세린은 아무 반응도 없었다. 지금 그녀는 한창 할머니와 즐겁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마치 예전에 우리의 감정이 깨지지 않았을 때처럼.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난 임세린이 나를 괴롭히기 위해 우리의 일을 할머니한테 털어놓을 줄 알았다. 하지만 결과는 그 정반대였다. 이 여자의 행동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난 옆에서 조용히 할머니와 임세린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내가 낄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1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드디어 할머니와 얘기 나눌 기회가 생겼다. “대체 왜 이러는 거야?” 난 할머니의 병실에서 나가자마자 임세린을 잡고 물었다. 임세린의 이런 연기가 아무런 목적이 없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아마도 나에 대한 경고인 것 같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왜 이러냐니? 할머니는 지금 내 할머니이기도 해. 강주환! 말 함부로 하지 마! 쓸데없이 내 성질 건드리지 말고.” 임세린은 나의 상처 받은 모습을 보고 만족이라도 한 듯, 냉소를 지으며 떠났다. 난 숨이 막혀 오는 것을 느꼈고 벽을 짚고 몸을 지탱했다. 난 더 이상 임세린의 변태적인 소유욕을 견딜 수가 없었다. 정말 나가 살고 싶었지만, 할머니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그 많은 치료비와 국내 탑급 의료진의 케어를 떠올리면 도무지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여 지금은 숨 막히지만, 예전에는 사랑이 가득했던 방에 갇혀 나가지 못할 줄 알았다. 하지만 영원히 다시 나타나지 않을 것 같았던 사람이 내 앞에 나타나는 순간, 모든 게 달라졌다. 그날은 평일이었다. 임세린은 집에 없었고, 난 늘 하던 대로 집에서 디자인 공부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다. 난 유강우가 물건을 두고 갔거나, 임세린이 할 말이 있어 온 줄 알았지만, 문을 열어 보니 나타난 사람은 중년 남자였다. “둘째 삼촌?!” 난 의아한 표정으로 둘째 삼촌을 바라보았고, 눈앞의 상황을 믿기 힘들었다. 난 둘째 삼촌의 이름을 몰랐고 삼촌이 그렇게 부르라고 해서 그렇게 부를 뿐이다. 하지만 내 아버지는 형제가 없었다. 하여 둘째 삼촌이 대체 누구이고 나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는 아직도 미스터리였다. 우리는 보슬비가 내리던 날에 처음 만났다. 시간을 대충 계산해 보면 임세린의 아버지가 금방 그 일을 당한 뒤였다. 그날, 둘째 삼촌은 갑자기 나를 찾아왔고, 자기와 함께 가면 임세린을 도와 재기하게 해준다고 했다. 그리고 난 둘째 삼촌의 말에 동의했다. 이상하게도 난 둘째 삼촌을 아무 이유도 없이 믿었고, 의심조차 하지 않은 채 따라갔다. 그렇게 난 외국으로 떠났고 임세린과 헤어졌다. 외국에서 지낸 몇 년 동안, 둘째 삼촌은 나한테 아주 잘해주셨다. 내 요구라면 뭐든 들어주셨지만, 절대 임세린과 연락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 하지만 몇 년 전, 난 국내로 돌아왔고, 임세린과 결혼하고 나서 둘째 삼촌은 내 세상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지금 다시 나타났다. “후회돼?” 둘째 삼촌은 깊은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말을 하는 한편, 마치 내 마음을 꿰뚫어 보려는 듯이 나를 지켜보았다. “그건...” 난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후회한다는 대답이나, 안 한다는 대답이나 모두 정확한 선택은 아닌 것 같았다. 둘째 삼촌은 내 난감함을 알아차리고, 카페로 가자고 하셨다. 그렇게 우리는 아무 말도 없이 오후 내내 조용히 앉아만 있었다. 그 순간, 내 마음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편안함을 느꼈다. 둘째 삼촌은 떠나기 전에 연락처가 적혀 있는 명함을 한 장 주셨다. “길은 네가 선택한 거야. 아무리 힘들어도 끝까지 버텨.” 둘째 삼촌은 그 말을 마치고, 바로 카페에서 나가셨고, 난 그 명함을 들고 한참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난 할머니가 외국 병원으로 이전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내가 그 소식을 알게 된 이유는 내 사인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난 둘째 삼촌이 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아무 망설임도 없이 바로 사인했다. 둘째 삼촌이 진심으로 고마웠다. 난 이제 자유다. 이제 아무도 할머니로 나를 협박할 수 없다. 난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전해오는 희열을 느꼈다. 난 밖에서 나가 살려고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날 밤, 임세린은 나를 벽에 밀어붙이고 말했다. “누가 할머니를 이전했어? 추재은이야?” “아니야.” 내 목소리는 큰 변함이 없었고, 아주 담담한 기쁨만 담겨 있었다. 임세린은 내 말을 믿지 않았고, 미친 듯이 내 가슴을 때렸다. 비록 아프지는 않지만, 횟수가 많아지니 숨이 가빠왔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자, 임세린은 지친 듯했고 내 품에 안겨 불쌍한 고양이처럼 쳐다보며 말했다. “주환아, 정말 내 곁에서 떠나고 싶어?” “맞아!” 내 대답은 아주 단호했고 추호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래, 알았어. 보내 줄게, 꺼져! 지금 당장!” 임세린은 쓰레기를 대하듯이 내 짐을 걷어찼고 고래고래 소리 질렀다. 난 임세린의 이런 모습이 조금 낯설었고 반응이 너무 과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캐리어를 끌고 밖을 향해 걸어갔다. 귓가에 들리는 임세린의 울음소리에는 무력감과 절망이 담겨 있는 듯했다. 난 자기도 모르게 가벼운 웃음을 터뜨렸다. 임세린이 나와의 이별 때문에 무력감을 느낄 리가 없었다. 아마 정이 깊은 사람인 척 연기하고 싶은 것 같았다. 난 청산 호수 쪽에 있는 집을 구했다. 사실 그곳은 외곽이었고 집은 다소 초라했지만, 월세가 아주 쌌다. 난 전에 조금 모은 돈으로 집세와 보증금을 내고 정식으로 입주했다. 그리고 입주한 첫날 밤, 잠은 너무나도 잘 잤다. 그렇게 며칠 편하게 보냈고, 이렇게 살다가 죽을 줄 알았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나타난 유강우 때문에 힘들게 만든 편안한 분위기가 깨졌다. “형, 왜 여기서 계세요? 누나가 형을 많이 보고 싶어 하세요, 한번 만나주시면 안 될까요?” 유강우의 얼굴에는 예전에 늘 짓던 건방과 무시는 사라지고 가장 잘하는 아부가 담긴 미소가 걸려 있었다. 하지만 그 미소의 상대는 지금 임세린이 아니라 나였다. 난 약간 의아했고 심지어 이해되지 않아 하고 있던 도면 작업을 멈췄다. “임세린이 날 보고 싶어 한다고요? 이건 또 무슨 수작이에요?” 난 조롱이 담긴 미소를 지으며 유강우를 바라보았고 대체 왜 날 찾아왔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난 이미 내 존재감을 충분히 낮추었고, 심지어 공기 중의 먼지와 다를 바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날 괴롭히러 왔으니 너무 어이없었다. 유강우는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한참 머뭇거리다 끝내 휴대폰을 켜고 인터넷 기사를 보여 주었다. 내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기사의 제목이었다: 디자인 업계 최고 기업 여회장이 정체불명의 남자와 함께 호텔 출입, 심지어 전에 만났던 남자가 아니다? 갑자기 유강우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난 요즘 바깥세상에 신경 쓰지 않아 전혀 몰랐다. 하지만 의외로 가장 먼저 마음이 급해 난 사람은 전 내연남 유강우였다. “그래서요?” 난 모르는 척했다. 이제 유강우의 의도를 알았으니 갖고 노는 건 아주 쉬운 일이었다. 난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웃었다. “형도 아시다시피, 형은 누나한테 특별한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사랑 받지못하는 쪽이 애인이에요.” 난 유강우의 말을 끊었고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 그 말에는 인생철학이 담겨 있는 듯했지만, 사실 난 비웃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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