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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장

난 이제 모든 걸 잃었다. 할머니와 부모님이 남긴 집 때문이 아니었다면, 진작에 자살했을지도 모른다. 난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뻔히 알면서 추재은처럼 좋은 여자한테 찝쩍 거리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심지어 가끔 욕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왜 나처럼 병신 같은 사람을 좋아하냐고. 하지만 병실에서 나와 얼마 가지도 못하고 의사가 내 앞을 막았다. “강주환 씨 맞죠? 지금 가시면 안 됩니다.” 의사의 표정을 보니 분명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했다, 그리고 난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 뇌암 말기이니 시간이 2개월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는 등의 말일 것이다. 이런 병은 보통 직접 환자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난 진작에 알았고 진작에 받아들였다. 난 의사한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몸을 돌려 떠나려 했다. “주환아, 나한테도 기회를 주면 안 돼?” 조용히 병실 문 앞에 서 있는 추재은의 모습을 보니, 왠지 숨이 막혔다. 내 발걸음은 아주 잠깐 멈추었고, 바로 다시 빠른 걸음으로 떠났다. 그리고 뒤에서 전해오는 울음소리를 들었지만, 여전히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난 임세린이 지금 어디 있던 관심 없다. 유강우와 함께 있는 게 뻔하기 때문이다. 그 여자는 분명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보내주지 않고, 오히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로 위협하며 자기 옆에 묶어 두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난 할머니가 보고 싶었다. 지금처럼 자기 목숨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똑똑하게 느낄 수 있는 상황에서 그리움이 더 짙어졌다. 난 택시를 타고 금빛 종합병원으로 향했다. 할머니는 금빛 종합병원에서 눈 치료를 받고 계셨다. 그렇다, 치료비는 임세린이 내고 있고, 심지어 자기가 담당 의사를 정하려고 특별히 금빛 종합병원에 투자하여 주주가 되었다. 이제는 다 지나간 일일 뿐이다. 우리가 금방 결혼했을 때를 떠올리니 참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임세린을 떠올리면, 누군가가 내 심장을 꽉 잡은 것처럼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난 머리를 돌려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러고 있으면 조금 나아지는 듯했다. 금빛 종합병원은 내가 있는 곳에서 멀지 않았고, 20분 후 도착했다. 난 조금 힘겹게 높은 계단을 올라 음산한 복도를 지났다. 그리고 할머니의 병실에 거의 도착했을 때, 누군가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그 사람은 임세린이었다. ‘여긴 왜 온 거지? 설마 유강우도 나처럼 쓰러졌나?’ 난 피식 웃으며 떠나려 했다. “강주환? 너 왜 여기 있어? 너 저혈당증 때문에 병원에서 링거 맞고 있는 거 아니었어?” 임세린이 갑자기 나를 불렀다. 그 말에 나는 어리둥절했지만, 바로 알아차렸다. 추재은은 임세린에게 내가 기절한 진짜 이유를 알려주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나 홀로 천천히 인생의 종착역으로 향하는 것도 괜찮은 선택이었다. “누나, 누구랑 얘기하는 거예요? 의사 선생님의 말씀으로는 우리 엄마한테 맞는 신장을 찾으려면 2억이 필요하대요.” 내가 한창 나 자신과 대화하고 있을 때, 유강우의 목소리가 들렸다. 난 그제야 깨달았다, 임세린이 여기 있는 이유는 유강우 엄마의 병을 보기 위해서였다. 나쁘지 않았다. 우리도 예전에 그런 일을 했던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때의 환자는 우리 할머니였다. 난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떠나려 했다. 난 내 아내와 불륜남이 내 앞에서 꽁냥꽁냥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이건 내 카드야, 갖다 써, 비밀번호는 888888이야. 난 지금 다른 일이 있어.” 임세린은 핸드백에서 카드를 꺼내 유강우한테 준 다음, 나를 향해 걸어왔다. 난 유강우의 차가운 눈빛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특히 임세린이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을 때, 그의 눈빛은 마치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강주환, 대답 안 해? 설마 질투 나서 여기까지 온 거야? 쓸데없는 생각 좀 하지 마. 넌 저혈당증일 뿐이지만, 강우의 할머니는 신부전이야. 어느 쪽이 더 심각한지는 너도 잘 알 거 아니야.” 임세린과 나 사이의 거리는 겨우 1, 2미터 정도였지만, 그 여자의 말은 너무 차가웠다. 우리는 부부가 아니라, 마치 일반 친구처럼 말로 걱정해 줄 뿐이었다. “알아, 난 할머니를 보려고 왔어.” 난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나 자신마저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별이 안 가는 말을 했다. “그럼 다행이고, 나도 할머니를 보러 갈까?” 임세린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전혀 진심이 느껴지지 않는 말투로 이어 말했다. “그럴 필요 없어.” 임세린이 안도의 한숨을 내쉰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여자와 함께 할머니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 내가 감정을 컨트롤하지 못하고 우리의 옛 추억을 회상할 것 같았으니까. 내 대답은 사람의 마음에 상처를 줄 수 있었다. 아주 짧고 아무런 감정도 없었기 때문이다. 임세린은 내 대답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그녀의 얼굴은 아무런 표정이 없었다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너 지금 강우를 질투하고 있는 거 맞잖아, 제발 철 좀 들어!” ‘철 들라고?’ 난 마음속에서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철이 없다고?’ ‘내가 너와 유강우의 사이를 방해한다는 걸 알고 비켜 주겠다는데, 이래도 철이 없다고?’ ‘그럼, 어떻게 해야 철든 거야?’ ‘내 아내가 다른 남자와 바람피우는 옆에서 박수치며 축하해야 철든 거야?’ ‘난 그런 취미는 없어, 아니, 못 하겠어!’ “그건 오해야.” 난 말을 마치고, 바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할머니의 병실로 들어갔다. “아이고, 우리 주환이 왔구나! 어서 들어와.” 할머니는 병상에 누워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사실 난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저 느낌으로 들어온 사람이 간병인인지 아니면 다른 사람인지 판단하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간병인 외에 들어오는 사람 모두에게 내 이름을 부르신다. 난 코끝이 찡했고 천천히 할머니 곁으로 다가가 억지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할머니, 나 왔어. 요즘 열심히 치료받고 있지?” “아이고, 걱정하지 마, 열심히 치료받고 있으니까. 맞다, 세린이를 본 지 오래된 것 같네? 오늘도 안 왔어?” 할머니의 말은 돌멩이가 되어 잔잔한 호수에 떨어져 물결을 일으켰고, 내 마음이 가볍게 떨렸다. “세린이는 회사 일 때문에 많이 바빠. 나중에 보러 온대.” 난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거짓말을 했다. 나와 임세린 사이의 일을 도무지 알려드릴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연세가 많으셔서 이런 충격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할머니, 주환이 말은 거짓말이에요, 전 여기 있잖아요.” 내 말이 끝나기 바쁘게, 임세린은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 여자는 미소를 짓고 가장 부드러운 말을 하고 있었지만, 난 등골이 오싹해 났다. ‘대체 뭘 하려는 거지?’ ‘지금 당장 내 모든 걸 빼앗으려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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